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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과 강릉…그을린 벽 앞에서,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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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과 강릉…그을린 벽 앞에서,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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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에 탄 인쇄소는 미술관이 되었고, 산불을 겪은 도시의 작품들이 그 안에서 상영된다. 흉터를 지우지 않은 두 장소가 나란히 회복을 발음할 때, '함께 보기'는 전시 제목이 아니라 지시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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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콕 차이나타운의 소음 한가운데, 간판도 배너도 없는 건물이 서 있다. 한때 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교과서를 찍어내던 인쇄소였던 이곳은 2001년 화재로 심각하게 훼손된 뒤 23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2023년 후원자 마리사 치아라바논이 이곳을 사들여 미술 기관으로 전환하면서, 세 개의 연결된 건물로 이루어진 이 브루탈리스트 복합체는 방콕 쿤스트할레라는 이름을 얻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을 거쳐 하우저&워스 디렉터를 지낸 건축가이자 큐레이터 스테파노 라볼리 판세라가 이끄는 이 공간의 원칙은 단호하다. 복원하지 않는다는 것. 장식과 마감을 걷어낸 날것의 물성, 미완인 채로 남은 상층부, 그리고 불에 탄 흔적까지. 건물은 자신이 통과해온 사건을 지우는 대신 그것을 전시의 조건으로 삼는다.

    파마리서치문화재단과 방콕 쿤스트할레가 공동 주최하는 《경계에서 함께 보기(Watching Together at the Boundary)》(7월 15일~8월 9일)는 바로 이 공간에서 열렸다.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을 통해 제작·발표된 커미션 작품들을 방콕 쿤스트할레의 공간적 맥락에 맞춰 재구성한 무빙 이미지 스크리닝 프로그램으로, 고등어, 아라야 라스잠리안숙, 이양희, 정연두, 홍이현숙 다섯 작가가 참여했다. 정연두의 〈싱코페이션 #5〉(2025)는 3채널 비디오와 항아리 조명 설치였던 원작이 이번 상영을 위해 단채널 버전으로 수정되는 등, '이동'이 아닌 '번역'에 가까운 재구성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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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강릉단오제와 태국 송크란이 공유하는 감각에 주목한다. 서로 다른 지역의 전통이지만, 공동체가 모여 안녕을 기원하고 삶의 리듬을 회복해왔다는 점에서 두 축제는 맞닿아 있다. 여기에 장소의 겹침이 있다. 강릉을 포함한 영동 지방은 지형과 바람, 기후와 식생이 겹쳐지며 산불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땅이다. 화재의 기억을 간직한 건물에서 산불을 겪은 도시의 작품들이 상영된다는 것, 불의 기억을 가진 두 장소가 회복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흉터를 감추지 않는 것이었다. 그을린 벽 앞에서 전시 제목의 '함께 보기'는 개념이 아니라 지시문으로 읽힌다.


    이 공간에서 무빙 이미지라는 형식의 선택은 우연이 아니다. 판세라는 복원 대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층별로 공간을 하나씩 '길들여가는' 방식을 취해왔고, 코라크릿 아루나논차이의 비디오 설치를 계기로 건물 한 동 전체가 상설 시네마로 개조되기도 했다. 어둠 속에 모여 이미지와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일?상영을 뜻하는 프랑스어 세앙스(seance)가 본래 '모임'을 뜻하고 강령술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이 전시에서 은유 이상이 된다. 제의의 전개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상영 프로그램의 구조 원리로 삼은 《경계에서 함께 보기》에서, 한 공간에 머물며 시간을 나누는 관람 행위 자체가 환대와 회복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개막일인 7월 15일, 이 명제는 무대 위에서 실연되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유산인 강릉단오제 무격부 전승자들로 구성된 전통연희집단 푸너리(김운석 악사 외 3인)의 오프닝 공연은 관객 참여형으로 기획되어, 관객들이 강릉단오제의 상징적 제의물인 지화(紙花)를 직접 손에 들고 퍼포먼스의 일부가 되었다. 굿의 악·가·무·극을 동시대 무대 언어로 풀어내는 푸너리의 제의적 리듬이 그을린 콘크리트 공간을 채우는 동안, 방콕의 관객들은 언어와 맥락 없이도 강릉의 오래된 신명에 몸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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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진 정연두 작가와 박소희 큐레이터의 토크에서 두 사람은 강릉의 의례적 감각이 방콕이라는 새로운 맥락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짚었다. 〈싱코페이션 #5〉의 출발점이 된 강릉단오제의 신주 빚기?시민들이 모아 온 쌀이 날씨와 온도, 미생물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술이 되는 과정?에 대해 정연두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것을 믿는 시각예술가인 제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색하지만,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썩어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슬프지만, 그것이 술이 되어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방식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박소희 큐레이터는 이 의례의 현재성을 짚었다. "2022년에 단오제를 처음 보았을 때 전통적인 의례라고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현재까지 이어지는 굉장히 이상한 현상 같았죠. 과거에 머물러 있는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불의 흔적을 작가와 함께 목격했던 경험을 회고하며, 그는 재난이 반복되어도 어김없이 축제를 치러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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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는 재단이 예고한 더 긴 여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재단은 2027년 제4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27)에서 복합문화공간 '인온(INON, 가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전시를 선보인 뒤, 2028년 9월 인온의 공식 개관과 함께 방콕 쿤스트할레와의 장기 협력을 심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협력 전시와 한·태 작가 교환 프로그램 등이 예고되어 있다.

