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용산공원에 갑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가 그 앞 잔디밭에 앉아 있으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습니다. 경복궁, 명동과 함께 꼭 들르는 코스가 됐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잔디와 나무를 보고, 그 너머로 빌딩 숲을 바라보는 경험. 서울이 가진 몇 안 되는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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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짓는 문제로 요즘 서울이 시끄럽습니다. 정부가 용산공원을 대규모 주택 공급 후보지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즉각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국민의힘도 용산구도 반대 입장문을 냈습니다. 용산공원은 120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서울 도심 마지막 대규모 국가공원이라는 것입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제4조에 “본체 부지 전체를 공원으로 조성함을 원칙으로 하며 공원 외 목적으로 용도변경하거나 매각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상에는 단 하나의 건물도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그 원칙을 이어받았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키자던 국가적 약속이었다는 겁니다.
◆두 개의 정답, 하나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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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부의 입장도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서울에 집 지을 땅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토로했습니다. “수도권에 헬기 타고 돌아볼 생각”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건축·재개발의 공급 효과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재건축은 가구수가 늘어나도 평수가 커지니 크게 늘지 않는다. 재개발은 총 입주 가구수가 오히려 줄어드는 게 통상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서울시는 즉각 반박했습니다. 최근 3년간 준공된 정비사업 59곳을 분석하니 재건축은 44.2%, 재개발은 27.4%의 순증 효과가 있었다는 자료를 내놨습니다. 같은 도시, 같은 사업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정반대로 얘기합니다.
땅이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하면 용산공원은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서울 한복판, 지하철이 닿고 기반시설이 갖춰진 대규모 국유지. 여기에 청년과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을 지으면 상징성도 큽니다. 집값 때문에 서울 밖으로 밀려나는 젊은 세대에게 도심 한가운데 살 기회를 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일관됩니다. 부동산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이 생기고, 그 소득이 주로 고가의 주택 보유자에게만 몰리는 게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유세와 양도세로 일정 부분 환수하겠다는 것이고 서울 집중이 심해질수록 지방은 더 소외된다는 것입니다. ‘계급 고착화’, ‘자산 양극화’의 뿌리까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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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 시민들의 불만도 큽니다. 정부가 겨냥한 ‘똘똘한 한 채’와 고가 아파트는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습니다. 강남3구와 용산·성동·마포가 대표적입니다. 수십 년 한 집에 살아온 1주택자, 소득이 끊긴 은퇴 고령층까지 세부담을 지게 되면서 반발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6·3 지방선거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흔들린 배경으로 부동산 반감을 꼽는 분석이 많은 이유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왜 보수화되나
여기까지가 공개된 논쟁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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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은 서울시장, 그리고 각 자치구청장 같은 선거로 뽑히는 정치인들에게 유리하다는 겁니다. ‘헌 집’이 ‘새 집’이 되고 집값이 오르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당연히 반깁니다. 이게 표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효과가 따라옵니다. 집값이 크게 뛴 동네는 정치 성향이 보수 쪽으로 이동하는 경향성이 보인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집값이 뛰는 순간 이해관계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집값이 낮을 땐 주민들이 양도세, 보유세 같은 세금에 덜 민감합니다. 하지만 그 집이 개발돼 20억원, 30억원으로 확 불어나면 세금에 엄청나게 민감해집니다. 재건축 규제를 푼다는 건 내 자산이 불어난다는 뜻이 됩니다. 이념보다 경제적 이득이 우선입니다. 한때 진보 우세 지역이던 마포, 성동이 자주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낡은 주택가가 고가의 신축 단지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원래 살던 주민 상당수는 떠납니다. 새로 들어온 자산가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동네의 정치적 색깔은 빠르게 보수화됩니다. 그래서 진보 정권인 민주당 쪽에서 정비사업에 소극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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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더 들어가볼까요. 용산은 하나의 동네가 아닙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와 나인원한남 일대에는 100억원을 넘나드는 초호화 주택이 즐비합니다. 이촌동과 서빙고 일대도 재건축을 앞두고 값이 크게 뛰었습니다. 반면 후암동, 청파동 골목에는 낡고 저렴한 다세대주택이 여전합니다. 같은 구 안에서 자산 격차가 이만큼 벌어진 곳도 드뭅니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것도 그래서입니다. 공원 인근은 지금 재개발·재건축이 한창이고 들어서는 단지마다 40억원을 넘긴 초고가 주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이미 집을 가진 사람은 상당한 자산가라는 뜻입니다.
그런 동네에 청년들이 저렴하게 들어와 산다고 하면 기존 주민들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도 아닙니다. 서울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습니다. 청년임대주택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인근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교통 혼잡과 일조권, 학교 과밀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집값이 핵심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습니다.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임대 세대 아이들이 다니는 통로를 따로 두거나 커뮤니티 시설 이용을 제한했다가 논란이 됐습니다.
이런 정서는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입으론 다른 말을 합니다. 교통 체증, 학교 과밀, 도시 경관, 그리고 녹지 보전. 명분은 훌륭하고 대체로 틀린 말도 아닙니다. 다만 그 명분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각자 알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이런 정서를 읽고 활용한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녹지를 지키자는 주장과 부자들이 ‘우리끼리 살고 싶다’는 속내가 우연히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는 질문
복잡한 논쟁은 빼고 이렇게 질문을 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서울은 어떤 도시가 돼야 하는가.
집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청년들이 서울에 번듯한 집을 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동시에 서울의 생활권 녹지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맞습니다. 올여름 폭염을 겪으며 도심 녹지가 더 소중해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용산공원에 아파트를 대규모를 지어야 한다면, 이걸 청년에 저렴하게 줘야 한다면 그만한 명분이 두드러지게 있어야 합니다. 특별법을 고치고 조성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용산공원은 착공까지 10년 가까이 걸릴 수 있습니다. 당장 급한 공급 대책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반면 되돌리기는 어렵습니다. 한 번 아파트와 도로가 들어선 땅을 다시 숲으로 복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가장 늦게 효과가 나면서 가장 되돌릴 수 없는 카드를 먼저 꺼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부가 설명해야 할 대목입니다.
용산공원을 지켜야 한다는 쪽도 답할 것이 있습니다. 녹지를 지키자는 주장이 진심이라면 그 도시에 젊은 세대는 대체 어디서 살라는 말인가요. 재건축·재개발이 답이라면 그 답 안에 청년의 몫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조합원 물량을 다 빼고 남은 일반분양을 시세대로 파는 것이라면 새 아파트는 결국 이걸 감당할 수 있는 자산가들에게만 돌아갑니다. 용적률을 풀어주는 대신 늘어난 물량의 일정 비율을 청년·신혼부부용으로 대거 확보하거나 임대주택 비율을 낮춰주는 만큼 다른 방식의 기여를 받아내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서울시가 요구하는 규제완화가 사업성만 높이고 끝난다면 정비사업은 자산가들끼리 집값을 올리는 ‘짬짜미’란 비판을 벗기 어렵습니다. 완화의 대가로 무엇을 받아낼 것인가. 그 답을 내놓아야 ‘재개발이 공급’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서울이 매력적인 도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공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청년들도 서울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공원을 지키자는 명분 뒤에 ‘내 동네에 너는 오지 마라’는 생각이 담겨 있지 않길 바랍니다. 용산공원의 주택공급 논쟁이 진짜 시험하는 것은 땅의 용도가 아니라 이 도시가 누구를 위한 곳이냐는 질문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