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뇌에 컴퓨터를 연결하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스스로 실험해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는 시대. 영화 속 상상이 첨단바이오와 AI의 융합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기술 선점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정부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AI바이오 인프라 구축을 비롯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유전자·세포치료제 등 미래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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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파운드리
AI가 설계하고 로봇이 만드는 ‘세포 제조 공장’
AI가 설계하고 로봇이 만드는 ‘세포 제조 공장’
정부가 구축하려는 바이오파운드리는 AI와 로봇을 활용해 원하는 기능을 가진 생명체를 설계하고 이를 자동·고속으로 제작·검증하는 인프라다. AI가 생명체의 설계도면을 만들면 로봇이 실제 제작과 실험을 반복하고 그 결과를 다시 설계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사람이 일일이 설계하고 실험하던 과정을 자동화해 바이오 연구와 제조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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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같은 AI·로봇 기반 바이오파운드리를 2032년까지 구축·고도화하고 합성한 미생물을 활용해 2035년까지 첨단의약품·바이오플라스틱·항공유 등의 대량생산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합성생물학과 AI·로봇을 결합해 생명체의 설계부터 제작·검증, 실제 생산까지 이어지는 바이오 제조 플랫폼, 즉 ‘세포 제조 공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바이오파운드리를 산업에 활용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미국의 징코바이오웍스는 세포와 미생물을 설계·프로그래밍하고 이를 실제 생산으로 연결하는 바이오파운드리 기업이다. 트위스트바이오사이언스는 DNA를 합성·생산하는 기술을 통해 생명체 설계에 필요한 유전물질을 공급하며 징코바이오웍스와도 협력하고 있다. 두 기업은 각각 ‘생명체를 설계·제작하는 플랫폼’과 ‘설계에 필요한 DNA를 만드는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바이오 제조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한다.
국내에서도 바이오파운드리와 연결되는 기술과 인프라를 갖춘 기업들이 있다. CJ제일제당은 산업용 미생물의 균주 개발과 생산공정 자동화 등 바이오 제조 역량을 갖추고 있어 바이오파운드리의 산업적 활용과 맞닿아 있다. 마크로젠은 유전체 분석과 싱글셀·공간오믹스, 바이오 빅데이터 및 AI 분석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생명체 설계에 필요한 유전체 데이터를 확보·분석하는 분야와 연관성이 있다. 바이오니아는 DNA·RNA 올리고 합성 기술과 유전자 발현 분석 장비·시약 등을 개발해온 기업이다. 바이오파운드리의 생명체 설계·제작 및 검증 과정에 필요한 유전물질 합성과 분석 분야에서 관련성이 있다.
◆자율실험실
AI가 다음 실험까지 결정
AI가 다음 실험까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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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AI와 로봇을 활용해 암 등 중증·난치질환 신약의 발굴 속도를 10배 높이고 2035년까지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2028년까지 암 특화 AI 모델을 개발하고 2029년까지 AI 바이오 자율실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유전자·세포치료제 분야에서도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검증·생산 기술을 고도화해 2031년까지 신속한 사업화를 지원한다. 2027년부터는 민관 공동 출자 방식의 유전자·세포치료제 특수목적법인(SPC)도 출범·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인프라로 꼽히는 것이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SDL)이다. SDL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실험을 로봇이 대신하고 연구자가 내리던 ‘다음에 어떤 실험을 할지’에 대한 판단을 AI가 수행하는 연구 플랫폼이다. AI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면 로봇이 실험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AI는 그 결과를 다시 분석해 다음 실험 조건을 정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원하는 결과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24시간 중단 없이 실험하고 방대한 실험 조건도 동시 탐색할 수 있어 연구 속도를 단축하고 질을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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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SDL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1일 산학연 80여 개 기관이 참여하는 국내 첫 자율실험실 산학연 협의체가 출범했다. 협의체에는 삼성 계열 연구조직인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SK하이닉스, LG화학, 현대자동차 등 수요 기업과 파크시스템즈, 에이치비솔루션 등 공급 기업, 대학·연구기관 등이 참여했다.
민간 기업 중에서는 에이블랩스가 실험실 자동화 분야에서 SDL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에이블랩스는 액체 핸들링 로봇 ‘노터블(NOTABLE)’과 노코드 기반 자동화 소프트웨어 ‘윈디(Windy)’를 개발해 시약과 샘플을 옮기는 반복적인 실험 과정을 자동화한다. 나아가 AI가 실험 결과를 분석하고 다음 실험 조건을 제안하면 로봇이 이를 수행하는 자율형 실험실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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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테크놀러지도 관련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영은 정밀 계측·검사와 로봇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바이오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실험실 자동화와 정밀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 기술 측면에서 SDL 밸류체인과 연결될 수 있다. 다만 에이블랩스처럼 SDL 자체를 핵심 사업으로 하는 기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관마다 장비와 데이터, 운영 방식이 달라 자율실험실 간 연계가 어렵다는 점이 과제로 꼽힌다. 장비·AI·데이터를 연결하는 표준화와 공용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실험실 자체를 자동화한 ‘클라우드 랩’ 기업들이 등장했다. 에메랄드클라우드랩은 연구자가 온라인으로 실험을 설계하면 원격의 자동화 장비가 실험을 수행하는 클라우드 기반 연구시설이다. 200종 이상의 장비를 하나의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로 연결하고 24시간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생명과학뿐 아니라 화학·소재 연구에도 활용한다.