    서구의 승인을 경유하지 않고 아시아의 두 도시가 각자의 제의와 재난의 기억을 맞대어 보는 일. 《경계에서 함께 보기》가 제안하는 교류의 경로는 그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가 어느 장소에 굳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 장소만이 만들어내는 겹침 때문일 것이다. 불탄 인쇄소의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나란히 앉아 강릉의 시간을 나누는 경험은 다른 어디에서도 성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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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대는 주제가 아니라 형식이다

    박소희 상임이사는 어두운 공간에 함께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내는 상영이라는 형식 자체가 이번 전시의 주제라고 강조했다. 정보가 아니라 잔상이, 결론이 아니라 감응이 전시를 완결시킨다는 것. 강릉과 방콕, 화재의 기억을 가진 두 장소의 만남은 그렇게 형식이 곧 내용이 되는 실험이었다.



    ▷ 이번 전시는 GIAF 커미션 작품들의 단순한 이동 전시가 아니라 방콕 쿤스트할레의 공간적 맥락에 맞춘 재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연두 작가의 〈싱코페이션 #5〉는 3채널 비디오와 항아리 조명 설치가 단채널 상영본으로, 이양희 작가의 공연과 워크숍이 결합된 작품은 단채널 비디오 〈이양희 입춤〉(2020/2025)으로 재구성되었는데요. 이 전환 과정에서 작가들과 어떤 논의가 오갔나요?

    "GIAF의 커미션 작품들은 애초에 강릉의 특정한 장소와 환경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싱코페이션 #5〉는 옥천동 웨어하우스에서 3채널 영상과 항아리 조명 설치가 장소와 함께 호흡하도록 설계되었고, 이양희 작가의 작업도 작은공연장 단에서 퍼포먼스와 상영, 워크숍이 얽힌 다층적인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대로 옮기면 물리적으로는 '이동'이 되겠지만, 강릉에서 살아 있던 작품이 방콕에서는 강릉의 기록물이 되어버리는 거죠. 화재의 기억을 품은 건물, 상영을 중심에 둔 공간, 방콕 관객의 시간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맞춰 작품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양희 작가와는 몸과 몸이 맞닿던 프로그램 전체를 대신해 〈이양희 입춤〉이라는 무빙 이미지를 중심에 두기로 했는데, 입춤 자체가 '춤에 입문한다'는 뜻을 지닌 형식이니 방콕의 몸들에게 건네는 첫 초대장으로 이보다 적절한 작품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연두 작가는 세 채널을 하나의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줄지 여러 차례 편집을 시도했는데, 한 채널의 서사로 재구성하는 순간 작품 안의 '대화'에 전달자나 해석의 개입이 생기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세 채널을 하나의 화면 안에 병치하는 방식으로 돌아갔어요. 화면은 작아졌지만 장면 사이의 관계와 대화는 그대로 유지한 거죠. 이번 전시는 재현이라기보다, 작품이 새로운 장소와 조건 속에서 다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 방콕 쿤스트할레는 2001년 화재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운영되는, 그 자체로 강한 발언을 하는 공간입니다. 산불을 겪은 강릉의 작품을 화재의 기억을 가진 건물에서 상영한다는 이 강렬한 겹침은 기획 단계에서 의도된 것이었나요, 아니면 공간을 만나면서 발견된 것이었나요? 강릉단오제와 송크란을 '공동체 회복'이라는 감각으로 연결한 핵심 프레임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화재의 기억이라는 겹침은 설계한 것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만나면서 발견한 연결이었고, 송크란과의 연결도 그 발견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시작은 아주 개인적인 방문이었어요. 코라크릿 아루나논차이가 기획한 마지막 《Ghost》를 보러 방콕에 갔다가 처음 방콕 쿤스트할레에 들렀는데, 화재를 겪은 건물이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새로운 문화적 장소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습니다. 마침 그해 GIAF는 대관령에서 내려오는 강한 바람과 그 바람이 불러오는 불,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과 비인간 존재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었거든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탁영준 작가의 소개로 판세라 디렉터에게 처음 메일을 보내며 그 공명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넸고, '풍경, 기억, 변형은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주제'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것이 이 전시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두 장소를 사건의 크기로 비교하려 하지 않았어요. 흔적이 남은 곳에서 시간이 다시 시작될 때 무엇이 생겨나는지를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송크란과의 관계는 태국의 문화적 맥락을 리서치하며 구체화됐습니다. '둘 다 아시아의 제의니까 비슷하다'는 연결이 아니었어요. 서로 매우 다른 역사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두 문화가,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며 공동체의 관계를 확인하는 살아 있는 축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물을 뿌리고, 술을 빚고, 꽃을 바치는?물질을 매개로 공동체의 바람이 쌓인다는 점에서 두 축제는 서로를 알아보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율에서 중요했던 것은 두 문화를 하나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채로 만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시자, 오시자'라는 구음의 뜻, 신을 청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설명으로 전달되지 않아요. 무엇은 설명 없이도 몸으로 건너가고, 무엇은 끝내 다른 것으로 남습니다. 그 차이를 지우지 않는 것이 이번 교류에서 가장 중요했습니다."

