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와 로봇·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비롯한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전력이다. 세계 각국은 환경 파괴 우려가 큰 석탄과 가스 등 화석연료 발전 비중을 낮추면서 원자력발전소 신규 증설로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만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아 효율성과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원자재 공급망부터 생산 규모까지 갖춘 중국 업체들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주도하는 점도 고민거리다. 정부도 기존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차세대 기술 확보를 통한 ‘한계돌파형 재생에너지’로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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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산업의 ‘게임체인저’
첫 과제는 고효율 태양광발전 기술인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이다. 페로브스카이트란 부도체·반도체·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체다. 처음 발견한 19세기 러시아 과학자 페로브스키의 이름을 땄다. 페로브스카이트 특성 중 주목받는 것은 ‘빛을 받았을 때 전기를 뿜어주는 기능’이다. 햇빛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태양광 패널을 페로브스카이트로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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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는 페로브스카이트는 정면으로 빛을 받아야만 전기가 많이 만들어지는 태양광 패널과는 다르게 비스듬한 각도나 옆면으로 빛을 받아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 반투명한 태양광 패널을 만들 수도 있고 고무나 플라스틱처럼 잘 휘어지고 늘어나는 재질의 태양광 패널도 가능하다. 페로브스카이트를 반투명으로 만들어 예전부터 쓰던 실리콘 패널 위에 겹쳐 놓은 장치를 ‘탠덤 셀’이라고 부른다. 실리콘 패널이 활용하지 못했던 빛까지 전기로 바꿀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학계에서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발전 효율을 기존 실리콘 셀의 한계치(29%) 대비 1.5배 많은 44%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효율을 2029년 28%에서 2032년 30%, 2035년 35% 이상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세계 최초로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상용화를 추진 중인 곳은 국내 기업인 한화솔루션이다. 2019년부터 연구개발(R&D)에 나서 2년 전부터 파일럿(시험) 라인도 가동 중이다. 최근 1조원대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 중 1000억원 가까이를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파일럿 라인에 투입하기로 했다. 한화솔루션은 2029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는 목표다. 탠덤 셀 기술이 기존 실리콘 패널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적층한다는 점에서 효율성과 신뢰성에서 한화솔루션이 글로벌 기업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태양광 업체 퍼스트솔라도 2027년 신소재를 적용한 페로브스카이트 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탠덤 셀 관련 장비 업체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꼽힌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울산과학기술원과 협력해 HJT 실리콘 태양전지에 페로브스카이트를 다중접합한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올 3월 태양광발전 전환효율 33.09%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선익시스템도 페로브스카이트 전자수송층(ETL) 증착 공정에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양산이 본격화하면 관련 장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초정밀 미세 코팅 인프라를 탠덤 셀 제조 공정에 적용한 신성이엔지도 주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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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해상풍력 승부수
풍력발전 분야에서는 20MW(메가와트) 이상급 초대형 터빈과 부유식 풍력 핵심기술을 확보해 국내 기업의 설계·제조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풍력 터빈은 바람의 운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설비다. 바람개비 모양의 날개(블레이드)와 발전기 본체(나셀) 및 탑(타워)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 해상 풍력발전은 터빈 설치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터빈 대형화가 발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2020년대 초반까지 주력이었던 7~10MW급 터빈은 최근 13~15MW급으로 갈수록 대형화하는 추세다. 세계 1위 풍력 터빈 제조사인 덴마크 베스타스는 15MW, 독일·스페인 합작 풍력 업체인 지멘스가메사도 14MW 터빈의 상용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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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보다 큰 20MW 이상급 초대형 터빈으로 풍력발전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부유식 풍력발전은 해저에 터빈 기둥을 박는 대신 닻을 내려 고정하는 방식이다. 터빈을 수면 위에 띄우기 때문에 고정식보다 더 깊고 먼 바다에 설치할 수 있어 발전 효율이 높다. 40여 년간 풍력발전 한 우물을 파 온 유니슨은 지난해 국내 터빈 제조사 중 유일하게 정부의 ‘20MW+급 해상풍력 터빈 기본설계’ 국책과제 참여 업체로 선정됐다. 유니슨은 2028년까지 터빈 설계를 완료하고 2030년까지 시제품 성능 검증을 마칠 계획이다. 두산에너빌리티도 터빈 생산은 물론 해상풍력 설계·조달·시공(EPC) 능력을 갖고 있다.
20MW 이상 터빈을 떠받치는 하부구조물을 만드는 SK오션플랜트도 수혜가 기대된다. 정부가 지목한 부유식 해상풍력 구조물 분야로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CS윈드도 풍력타워와 해상풍력 하부 구조물(모노파일)을 생산한다. GS글로벌도 자회사인 GS엔텍을 통해 모노파일과 정유·석유화학 플랜트용 화공장치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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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청정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수소 분야는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수전해 시스템 국산화와 50~100MW급 대규모 수전해 플랜트 실증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군산 새만금에 1조원을 들여 200MW급 수전해 플랜트를 짓기로 했다.
○HVDC로 메가프로젝트에 전력 공급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력을 제때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GW(기가와트)급 전압형 초고압직류송전(HVDC) 기술을 국산화해 서해안에서 실증하고 초전도 송전망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배경이다. HVDC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교류(AC) 전력을 전력변환기를 통해 효율성 높은 고압의 직류(DC) 전력으로 바꿔 송전한 뒤 최종 소비처 인근에서 다시 전력변환기를 통해 교류 전력으로 변환해 공급하는 송전 방식을 말한다. 고압교류송전에 비해 전력 손실이 적고 장거리 송전에 유리해 차세대 ‘송전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이유다.
LS일렉트릭은 국내에서 개발된 전압형 HDVC 변환용 변압기 중 가장 큰 500MW급 개발을 완료했다. 이 변압기는 한국전력의 인천 갈산동 ‘신부평 HVDC 변환소’에 적용된다. LS일렉트릭은 HVDC 변환 설비의 또 다른 핵심인 밸브 분야에서도 기술 국산화를 준비 중이다. 전류형 HVDC 밸브인 ‘사이리스터 밸브’는 이미 개발을 마치고 생산 설비를 가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의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 필요한 2GW급 계통의 변환용 변압기 전량을 공급할 수 있는 생산 능력도 갖췄다. 대한전선도 최대 640kV(킬로볼트)급 HVDC와 400kV급 초고압교류송전(HVAC) 해저케이블 생산이 가능한 충남 당진 공장을 가동 중이다. 200MW급 전압형 HVDC 시스템 국산화에 성공한 효성중공업은 경남 창원에 국내 최대 전압형 HVDC 변압기 전용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대용량 전압형 컨버터 제작 설비 증설과 R&D를 포함해 향후 총 33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밖에 발전량과 전력 수요를 예측해 전력망을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한국형 크라켄’ AI 파운데이션 모델도 만들기로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