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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父 "우리 집은 의료 명문"…친일 이어 가짜 이력 논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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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父 "우리 집은 의료 명문"…친일 이어 가짜 이력 논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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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하영이 증조부인 안상호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 가운데 과거 글에서 하영의 부친이 언급한 안상호의 이력에 추가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영의 부친이 쓴 과거 기고문 속 오류를 지적하는 게시물이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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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의 부친 안병문 원장은 2002년 중앙일보에 '큰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주제의 기고문을 썼다.

    당시 안 원장은 "우리 집안은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라며 "증조부께서는 종두법 실시로 유명한 지석영 선생과 함께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관립의학교 교관으로 계셨고, 초대 한성의사회장을 지내셨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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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부 기록 등에는 대한제국 정부의 명을 받고 지석영과 함께 의학교 교관으로 재직한 인물은 안상호가 아닌 김익남이다.

    김익남은 1899년 7월 도쿄지케이의원의학교를 졸업한 뒤 정부의 요청을 받아 1900년 8월 귀국 후 관립의학교 교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4년간 32명의 근대 한국인 의사를 배출한 인물이다.


    반면 안상호는 1904년 10월 교관으로 임명됐지만, 귀국을 거부하다 석 달 뒤 해임됐다. 이후 관립의학교는 1907년 3월10일 일본 통감부에 의해 폐교됐으며, 안상호는 폐교 이후인 3월21일에야 귀국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에서는 1899년 7월 김익남이 도쿄지케이의학교를 졸업했을 당시 서재필이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우리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는 최초로 근대식 정규 의학교육을 받고 의사가 된 인물이 김익남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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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1908년 일본인 의사단체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의사단체인 의사연구회(지금의 대한의사협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다.

    하영은 여러 방송에서 증조부가 한양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밝히며 "4대째 의사 가문"임을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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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 성격의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을 맡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도 이 단체 소속이다.

    안상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인터뷰에서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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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14일 입장문을 내고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명백하다"며 "논란의 본질은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여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 인식과 성찰 부재'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편지를 통해 "부끄럽게도 무지한 상태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며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간을 지낸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족사를 가볍게 언급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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