    ▷ 방콕 쿤스트할레는 코라크릿 아루나논차이의 작업을 계기로 건물 한 동을 상설 시네마로 개조할 만큼 무빙 이미지를 공간 운용의 중심에 두어온 기관입니다. 스크리닝이라는 형식의 선택은 이 기관의 정체성에 대한 응답이었을까요? 어둠 속에 모여 시간을 공유하는 상영 형식 자체가 '함께 보기'라는 개념과 맺는 관계?형식이 곧 주제가 되는 구조를 처음부터 의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정체성은 물론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첫 협업에서 상대가 가장 잘하는 언어로 말을 거는 것이 대화의 시작으로 자연스러우니까요. 하지만 순서로 말하면, 우리가 '함께 보기'라는 형식을 제안했고 그들이 존중해준 것에 가깝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영이라는 형식 자체가 '함께 보기'를 제안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점이에요. 각자가 작품 앞을 지나가는 전시가 아니라, 어두운 공간에 함께 앉아 같은 시간 동안 하나의 화면을 바라보는 것. 환대를 주제가 아니라 형식으로 두고, 정보가 아니라 잔상이, 결론이 아니라 감응이 전시를 완결시키기를 바랐어요. 형식이 곧 주제가 되는 구조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맞습니다."



    ▷ 오프닝의 푸너리 공연은 관객들이 지화를 직접 손에 들고 퍼포먼스의 일부가 되는 관객 참여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굿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참여시키는' 방식과 지화라는 매개를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언어와 맥락 없이도 굿이 전달되는 순간을 현장에서 목격하며, 큐레이터로서 새롭게 확인하게 된 것이 있다면요.

    "강릉단오제를 방콕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아 보였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강릉에서 단오제는 무대 위의 공연이 아니거든요. 신주를 빚는 자리부터 대관령 산신제, 남대천 굿당, 난장까지 도시 전체가 한 달 가까이 함께 움직이는 시간이고, 굿판에서는 무녀와 악사만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구경 온 시민들까지 모두가 서로를 맞이하는 환대의 주인이 됩니다. 그래서 푸너리의 김운석 선생님과 처음부터 나눈 이야기가, 관객이 어떤 방식으로든 악사들과 함께 신을 부르고, 함께 놀고, 함께 보내주자는 것이었어요. 지화를 고른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강릉단오제의 마지막 소제 때가 되면 굿당 제단의 지화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사람들은 그 종이꽃을 가져가 불에 태웁니다. 한 계절 동안 신과 함께 있던 물건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 불로 돌아가는 순환이죠. 방콕의 관객들이 지화를 들고 퍼포먼스의 일부가 된 것은 그 순환을 잇는 일이었고, 화재의 기억을 가진 이 건물 또한 거기서 중요한 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어요. 이 공연은 부대 행사가 아니라 '함께 보기'라는 개념의 실연으로 읽어주시면 정확합니다.

