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합리화 정책은 기대만큼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기존 관행과 이를 움직이는 행정 조직, 관련 생태계, 심지어 이익집단의 기득권 지키기에 한 발짝 나아가기가 천근만근이다. 오죽하면 그 많은 위원회와 공적 조직이 시간과 더불어 계속 늘어만 갈까. 오늘도, 이 순간도. 그러니 기존 질서를 그대로 두고는 내일도, 모레도 바뀌긴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의 재건축, 재개발 논란처럼 차제에 재설계하는 것이 적합한 선택지가 아닐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어내듯이.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는 단순히 규제를 몇 개 줄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산업과 행정, 노동과 교육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개혁이 아니라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 리엔지니어링(national re-engineer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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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부는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기관을 신설하고, 법과 규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기능은 계속 늘었지만, 없어지는 조직과 업무는 거의 없었다. 그 결과 행정은 복잡해지고, 부처 간 중복과 비효율이 커졌다. AI 시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같은 업무를 더 적은 인력과 시간으로 더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정부도 이제 조직이 아니라 기능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국가 리엔지니어링의 첫 번째 과제는 정부 기능의 전수조사다.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모든 기능을 원점에서 검토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 AI가 대체할 수 있는 기능, 민간이 맡아도 되는 기능, 중복 기능 등으로 분류해야 한다. 당연히 국민에게 필요한 기능만 남겨야 한다. 두 번째는 부처 간 기능 통합이다. 인재, 산업, 디지털, 지역 개발 등은 여러 부처가 비슷한 사업을 각각 추진하면서 예산과 행정력이 분산되고 있다. AI 시대에는 데이터를 공유하고 기능을 통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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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공공기관 혁신이다. 설립 목적을 이미 달성했거나 민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기관은 통합, 기능 조정, 민영화까지 포함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공공기관도 존재 자체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네 번째는 ‘AI 퍼스트 정부’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업무가 생기면 먼저 ‘AI가 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에만 인력을 집중하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공무원의 역할도 규정을 관리하는 사람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을 설계하는 전문가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개혁은 어느 한 부처가 추진할 수 없다. 대통령 직속 ‘국가 리엔지니어링위원회’와 같은 범정부 추진체계를 구성해 정부, 기업, 학계, AI 전문가가 함께 국가 운영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기업들이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BPR)해 경쟁력을 높였듯이, 정부도 국가 차원의 프로세스 혁신에 나서야 한다.
추진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직과 법령을 개편하고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조직을 늘리는 나라보다 운영을 혁신하는 나라가 앞서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국가 운영체계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국가 리엔지니어링 프로젝트다. 이 전환에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AI를 활용하는 국가를 넘어 AI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국무회의를 세종시에서 열겠다는 의지처럼 AI 정부의 초석까지 확실하게 놓는 ‘세종대왕급 실용 대통령’이 돼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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