스트라테오스는 클라우드랩과 실험 자동화 플랫폼을 제공한다. 연구자가 웹이나 API를 통해 실험을 설계·실행할 수 있으며 고속 로봇 자동화를 활용해 신약 발, 합성생물학, 세포·유전자치료제 등의 실험을 수행한다. 자체 클라우드랩을 이용하는 방식뿐 아니라 기업이 자체 연구시설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설계·구축과 소프트웨어도 제공한다.
오픈트론스는 실험실에서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에 강점을 가진 기업이다. 액체 핸들링 등 반복적인 실험을 자동화하는 로봇 플랫폼을 제공해왔다. 최근에는 AI를 접목해 자연어로 실험 프로토콜을 만들고 이를 시뮬레이션·검증한 뒤 로봇으로 실행할 수 있는 기술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2026년에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실험실 로봇을 물리적 AI의 실행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BCI
생각이 컴퓨터의 언어로
생각이 컴퓨터의 언어로
BCI는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신호를 읽어 사람의 의도를 컴퓨터가 이해하고 이를 외부 기기의 동작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뇌 신호를 분석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움직이거나 로봇팔·휠체어 등을 제어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외부 정보를 뇌에 전달해 손상된 감각이나 기능을 보완하는 기술로도 발전할 수 있다.
현재 BCI의 가장 중요한 활용처는 의료 분야다. 척수손상이나 근신경계 질환 등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말을 하기 어려운 환자가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대표적인 활용 사례다. 향후에는 운동 기능 회복을 넘어 촉각 등 감각을 되살리는 기술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BCI는 하나의 기술만으로 구현되는 분야도 아니다. 뇌에서 신호를 읽는 전극, 이를 해석하는 AI, 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과 의료기기가 함께 필요하다. 뇌과학과 의료기기는 물론 AI·반도체·로봇 기술이 결합하는 차세대 융합산업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정부도 BCI를 미래 바이오 기술 가운데 하나로 낙점했다. 2030년까지 뇌와 컴퓨터 사이의 신호를 해석하는 ‘통역 AI’ 등 BCI 원천기술을 개발·실증하고 2035년까지 생각만으로 글자를 입력하거나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BCI 제품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BCI 시장에서는 뉴럴링크와 싱크론, 블랙록뉴로테크, 프리시전뉴로사이언스 등 주요 기업 대부분이 비상장 상태다.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초기 단계인 데다 침습형 BCI의 경우 임상시험과 안전성 검증, 인허가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기술은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지, 신경 신호를 안정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등을 입증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는 현재 BCI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뇌에 초소형 전극을 삽입해 신경 신호를 읽고 이를 이용해 컴퓨터를 생각만으로 조작하는 침습형 BCI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며 컴퓨터 조작뿐 아니라 향후 의사소통 기능 회복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뉴럴링크의 임상시험은 장기간 추적 관찰을 전제로 진행하고 있다.
싱크론은 침습형 BCI 가운데서도 접근법이 독특하다. 뇌를 직접 절개하는 대신 혈관을 통해 전극이 달린 장치를 뇌혈관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현재 미국과 호주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직 상용 허가를 받은 제품은 아니다.
블랙록뉴로테크는 BCI 분야에서 오랜 연구·임상 경험을 가진 기업이다. 뇌에 미세전극을 삽입하는 ‘유타 어레이(Utah Array)’ 기반 기술을 활용해 신경 신호를 측정하고 이를 컴퓨터 제어와 의사소통, 로봇팔 제어 등에 활용해왔다.
국내에선 지브레인과 와이브레인이 있다. 지브레인은 뇌 조직을 찌르지 않고 뇌 표면에 유연하게 밀착해 신경 신호를 읽어내는 ‘뇌피질전도(ECoG) 기반의 그래핀 전극’을 개발하는 국내 뇌·신경계 스타트업이다. 이 기술은 향후 BCI 분야와 연결될 수 있는 기반 기술로 평가된다. 와이브레인은 뇌·신경계 질환을 대상으로 한 전자약 및 의료기기를 개발해온 기업이다. 최근에는 BCI 분야로 연구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