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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야 클래식이야? 완벽주의자 라벨이 빚어낸 20분의 전율 [허세민의 제철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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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야 클래식이야? 완벽주의자 라벨이 빚어낸 20분의 전율 [허세민의 제철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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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들은 재즈를 지금보다 더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1928년, 생애 첫 미국 여행길에 오른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 '라 발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으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 중년의 작곡가(당시 53세)는 뉴욕의 밤거리를 가득 채운 재즈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정형화된 클래식 음악의 틀을 깨뜨리는 즉흥 연주, 낯선 엇박자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리듬이 라벨의 음악적 본능을 깨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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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당대 최고의 재즈 클럽인 뉴욕 '코튼클럽'으로 달려가 듀크 엘링턴의 피아노 연주에 몸을 맡기고, '랩소디 인 블루'로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허문 미국의 신예 작곡가 조지 거슈윈(당시 29세)을 만나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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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의 마음을 뒤흔든 재즈 선율은 프랑스로 돌아온 그의 악보 위에 녹아들었습니다. 그가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재즈 특유의 감각적인 리듬감이 살아있는 '피아노 협주곡 G장조'입니다.




    이 곡은 도입부부터 톡 쏘는 탄산음료를 마신 듯한 청량감을 안깁니다. 두 개의 나무 조각을 맞부딪혀 소리를 내는 타악기 '슬랩스틱'으로 시작해 피콜로의 경쾌한 독주, 건반을 미끄러지듯 훑는 피아노의 투명한 글리산도가 몰입도를 더합니다. 재즈적 선율이 가장 돋보이는 악장입니다.

    2악장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됩니다. 이 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A장조(K.581)' 중 2악장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단 한 마디의 지루한 반복 없이 30마디 넘게 이어지는 피아노 솔로는 듣는 이의 번뇌와 피로를 씻어내며 완벽한 평화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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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작 이 고요를 빚어낸 완벽주의자 라벨에게 2악장은 엄청난 고통이었나 봅니다. 그는 "2악장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써 내려가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돌이켰습니다. 라벨이 영혼까지 탈탈 털어 완성한 이 악장은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는 말의 의미를 절로 깨닫게 합니다.

    3악장은 앞선 1악장과 같은 명랑한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더위를 날려버릴 듯 강렬하고도 시원한 트럼펫 연주와 곡 말미에 울려 퍼지는 베이스 드럼의 날카로운 타격이 인상적인 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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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전체 길이는 20분을 조금 넘어 40분 안팎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 부담이 없는 편입니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몰두하기 어려운 무더운 여름날 감상하기에 최적의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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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여름 라벨의 이 명곡은 피아니스트들의 손끝을 타고 연이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달 1일 '프랑스의 빛'이라는 주제로 열린 하우스콘서트에선 반 클라이번 주니어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홍석영(19)이 이 곡으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지난달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축제 'BBC 프롬스' 개막 공연에선 피아니스트 임윤찬(22)이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곡을 연주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머리칼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그의 무대는 유튜브에서 이미 수십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임윤찬은 연주에 앞서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의 2악장을 두고 "인어공주 이야기가 떠오른다"며 남다른 해석을 드러냈는데요.

    이 작품의 새로운 해석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무대도 연달아 이어집니다. 지난해 쇼팽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케빈 첸(21)이 이달 19일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에서 독주회를 열고, 젊고 감각적인 해석으로 같은 곡을 연주합니다. 이어 11월 21~22일 롯데콘서트홀에선 '건반 위의 호랑이'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거장 마르타 아르헤리치(85)가 KBS교향악단, 지휘자 샤를 뒤트와 함께 이 곡을 선보입니다. 젊은 연주자와 피아니스트의 전설이 각각 펼쳐낼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비교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악도 제철에 들어야 맛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클래식 명곡을 한 달에 한 번 소개합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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