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베트남은 대충 다 안다'면서 시작하는 기업가는 딱 3년만 지나면 다 사라졌더라고요. 현지인과 문화를 존중하는 겸손함이 비즈니스의 제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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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만달러를 들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연 매출 9000만 달러(약 1200억 원) 규모의 종합물류기업 PTV그룹을 일궈낸 최분도 회장. 현지에서 20년 넘게 산전수전을 겪은 그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성패를 가른 '키'로 겸손과 존중을 꼽았다. 베트남 산업에 대해선 "장기적으로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베트남 경제에 대한 최 회장과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동남아 중에서도 하필 베트남으로 향했던 이유가 있나.
1993년 한 중소기업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1995년부터 해마다 한두 번씩은 베트남으로 출장을 다녔는데, 한국인들의 정서와 비슷한 구석이 정말 많다고 느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들을 존중하고,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식의 유교적 질서들이랄까. 공동체 질서를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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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대체로 똑똑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하나를 가르쳐도 열을 알 정도로 학습 능력이 뛰어났다. 말이 잘 통하니 일 처리도 금방 됐었다. 다들 부지런했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새벽 5시가 되면 사람들이 일하러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때의 베트남은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있었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다만 국민들이 '한국만큼 잘살아보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똑같이 전쟁을 겪고도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을 보면서 '한국도 잘 사는데 우리는 왜 못하겠나'는 의식이 있었다. 지금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 문화의 시작점 중 하나로 베트남을 꼽는데, 우연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 나라는 성공하겠다' 싶었던 게, 교육열이 엄청 높았다. 동네의 조그만 보습학원 앞에 오토바이가 바글바글하던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려는 행렬이었다.
▲베트남을 처음 접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때와 지금의 베트남을 비교하자면.
과거보다 국민들이 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한다고 느낀다. 전쟁에 대해선 고통스러운 기억도 많지만, 유연함도 갖추고 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분위기랄까. '우린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이란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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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적으로 보면 모든 부문에서 발전했다. 외국인에게 시장을 개방하면서 투자가 어마어마하게 이뤄졌다. 소득수준도 향상됐다. 소위 말하는 '스카이라인'도 예전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고 느낀다. 처음 왔던 베트남과 지금은 비교할 수 없다.
▲베트남 경제의 특성은 뭐라고 보나.
외국계 기업이 수출을 주도하면서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전체 수출의 20%가 외국계 기업에서 나오는 나라다. 특히 삼성이 일으키는 수출의 비중이 크다. 한때는 수출의 20% 이상을 삼성이 책임졌다. 지금도 10% 이상이 삼성 몫인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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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입장에서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닐텐데.
사실 베트남 입장에선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도 같이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 저변도 넓어지고, 안정적인 공급망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베트남은 아무리 사회주의 국가여도 정부 자체가 임기가 있는 지도체제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의 대형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이런 부분까지는 경제개발 계획이 세밀하지 못한 것 같다.
앞으로 이런 부분이 다소 약점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정부와 소통할 일이 있을 때 협력사들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주요 산업의 장비나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면 나중에 공급망이 위협받을 때 큰일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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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급망을 강화할 순 없나.
베트남에도 빈그룹이나 타코그룹 등 큰 기업들이 많은데, 대체로 부동산으로 성장했다. 자동차 산업 등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부동산이 주력이다. 반도체나 바이오, 로봇 같은 유망한 산업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성과를 내는 기업은 잘 안보인다.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론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인이 참고해야 할 것 같다.
베트남은 여전히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취약하다는 점을 알아뒀으면 한다. 장비는 몰라도 특히 소재나 부품 분야는 장기적으로 주목하고 진입했으면 좋겠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자유무역협정(FTA)상 역내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해외에 수출할 때 원산지를 인정받고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소재·부품을 역내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간 야심차게 진출했다 실패한 기업들도 많이 봤을텐데.
베트남에서 물류 사업을 하다 보니 이곳으로 처음 진출하는 기업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긴 하다. 이제는 '이 사람은 여기서 잘 되겠다' 혹은 '잘 안 되겠다' 싶은 게 어느 정도 보이긴 하더라.
▲무슨 차이가 있나.
처음 진입할 때 베트남에 대해 "대충 다 압니다"라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3년 뒤엔 다 사라져있다. 반면에 "많이 좀 알려달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사람은 적어도 절반 이상은 살아남는 것 같다.
핵심은 베트남 사람과 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 사람들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잘 적응해나간다. 반대로 베트남이란 나라와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베트남 사람들도 절대 같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베트남 정부의 정책은 어떤가
과거보다 많이 투명해졌다. 최근 베트남 공안부는 국가 전자 신분증 시스템인 ‘VNeID’ 사업을 시작했다. 내 개인정보는 물론 회사정보까지 이곳에 전부 반영된다. 기업의 세무 문제 등을 모두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법령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세수가 부족한 문제도 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