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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외국인 몰려오는데…근절되지 않는 바가지 상술[안재광의 천만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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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외국인 몰려오는데…근절되지 않는 바가지 상술[안재광의 천만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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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광화문과 경복궁, 명동을 걷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말보다 외국말이 더 많이 들립니다. 경복궁 앞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사람 상당수가 외국인입니다. 얼굴도 달라졌습니다. 과거 서울 관광지의 외국인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요즘은 미국과 유럽, 중동에서 온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서울 관광객의 국적이 세계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071만 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3% 늘었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보다도 26.9% 많습니다. 역대 최대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이 광화문에서 공연한 지난 3월에는 한 달에만 204만 명 넘게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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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만 늘어난 게 아닙니다. 올 상반기 외국인이 한국에서 카드로 쓴 돈은 10조389억원. 1년 전보다 50.8% 뛰었습니다. 지난해에는 9월이 돼서야 10조원을 넘었는데 올해는 석 달 빨랐습니다. 사람보다 돈이 더 빠르게 몰리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흐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서울을 ‘글로벌 톱3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이를 위한 ‘G3 서울 기획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일본 모리기념재단의 지난해 세계도시종합경쟁력지수에서 서울은 런던과 뉴욕, 도쿄, 파리, 싱가포르에 이은 6위였습니다. 5위 싱가포르와의 점수 차는 불과 5점입니다. 세계 3대 도시가 되겠다는 말이 허황된 것 같진 않습니다.


    ◆인천공항 가는 데 택시비 7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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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뽕’이 차오르는 얘기입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원조를 받던 나라의 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선언이니까요. 최근 한국의 ‘웅장한 위상’을 설파해 온 한 유명 강연자가 청년 임금 체불과 채무 의혹에 휩싸이면서 이런 주장까지 싸잡아 조롱하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서울이 무슨 글로벌 도시가 되겠냐는 비아냥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국뽕을 팔던 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외국인 관광객 1071만 명과 지출액 10조원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서울이 이 기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없애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창한 것도 아닙니다. 바가지 문제입니다.

    올 2월 여행으로 인도네시아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차로 5분 거리였습니다. 기사가 부른 값은 8만원. 밤이었고 초행이었고 현지 물가를 몰랐으니 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2000원이면 가는 거리였습니다. 40배를 낸 셈입니다. 여행 일정은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올리면 그 8만원이 먼저 생각납니다. 첫 바가지가 여행 전체에 영향을 줬습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도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외국인이 많이 가는 명동, 남산타워 등에는 바가지 택시가 기승을 부립니다. 정상 요금의 2~3배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미터기를 끄고 신용카드도 받지 않습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광진구에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탄 대만인 관광객의 카드에서 69만800원이 결제됐습니다. 정상 요금의 10배가량이었습니다. 기사는 결제 과정에서 숫자 ‘0’을 하나 더 누른 실수라고 해명했고 환불 절차도 진행됐습니다. 고의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까지 간 요금을 낸 것이냐”는 관광객의 글과 영수증 사진은 이미 SNS를 타고 퍼졌습니다. 실수는 한 번이지만 이미지는 국경을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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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장시장에선 외국인 유튜버에게 500mL 생수 한 병을 2000원에 판 일이 논란이 됐습니다. 확인해보니 같은 값을 받은 노점이 두 곳 더 있었습니다. 가격표에 2000원이라고 써놓고 내·외국인에게 똑같이 받았으니 법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장 상인회는 해당 노점에 사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물 한 병 가격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2024년 외래관광객 조사에서 외국인의 한국 여행 활동 1위는 식도락 관광으로 80.3%였습니다. 쇼핑보다도 높았습니다. 외국인 10명 중 8명이 한국 음식을 먹으러 다닙니다. 시장 좌판에서 벌어지는 작은 거래가 한국 관광의 중심에 있다는 뜻입니다.

    ◆BTS가 데려온 손님을 쫓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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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가지는 서울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난 6월 BTS 부산 공연을 앞두고 일부 숙박업소가 기존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뒤 더 비싼 값에 객실을 다시 팔았습니다. 평소보다 10배 넘는 가격을 부른 곳도 있었습니다.

    한국소비자원 등이 부산 숙소 135곳을 조사했더니 공연 주말 평균 숙박 요금은 앞뒤 주말보다 2.4배 높았습니다. 5월 전국에서 접수된 관광 불편 신고 368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5건이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신고자의 84%는 외국인이었습니다. 세계적 스타가 수십만 명을 데려왔는데 일부 상인이 그 손님을 다시 오지 않게 만든 것입니다. 황금알을 꺼내려다 거위 배를 가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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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바가지는 더 치명적입니다. 한국이 가진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카페에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사라지지 않는 나라, 지갑을 잃어버려도 돌아오는 나라, 밤늦게 혼자 걸어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극찬을 받는 한국입니다. 정직함과 안전함이 국가 브랜드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택시가 미터기를 끄고 값을 네 배 받으면 배신감도 네 배가 됩니다.

    바가지라는 장사 방식 자체도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바가지는 손님이 가격을 모르고, 말이 통하지 않고, 따질 방법이 없을 때 성립합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챗GPT, 제미나이 등 인공지능(AI)에 물으면 몇 초 만에 적정 가격을 알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메뉴판을 비추면 바로 번역됩니다. 택시 이동 경로와 예상 요금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AI 스마트글라스까지 있습니다.

    관광객은 더 이상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가지를 씌우는 순간 알아챕니다. 그 경험은 영상과 사진, 영수증을 달고 세계로 퍼집니다. 눈앞의 한 사람에게 1만원 더 받은 대가로 잠재 관광객 수천 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남는 장사가 아닙니다. 밑지는 장사입니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광장시장에 외국인이 포함된 ‘미스터리 쇼퍼’를 투입하고 노점 실명제를 시행했습니다.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노점에는 영업정지와 도로점용 허가 취소까지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정부도 8월 4일부터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과 한옥체험업이 가격표를 붙이지 않거나 게시한 가격보다 더 받으면 첫 적발부터 5일간 영업을 정지하도록 했습니다. 음식점과 택시에도 비슷한 제재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규정만 세게 만들어서는 부족합니다. 적발될 가능성이 높아야 하고 한 번 적발된 업소는 반드시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계산을 깨야 합니다. 어설픈 계도를 백번 하는 것보다 확실한 제재 한 번이 낫습니다.

    서울은 지금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를 맞았습니다. 세계인이 제 발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국가가 홍보비를 쏟아부어도 쉽지 않았던 일이 문화의 힘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톱3 도시라는 목표는 잘하면 달성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거대한 공연장과 랜드마크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택시의 미터기, 시장 좌판의 정직한 가격표, 예약한 값을 지키는 숙박업소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도시는 높은 건물로 기억되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도 속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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