    현장에서 새롭게 확인한 건, 뜻도 모르는 구음과 장단에 몸으로 반응하고 환호하는 방콕 관객들의 얼굴 속에 2022년의 제가 서 있었다는 거예요. 저도 단오를 활자로만 알던 사람이었거든요. 처음 남대천 굿당에서 '에시자, 오시자' 하는 구음이 울리는 순간, 뜻도 모르는 소리인데 무언가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만은 몸이 먼저 알아들었던 것 같아요. 방콕에서 그 장면이 반복되는 걸 보며 무형유산이 왜 '살아 있는 유산'이라 불리는지 실감했습니다. 조금 쑥스럽지만 저는 강릉단오제가 포함된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형체가 없는 유산은 쓸고 닦을 수가 없잖아요. 소리와 몸짓으로 존재하는 유산을 지키는 길은 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빗자루와 호미 대신 전시와 이야기를 든 지킴이. 그게 큐레이터인 제가 단오제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걸 새롭게 확인했습니다."



    ▷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은 재생의학 기업이 설립한 재단이고, 강릉이라는 도시의 재난과 회복을 다뤄왔으며, 이번에는 화재의 건물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재생'이라는 말이 기업, 도시, 공간을 관통하고 있는 셈인데, 이 일관성은 얼마나 의식적으로 설계된 것인가요?

    "맞아요, 본사는 재생의학 기업입니다. 그런데 저는 '재생'이라는 단어를 예술에서 쓸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없어지거나 노후한 것도 아닌데 예술과 도시에 재생을 갖다 붙이는 건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만의 재생을 정의해온 것 같아요. 없는 것을 살리는 게 아니라, 이미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는 일이라고요. GIAF가 정확히 그 일을 합니다. 강릉을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강릉을 다시 읽어보는 것. 일관성을 의식적으로 설계했다기보다, 재단이 해온 선택들을 되돌아보니 서로 통하는 태도가 있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거예요. 있는 것을 다시 보는 태도. 그 태도로 도시를 읽다 보니 재난과 회복의 이야기를 만났고, 그 태도로 공간을 만나다 보니 화재의 기억을 지우지 않은 건물과 연결된 거죠."

    ▷ 2028년 하반기 공식 개관을 앞둔 복합문화공간 '인온(INON)'은 어떤 곳으로 만들어지고 있나요?

    "명칭은 '인온 아트 포레스트'로 확정되어 가고 있고, 2028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자로 인온(絪縕), 서로 다른 기운이 얽히고 어우러져 만물이 생성되는 상태를 뜻해요. 소리 그대로 영어로 읽으면 'IN ON', 무언가의 안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데, 한자의 뜻과 우연처럼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온이 지향하는 것도 머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상태, 예술을 통해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전한 시간이에요.

    공간의 성격은 전시관보다 플랫폼에 가깝습니다. 작가가 머물며 장소를 읽고, 연구하고, 제작하고, 때로 실패하는 과정까지 예술적 생산의 일부로 바라보려 해요. 강릉 안현동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아트스페이스를 중심으로 두 개의 주요 전시장이 들어서고, 숲 자체를 하나의 중요한 전시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객도 전시를 빠르게 소비하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보내는 체류자에 가까워요. GIAF가 페스티벌 기간 동안 만들어온 작가와 장소, 시민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인온에서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계속 쌓아갈 수 있습니다."



    ▷ 인온 개관에 앞서 2027년 GIAF27이 인온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전시를 먼저 선보입니다. 고정된 거점이 생기면 GIAF 특유의 장소 기반 성격은 어떻게 달라지거나 유지될까요? GIAF27의 방향에 대한 단서들도 궁금합니다.

