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반도체’로 불리며 K푸드의 대표 수출품으로 떠오른 한국 김 산업이 중국의 원료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식품 업체들이 한국산 마른김을 원료로 수입해 조미김을 생산·판매하는 방식으로 고부가가치 김 시장에서 한국을 밀어내고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 조미김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많아 브랜드 이미지까지 훼손되고 있다.
◇고부가 조미김 시장 잠식하는 중국
16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대(對)중국 마른김 수출량은 2024년 2543t에서 지난해 4539t으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도 2416t이 수출됐다. 중국 수출량이 급증하면서 마른김 전체 수출량은 2020년 3797만 속(1속=100장)에서 지난해 6911만 속으로 5년 새 82.0% 늘었다.마른김 수출이 급증하는 반면 마른김을 가공해 제조하는 조미김 수출은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다. 2020년 2890만 속이던 조미김 수출량은 지난해 3774만 속으로 3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조미김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3.2%에서 지난해 35.3%로 낮아졌다. 해수부는 2030년 전체 김 수출량이 1억4572만 속까지 늘어나지만 조미김은 5247만 속에 그쳐 비중이 36%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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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가공품인 마른김에 비해 조미김은 부가가치가 2.5~3배 높다. 조미김은 기름·소금 조미, 플라스틱 트레이, 개별 포장 등 2차 가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마른김 판매가격은 속당 8500원이지만 조미김은 2만5000원에 달한다.
똑같이 한국산 마른김으로 만든 조미김이라도 중국 식품 업체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산 제품을 압도한다. 일본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 김 수입 물량을 제한하지만 중국산은 별다른 수입 제한이 없어 한국 업체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마른김 수출이 늘어날수록 가공 단계에서 창출되는 고용과 부가가치가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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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식품 업체들이 ‘한국산’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브랜드 가치마저 훼손당하고 있다. ‘사나이’라는 한국명 브랜드를 채택한 중국 현지 업체는 국내 유명 식품 업체의 조미김 디자인을 모방한 포장에 한글 ‘김’을 새긴 상품으로 글로벌 조미김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수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산 마른김을 무제한 수입한 중국 업체들이 한글 포장지를 씌운 조미김을 대량 생산하면서 국산 김의 브랜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한국은 중국에 고부가가치 조미김 시장을 뺏기고 중국 공장에 원료만 대주는 하청 기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밥반찬 넘어 프리미엄 상품으로”
정부는 한국산 김을 지키기 위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6월 ‘김 수출 공급망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노후 김 건조기 교체와 스마트·인공지능(AI) 전환 등에 6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중국 짝퉁 브랜드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메이드 인 코리아’ 국가 인증제를 도입하고 세계 표준 명칭인 ‘김(GIM)’을 확산하며 국제 규격 마련에 필요한 예산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고자 기획예산처와 협의하고 있다.식품업계에서는 한국 김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프리미엄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생산 역량과 품질이 뛰어난 만큼 독자적인 고급 식재료로서 김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유영상 단국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김을 흔한 반찬으로만 여겨 고부가가치화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며 “김을 프리미엄화해 세계 시장에서 독자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정희원/강윤지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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