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인공지능이 국가 운영의 방식과 질서 자체를 바꾸고 있는 지금, 기존의 디자인 접근만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이제 디자인은 제품과 공간, 서비스를 넘어 정책과 행정, 나아가 국가 운영 전반을 설계하는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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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정부 역시 디자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AI 시대 디자인은 더 이상 결과물을 만드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기술과 사람, 정책과 행정, 도시와 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국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구체화하는 새로운 국가 운영의 프레임이자 혁신의 방법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오랫동안 법과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며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관리하는 정부’를 지향해 왔다. 전자정부를 통해 행정은 디지털로 전환되었고, 국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디지털화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정책을 만들고 행정을 제공하는 과정 자체를 시민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디자인 행정(Government by Design)’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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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행정은 행정 절차의 외형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정책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민의 경험과 행동을 분석하고, AI가 제공하는 데이터와 예측을 활용해 국민이 이해하기 쉽고 실제 이용하기 편리한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공급자의 논리에서 출발한 정책을 국민의 삶과 경험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AI는 행정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의 효과를 예측하며 행정 절차를 자동화할 수 있다. 그러나 처리 속도가 곧 좋은 행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의 수준은 복지 신청이 얼마나 쉽고 직관적인지, 재난 정보가 얼마나 신속하고 명확하게 전달되는지, 의료·교통·교육 서비스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행정 역시 국민이 경험하는 하나의 서비스이며, 그 경험을 개선하는 것은 디자인의 핵심 영역이다.

현 대한민국 정부는 AI 정부, 디지털정부, 국민주권 정부를 지향하며 지역 균형발전과 공공부문의 AI 전환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국가 운영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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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AI가 정책 결정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 AI 정부(Government)가 행정의 지능을 높인다면 디자인에 의한 정부(Government by Design)은 국민이 체감하는 행정의 품질을 높인다. AI가 더 나은 정책 대안을 찾는 데 기여한다면, 디자인은 그 정책이 국민에게 이해되고 신뢰받으며 실제 삶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미래 정부에는 데이터 과학자뿐 아니라 정책 디자이너와 서비스디자이너가 필요하다. AI가 최적의 정책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국민이 이를 이해하고 신뢰하며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에는 인간 중심의 관점과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디자인 총괄 체계와 정책디자인 기능을 강화하고, 주요 국정과제에 디자인 검증과 시민 경험 평가를 도입하는 새로운 행정 혁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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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의 도시는 스마트 기술을 많이 도입한 곳이 아니라 기술이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곳이어야 한다. 교통과 복지, 환경과 안전, 문화와 관광이 개별적인 기능을 넘어 하나의 생활 경험으로 연결될 때 도시의 경쟁력도 완성된다. 기술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것, 이것이 AI 시대 도시디자인이 담당해야 할 새로운 역할이다.
이제 정부의 운영 방식 자체를 디자인해야 한다. 정책은 발표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서 이해되고 활용되도록 만들어져야 하며, 도시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변화해야 한다. 국가 경쟁력 역시 더 많은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얼마나 인간의 삶에 유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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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가 경쟁력은 GDP나 기술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국민이 매일 경험하는 정책과 행정의 품질, 그리고 도시가 제공하는 삶의 경험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가 행정의 지능을 높인다면 디자인은 그 지능이 국민의 삶에 제대로 작동하도록 방향과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디자인에 의한 정부(Government by Design)은 AI 시대 대한민국이 기술 선도국을 넘어 사람 중심의 AI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