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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파리가 뜨거운 또 다른 이유…꿈을 만드는 오트쿠튀르 [이윤정의 인사이드&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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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파리가 뜨거운 또 다른 이유…꿈을 만드는 오트쿠튀르 [이윤정의 인사이드&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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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파리는 강렬한 햇빛으로만 빛나지 않는다. 방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하이 주얼리 브랜드의 새로운 컬렉션이 쏟아지고, 각 패션 브랜드의 오트쿠튀르 쇼가 열리면서 곳곳에서 감각적이며 예술적인 광채를 뿜어낸다. 누군가 “파리를 언제 가면 좋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7월의 파리야 말로 파리 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오트쿠튀르는 소수의 고객을 타겟으로 하는 ‘최고의 맞춤복’이다. 현대의 오트쿠튀르는 1858년 찰스 프레데릭 워스가 파리에 자신의 메종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제품에 붙이고, 시즌 컬렉션을 소개하고, 살아있는 모델을 이용한 쇼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패션에서 사용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인 고객을 위해 맞춤으로 옷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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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트쿠튀르는 1945년에서 1970년대에 절정의 시대를 지냈다. 크리스챤 디올,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위베르 지방시, 코코 샤넬 등의 디자이너가 오트쿠튀르를 이끌던 황금 시대였다. 이들의 옷을 구입하기 위해 전세계 왕족, 할리우드 배우, 중동 왕실 가족이 파리를 방문하곤 했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던 영광스러운 시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로 실용성이 강조되고 기성복이 부상하면서 쇠퇴기를 맞게 된다. 1960년대 파리에 100여개가 넘는 오트쿠튀르 하우스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그 수가 급격히 감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오트쿠튀르라는 용어는 ‘고급 맞춤복’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1945년 프랑스 정부는 ‘Haute Couture’라는 명칭을 법적으로 보호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국가 유산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트쿠튀르는 산업부와 파리의상조합이 정한 엄격한 법적 자격요건을 충족한 브랜드에게만 공식적으로 부여되는 ‘공식상표권이자 인증 지위’가 되었다. 이렇게 정부까지 나서서 오트쿠튀르를 보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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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트쿠튀르는 주얼리 브랜드에게는 ‘하이 주얼리’와 같은 존재다. 즉 각 브랜드의 창의성과 기술력이 총동원된 작품이라는 말이다. 각 브랜드는 오트쿠튀르를 통해 새로운 패턴, 소재, 실루엣을 실험한다. 매 시즌 소개되는 오트쿠튀르를 살펴보면 ‘과연 입을 수 있나?” 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장식이나 일상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디자인 덕분이다.

    그러나 제작 상의 난이도 높은 장식은 장인들의 손을 통해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다. 오트쿠튀르에서는 특히 장인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은 솜씨를 발휘하며 각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기술을 보존하며 문화를 지킨다. 장인들이 사라지면 섬세한 깃털, 자수, 레이스 등을 이용한 다채로운 장식을 패션에 접목하기 어려워진다.


    샤넬이 몇 년 전 파리 근교에 대규모 공방 단지인 Le19M을 설립하여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공방을 지원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AI 시대라고 하지만 ‘사람의 손맛’으로 완성되는 소량의 옷이 오트쿠튀르를 지탱하는 핵심 비결인 것이다. 실제로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수백개의 스팽글을 사람의 손으로 꿰고, 수백 시간에서 3천 시간을 들여 옷을 완성하는 일은 오트쿠튀르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수 차례의 피팅으로 형태를 조정하는 일도 빈번하다.

    이러한 제작과정으로 인해 오트쿠튀르는 똑 같은 옷이 없다. 같은 디자인이라도 고객의 요구에 의해 소재와 장식이 달라지므로 남과 같은 옷을 입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일부 고객은 옷을 입기 위해서가 아닌 소장목적으로 구입할 정도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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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까지 다소 침체되었던 오트쿠튀르 컬렉션은 다시 성장하는 추세다.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양극화되면서 초고액 자산가, 중동의 부호, 인도 재벌, 셀러브러티가 오트쿠튀르를 구입하는 일이 늘어났다. ‘최고 중의 최고’를 찾는 이들에게 각 브랜드의 최상층에 위치한 오트쿠튀르는 급에 어울리는 제품이 아닐 수 없다. 장 폴 고티에, 발렌티노, 스키아파렐리 등도 꾸준히 오트쿠튀르를 선보이고 있다.

    얼마전 로마 국립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의 첫 펜디 2026~2027 가을/겨울 쿠튀르 컬렉션은 옷을 장식이나 형태로 바라보는 대신 살아있는 존재인 몸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옷과 몸이 서로 교류하는 쿠튀르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코르셋 없이 드레이핑 만으로 몸의 선을 조각한 드레스, 깃털처럼 가벼운 퍼, 망토와 케이프를 구성하는 튤(작은 간격의 길이로 짜인 그물망 형태의 직물)에는 깃털, 잎사귀, 가죽으로 만든 꽃과 아라베스크 문양이 수놓아졌다. 이탈리아의 장인 정신을 컬렉션을 통해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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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디올에서 첫번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인 2026~2027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인 조나단 앤더슨은 미국의 조각가 린다 벵글리스의 작품 세계를 쿠튀르 쇼에 펼쳐 놓았다. 조나단 앤더슨은 수공예 플리셰, 매듭, 드레이핑 등을 옷에 구현했고, 벵글리스의 작품이 지닌 고유한 텍스처도 컬렉션 곳곳에 심어 놓았다. 조나단 앤더슨은 린다 벵글리스의 작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도의 전통공예인 18세기 친츠에 주목했다. 직조 후 수작업으로 채색하거나 블록 프린트 기법을 거쳐 탄생하는 코튼 소재인 친츠는 유럽의 장식 예술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혹자는 패션 브랜드가 오트쿠튀르를 만드는 것을 자동차 브랜드가 F1에 출전하는 것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기술력을 입증하는 최고의 기회라는 뜻이다. 실제로 오트쿠튀르의 매출은 브랜드 전체 매출에서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브랜드가 오트쿠튀르 쇼를 멈추지 않는 것은 브랜드의 예술 정신과 기술 혁신, 그리고 철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누군가 패션은 꿈을 파는 일이라고 말했다. 오트쿠튀르야말로 사람들에게 ‘패션이라는 꿈을 선사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경하지만 잡힐 듯 말 듯 하는 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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