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릇 창업가란 대단한 용기와 결단으로 회사를 세운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독보적인 기술을 가졌고, 누군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품었으며, 또 누군가는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기회를 선점하고 싶었을 것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창업자는 전력을 다해 최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ADVERTISEMENT
그러나 시장의 반응이 뜨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지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나름의 답을 찾아본다. 결론은 대부분 ‘제품의 부족’으로 귀결된다. 다시 로드맵을 그리고 두문불출 개발에 매달린다. 그러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애석하게도 이 과정은 하나의 사이클이 되어, 자금이 바닥나는 순간까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시장은 내가 제품을 만들어 내는 속도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며, 소비자 역시 내 제품에 시간과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그럼에도 많은 회사들은 갓 출시된 제품의 판매 부진 원인을 제품 안에서만 찾으려 한다.
제품에는 죄가 없다. 시장의 속도와 반응을 면밀히 살펴 가며 그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좋은 제품'의 정의를 다시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첫째, 고객이 필요로 하고, 둘째, 가격이 합리적이며, 셋째, 회사가 설명한 그대로 잘 작동하는 물건이다.
하나씩 짚어보자.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란 결국 충분한 시장 수요가 있는지의 문제다. 애초에 고객의 수요가 별로 없었을 수도 있고, 솔루션의 존재여부를 몰라 고객 스스로 수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즉, 그냥 감내하며 살아온 ‘불편함의 일상화’가 우리 제품의 가장 큰 적일 수 있다. 따라서 시장에 최대한 뛰어들어 현장의 수요와 반응을 읽어 내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창업자가 별로 해보지 않은 종류의 일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의 시간을 빼앗고, 귀찮게 하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들어가며 계속 발품을 팔아 의견을 구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합리적인 가격'이란 비용 대비 편익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다. 고객이 돈을 냈다면 지불한 금액 이상의 효용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초기 제품은 이용자도 적고 콘텐츠도 부족하며 신뢰도도 낮아, 고객에게 그만한 편익을 주기 어렵다. 게다가 회사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제품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선뜻 지갑을 열기가 조심스럽다.
마지막으로 '설명한 대로 잘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창업자가 앞의 두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다면,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핵심적인 불편함을 없애 주고 핵심적인 즐거움과 편익을 제공하는 기능만 살아 있다면 고객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다.
ADVERTISEMENT
아마 앞으로 고객은 더 많은 아이디어와 개선을 요구할 것이고, 제품은 순리대로 고도화 과정을 밟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서 말했듯 현장을 덜 본 채 가상의 시장 니즈에 기대어 제품만 계속 고도화 해가는 오류를 쉽게 범하게 된다.
투자금과 시간을 들여 제품을 완성하기까지 팀 분위기는 비교적 활기차다. 출시일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시일이 지나고 성적표를 받아 들면 고통스럽다. 고객을 어떻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두렵다.
ADVERTISEMENT
사실은 이때가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방어기제가 발동하고, 모든 것이 제품의 문제로 귀결된다. 갓난아기 같던 제품은 어느 날 갑자기 중학생이 되어 나타난다. 원하지도 않은 업그레이드를 당한 죄로, 이제는 시장성뿐 아니라 투자 대비 효과, 가성비까지 떨어지는 제품이 되어간다.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법이니, 머지않아 제품은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온다. 고객 없이도 성장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가장 슬픈 대목은, 이 과정에서 우리는 끝내 시장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내가 모르는 일, 하기 싫은 일을 파고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정말 힘들고 공포스럽다. 평생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해본 적 없고 폐 끼친 적 없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면전에서 거절당하는 경험은 끔찍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누구나 당연히 움츠러든다. 그리고 결국, 지금 마주해야 할 대상인 시장이 아니라 나와 내 제품을 돌아보게 된다.
그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 내 제품을 꼭 써야만 하는 고객을 찾아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내 제품에 더 단단히 결속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시장성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에,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출산 그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올바른 성장과 안녕에 있다. 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창업자 역시 제품의 올바른 성장과 안녕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쏟고, 자신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자, 이제 내 제품이 잘 안 팔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현준 바이트 대표이사(디캠프 배치 멘토)는 엔지니어의 삶을 살다 스타트업을 경험한 이후 지금은 연쇄창업가이자 투자자 그리고 멘토로 스타트업 생태계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