코스피

6,912.95

  • 60.37
  • 0.88%
코스닥

801.94

  • 38.95
  • 4.63%
1/2

K컬처의 마지막 '한잔'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뉴스 듣기-

지금 보시는 뉴스를 읽어드립니다.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K컬처의 마지막 '한잔'

주요 기사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풍미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취하려는 목적으로 마시는 음료.’

    꽤 오랫동안 한국 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19세기 말 조선을 찾은 서양 외교관과 여행자들의 기록엔 우리 술과 음주 문화에 대한 냉소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특색 없는 향과 맛의 독한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을 가리키며 ‘술의 저주(drink curse)’에 빠졌다고 묘사한 기록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세계적인 주류 품평회에서 우리 술의 이름을 찾기란 가물에 콩 나듯 어려운 일이었고, 국가적 공식 만찬장의 건배주는 늘 와인이나 샴페인 차지였다.

    ADVERTISEMENT


    사실 한국 술은 단절과 폄훼의 역사를 걸어왔다. 1916년 일제가 가양주(家釀酒) 금지령을 내리면서 집집마다 오랫동안 전해지던 수많은 전통주 레시피의 명맥이 끊겼다. 광복 후인 1965년에는 식량 부족으로 쌀로 술을 제조하는 행위가 금지되면서 잡곡과 사카린을 섞은 희석식 알코올이 시장을 지배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싼 맛에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최근 K웨이브가 세계를 휩쓰는 동안에도 전통주는 복잡한 규제와 편견의 벽에 막혀 한류 특수의 언저리에 머물러야 했다. 여기에 술 자체를 멀리하는 젠지(Gen Z) 세대의 절주 트렌드까지 덮치며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ADVERTISEMENT


    그러나 한류의 마지막 잔을 우리의 향으로 채우기 위한 조용한 반격이 진행 중이다. 벼랑 끝에 선 생산자들은 ‘한국의 테루아(terroir)’를 무기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각 지역의 쌀을 고르고, 토종 균을 직접 배양하는 것은 기본이다. 술병 속에 담긴 지역의 깊은 이야기를 알리기 위한 아름다운 증류소와 양조장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 술을 세련된 럭셔리 주류로 큐레이팅하려는 시도는 물론, 주류 유통업체들도 그간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좋은 술’ 만들기에 직접 나서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하다. 단순히 알코올을 파는 것을 넘어 세계인이 찾아와 경험하고 싶어 하는 한국 술의 문화적 깊이를 증명해내는 것이다. 우리만의 독창적 원료와 발효·증류 기술, 공간과 미학을 결합해 위스키나 코냑에 당당히 견줄 ‘K스피릿’(증류주)을 완성하겠다는 집념이다. 100년의 설움을 딛고 술잔 속 한류를 꿈꾸며 오늘도 묵묵히 술을 빚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들여다봤다.


    정소람/권용훈 기자 ram@hankyung.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