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의 수난과 생명력
스미레 미용실
스미레 미용실

9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세종M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재일동포의 차별과 수난을 정면으로 다뤄온 정의신 연출의 ‘재일 코리안 3부작’ 완결편이다. 요미우리 연극대상, 아사히 무대예술상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역사적 슬픔을 인간적 온기와 웃음으로 치유하는 독보적인 작가”라는 일본 언론의 극찬을 받아온 그가 20년에 걸쳐 완성한 마침표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무대의 배경은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일본 규슈의 탄광 마을 ‘아리랑 고개’다. 차가운 역사적 상처와 탄광 폭발 사고라는 비극 속에서도 인물들이 몸을 기대는 곳은 거창한 안식처가 아니다. 낡은 이발소를 지키며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을 여는 것을 꿈꾸는 ‘수미’와 그 가족들에게 파마약 냄새 자욱한 공간은 삶의 둥지이자 피난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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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문장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삶의 구체적인 순간들이 미용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전무송, 최지연, 전국향 등 베테랑 배우들은 차별과 가난, 상실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버텨내는 인물들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척박한 땅 위에 뿌리내린 야생화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끝내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거장의 깊은 시선이 ‘스미레 미용실’이 건네는 가장 큰 울림이다.
재개발 앞두고 위태로운 가족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10월 2일부터 10월 25일까지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관객을 만나는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 익숙해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일상의 풍경을 서글프면서도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해낸다. 이 작품은 국립극단 ‘창작공감: 희곡’을 통해 4년간 개발 과정을 거쳐 나왔다. 2024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고, 2025년 제61회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했다. 무대의 배경은 재개발을 앞둔 2010년 서울 은평구의 한 어수선한 연립주택. 익숙했던 터전이 사라질 위기 속에 작품은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오빠의 커밍아웃을 막으려 애쓰는 스무 살 재수생 ‘은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부장적 질서와 세대 간의 오해, 그리고 그 안에 얽힌 퀴어 정체성과 개인의 욕망이 첨예하게 충돌한다.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를 외면하지 못하는 가족. 이 모순적이고 맵고 알싸한 현실의 맛과 그 속에서도 기어이 바르고야 마는 작은 희망의 복숭아향 립스틱이 한집 안에서 시끌벅적하게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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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마포문화재단 상주단체 ‘공놀이클럽’의 대표작으로, 무거운 질문을 경쾌한 ‘놀이’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연출 기법이 돋보인다. 네 명의 배우는 고정된 배역에 갇히지 않고 여러 인물과 관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터져 나오는 위트와 참신한 연극적 실험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집과 가족,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경제 대공황 이후 희미한 희망
유리동물원
유리동물원

10월 17일부터 11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유리동물원’은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을 신유청 연출의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시대의 그늘 아래 각자의 작고 깨지기 쉬운 환상에 기대어 고단한 현실을 버텨내는 한 가족의 초상을 그린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들과 집 안에 머물며 과거의 기억과 환상에 기대는 어머니, 유리 동물처럼 섬세하고 연약한 내면을 지닌 딸은 저마다 현실을 감당하는 방식이 다르다.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붙잡고 있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더 멀어지고 싶어 하는 역설도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책임과 자기 삶을 향한 자유의 갈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작품 속 ‘유리동물’은 깨지기 쉬운 환상과 기억, 그리고 현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써 만든 작은 세계를 상징한다.
거대한 경제 위기 속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시대,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마음속 피난처를 만든다. 그 모습은 앞선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게 자신의 몫의 삶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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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령, 최정원, 장승조, 권율 등 밀도 높은 연기를 선보일 배우들도 가세한다. 이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를 통해 고전이 지닌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깊이를 더할 예정이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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