    "인온이라는 거점이 생기더라도 장소 기반의 방식은 유지합니다. 그것이 GIAF의 중요한 정체성이니까요. GIAF27에서도 인온은 야외 공간을 중심으로 활용하고, 주문진과 신영극장을 비롯한 강릉 도심의 여러 장소로 전시와 프로그램을 확장하려 합니다. 인온의 등장은 GIAF의 장소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하는 일이에요.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 전시장을 가지고 있는가보다, 왜 지금 이 작품과 이야기가 이 장소에 있어야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는가예요. GIAF27은 현재 허난설헌과 허균의 자(字)인 '경번'과 '단보'에서 출발해, 누군가의 곁에 머물며 서로를 지지하고 버티게 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3회에서 다룬 '환대' 이후, 관계와 공존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 이번 전시를 "인온과 방콕 쿤스트할레를 잇는 글로벌 문화 가교의 출발점"이라고 하셨고, 한·태 작가 교환 프로그램 등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국제 교류의 구조'란 어떤 형태인가요? 더불어 최근 동시대 미술에서 '아시아성'이 화두로 떠오르며 아시아의 서사, 영성, 제의가 적극적으로 호명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자칫 아시아를 다시 '영적인 타자'로 소비하는 시선과 겹칠 위험도 있습니다. 서구를 경유하지 않는 아시아 대 아시아의 직접 교류라는 이번 전시의 경로가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출발은 단순했습니다. GIAF 커미션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했어요. 하지만 그 마음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구조가 필요합니다. 전시를 교환하고, 서로의 큐레이터가 서로의 공간에서 전시를 만들고, 상대 지역 작가에게 커미션을 의뢰하고, 예고된 작가 교환 프로그램까지. 작품만이 아니라 사람이 오가고, 그 사람들이 머문 시간이 서로의 기관에 쌓이는 형태를 그리고 있어요. 다만 지속 가능성의 핵심은 프로그램 목록보다 관계를 만드는 순서에 있습니다. 이번 전시도 도록을 보내고, 서로의 프로그램에 초대하고, 활동을 지켜보는 시간을 거쳐 만들어졌어요. 전시 교환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쌓는 데서 시작하는 것. 이 순서를 지키는 한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성'에 대해서는, 그 말을 하나의 공통된 미학이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데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아시아라는 범주 안에는 너무나 다른 역사와 종교, 언어, 삶의 방식이 존재하니까요. 제의나 영성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은 흥미롭지만, 그것이 '아시아적인 것'의 대표 이미지가 되는 순간 또 다른 고정관념을 만들 수 있어요. 요즘 제가 빠져 있는 학자가 '실천의 생태학'을 말하는 이자벨 스탱게르스인데, 어떤 이론도 대상을 그 특수한 환경과 분리할 전권을 갖지 못한다고 하죠. 저는 담론보다 실천에, 지표면에 더 닿아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강릉의 굿을 '아시아의 영성'으로 추상화하기보다, 강릉이라는 한 장소가 쌓아온 구체적인 시간과 경험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방콕에서 흥미로웠던 것도 '같은 아시아라서 잘 이해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직접 만났을 때 무엇은 설명 없이 건너가고 무엇은 끝내 다르게 남는지를 보는 일이었어요.



    환대에 대한 해석에 희망만 있을 수는 없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어요. 이번 전시 안에도 그 긴장이 들어 있습니다. 고등어의 〈사각의 검정〉은 구원과 보호의 서사에 온전히 포함되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무는 인물들을 통해 환대에 내재한 선별과 배제를 드러내고,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의 〈개들의 궁전〉에서 사원이라는 오랜 환대의 장소는 어딘가에서 개들이 계속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죠. 환대를 말하는 자리 곁에는 언제나 그 바깥이 있고, 저는 이 전시가 그 바깥을 지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서구를 경유하지 않는 직접 교류의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고 봐요. 서로를 '아시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 것이 아니라, 강릉과 방콕처럼 구체적인 장소들이 서로를 직접 바라보는 것. 저는 지역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다른 지역과 만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언어가 생긴다고 믿습니다."

    ▷ 마지막으로, GIAF가 강릉 기반의 국제 예술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지역 페스티벌이 국제성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다시 정의하게 되셨나요?

    "GIAF를 계속하면서 국제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해외 작가를 초대하는지, 얼마나 멀리 알려지는지의 문제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요. 강릉을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다른 도시와 연결될 수 있는 더 구체적인 언어가 생긴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 제목에 '경계'를 넣었는데, 이번 경우의 경계는 일종의 문지방이라고 생각해요. 문지방은 이곳과 저곳을 구분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연결합니다. 지역 페스티벌의 국제성이란 그 문지방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문지방 위에 함께 서서 양쪽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요. 강릉의 가장 구체적인 것이 방콕의 가장 구체적인 것과 만날 때, 그 사이에서 어느 쪽의 것도 아닌 새로운 언어가 생깁니다. 지역을 국제적인 언어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깊이 읽고 그 구체성을 잃지 않은 채 다른 장소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생각하는 지역 페스티벌의 국제성입니다."

    방콕=안동선 프리랜서 미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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