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대기업 계열사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해 연수까지 받은 A씨는 정식 발령을 앞두고 돌연 채용이 취소됐다. A씨의 아버지는 해당 그룹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고위임원의 공금 횡령 의혹을 신고한 공익신고자였다. A씨 측은 채용 취소가 아버지의 공익신고에 따른 ‘우회 보복’이라고 의심했지만 별다른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다른 회사에 취업했다. 아버지 역시 내부고발 직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한 데 이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추가 고소를 당했고, 정년퇴직 후에는 회사 측으로부터 구상권 청구 민사소송까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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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신고자를 직접 해고하거나 징계하는 대신 가족·동료를 압박하거나 제3자를 앞세워 고소·고발하는 ‘우회 보복’이 공익신고자 보호의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제도가 신고자 본인 중심으로 설계돼 보복 방식이 교묘해질수록 보호망을 벗어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3자 동원한 역고소까지…교묘해진 보복수법
1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는 지난 6월 말 발간한 ‘신고자 보호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법 개정 방안 연구’에서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가 신고자 본인을 중심으로 설계돼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보복 유형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신고 과정에 협조한 사람까지 보호하지만 가족이나 직장 동료, 신고자와 연관된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가해지는 간접적 불이익까지 일반적으로 보호하진 않는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협조자의 범위가 좁아 보호 수준이 달라지는 문제도 있다.우회 보복 방식은 교묘해지고 있다. 신고자의 가족이나 동료를 공격하고 역고소를 제기하며 본질을 흐리며 ‘개인 간 분쟁’으로 바꾸는 방식이 사용된다. 피신고자 측이 신고자의 사생활이나 별개의 비위 의혹을 제기하거나 스스로 보호조치를 신청하면 수사기관에서도 사건이 쌍방 간 진흙탕 싸움처럼 비치는 걸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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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를 통해 신고자를 압박하는 경우도 있다. A씨의 아버지는 하도급업체와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던 당시 한 업체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취지의 신고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다. 회사는 해당 신고를 근거로 징계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가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외부 업체가 신고해 조치하는 것”이라는 형식을 취한 셈이다.
류광옥 법무법인 양재 변호사는 “우회보복에는 공익신고자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 같은 팀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지만 신고자 본인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회사와 연계된 다른 조직을 통해 압박하는 방식도 있다”며 "우회보복이 훨씬 더 만연하다”고 말했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대응 방식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하는 곳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회사 내부에 파벌 간 갈등이 있을 경우 이를 이용해 신고자에게 불리한 진술이나 증거를 만들고, 다른 직원이나 제3자가 신고자를 고소하도록 하는 방식 등을 자문해준다.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도 늘고 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에 접수된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신청은 2021년 79건에서 2022년 89건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120건을 기록했다. 2025년에는 7월까지 145건이 접수돼 이미 전년 전체 규모를 웃돌았다.
현행법은 신고자 중심 보호…EU는 친척 등도 포괄
국내 신고자 보호제도는 지난 20여 년 동안 꾸준히 확대됐다. 2001년 부패방지법을 시작으로 공익신고자보호법, 청탁금지법 등이 잇따라 제정되며 신고자 보호 장치가 마련됐다. 하지만 법률이 분야별로 나뉘어 있고 보호 범위도 서로 달라 신고 유형에 따라 보호 수준이 달라진다.ADVERTISEMENT
또한 피신고자가 신고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고소·고발이나 민사소송 자체는 불이익조치 유형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현행법은 공익신고 이후 징계나 감봉, 직위해제, 급여상 손실 등이 발생하면 일정 요건 아래 신고에 따른 불이익조치로 추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류 변호사는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신고자가 아닌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보호는 공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피신고자의 고소, 고발권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인만큼 일률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지만 시기와 경위 등을 살피면 정상적 권리행사인지 보복성 역고소인지는 충분히 구별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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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보다 포괄적으로 공익신고자를 보호한다. 2019년 제정된 유럽연합(EU) 내부고발자 보호지침은 신고자 개인만 보호하지 않는다. 신고를 도운 조력자는 물론 직장 동료와 친척, 신고자와 연관된 법인까지 보호 대상으로 규정한다. 신고자를 직접 해고하기 어려워질 경우 가족이나 주변인을 압박하는 방식의 보복이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복의 개념도 국내와 해외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는 해고나 징계가 대표적인 보복으로 인식되지만 EU는 승진 누락, 성과급 삭감, 원치 않는 부서 이동, 계약 연장 거부, 교육 기회 박탈, 평판 훼손, 협박, 블랙리스트 작성 등 신고 이후 발생하는 다양한 불이익을 보복 행위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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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