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종전 81년을 맞은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반성’ 표현을 다시 삭제하고, 같은 날 자민당 지도부와 각료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잇달아 참배하자 일본 주요 언론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순히 과거사 표현을 둘러싼 논란을 넘어 일본 정치가 전후 80여년간 유지해 온 평화주의와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전전(戰前)’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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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총리는 15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13년 만에 부활시킨 ‘반성’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 총리의 전몰자 추도식 식사에 ‘반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때부터다. 이후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가해 책임을 언급하는 흐름이 이어졌지만 2013년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관련 표현은 사라졌다. 이시바 전 총리가 지난해 이를 다시 살렸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1년 만에 되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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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야스쿠니신사에서는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을 비롯한 각료들과 자민당 지도부가 잇달아 참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직접 참배하지 않았지만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을 통해 사비로 마련한 다마구시료를 봉납했다.
일본 주요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이 같은 움직임을 강하게 경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6일 ‘정권 간부의 야스쿠니 참배, 대외관계를 해치는 몰지각한 행동’이란 사설에서 정권 핵심 인사들의 야스쿠니 참배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자위대를 통솔하는 현직 방위상의 참배는 “전쟁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는 최근 다카이치 정권과 자위대 주변에서 나타나는 움직임을 ‘전전 회귀’와 연결했다. 2024년 육상자위대 간부들의 야스쿠니 집단 참배와 올해 4월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열린 신토 방식 위령행사를 거론했다. 여기에 옛 일본군 직할 무기공장인 국영 공창을 부활시키는 방안과 자위대 계급 명칭을 구 일본군 시절 방식으로 되돌리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15일 ‘역사에서 배우고 시대의 역행을 막자’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최근 일본 정치의 흐름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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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국내외 정세가 이전보다 더 과거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것처럼 보인다”며 일본이 왜 전쟁에 이르게 됐는지 역사적 교훈을 다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쟁 전 일본이 상대국의 내부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외교적 해결 기회를 놓친 끝에 미국과의 전쟁으로 치달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카이치 정권이 추진한 국기손괴죄에 대해서도 “전전 회귀라고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처벌 범위가 확대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치안유지법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는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위력 강화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전쟁은 자위를 위해 시작되지만 장기화하면서 어디까지가 자위인지 모호해지고 결국 침략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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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역시 15일 ‘전후 81년과 일본의 평화, 이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아서’라는 사설에서 일본 정치가 방위력 강화에만 기울고 있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아사히는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가 단순한 이상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쟁을 직접 경험한 국민의 “전쟁만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일본이 중국 대륙에서 전쟁을 확대하고 미국·영국과 충돌한 끝에 약 50개국을 적으로 돌렸던 역사도 전후 일본이 잊어서는 안 될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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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일본에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지만 방위력 증강만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비 확충이 주변국의 군비 확대를 불러 오히려 지역 긴장을 높이는 ‘안보 딜레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81년 전의 패전은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군을 억제하지 못한 결과였다”며 대중국 외교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방위비 확대의 재원은 충분한지, 방위산업 육성을 경제성장과 연결하는 정책이 타당한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