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가 전기차 모델S와 모델X를 만들던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공장을 뜯어내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의 팔과 다리, 손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테슬라는 지난 7월 22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프리몬트 공장과 텍사스 기가팩토리에 전기차 대신 옵티머스 생산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산 시작 시점은 올해 후반으로 제시했다. 이곳에서 처음 생산되는 옵티머스는 테슬라 내부 훈련시설인 ‘옵티머스 아카데미’에서 작업 데이터를 모으고 기능을 개발하는 데 먼저 사용될 예정이다.
머스크 “부품 1만 개 필요한데 공급망 없다”
테슬라의 강점은 명확하다. AI와 소프트웨어, 테슬라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로봇의 ‘두뇌’를 선점할 수 있다. 반면 로봇을 구동할 모터나 배터리, 로봇의 신체를 구성하는 정밀 부품 공급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ADVERTISEMENT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최근 옵티머스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부품 공급망이라고 인정했다. 머스크는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옵티머스는 테슬라가 만든 제품 중 대량생산이 가장 어려운 제품”이라며 “기존 공급망이 없어 공급망 전체를 새로 구축하거나 자체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스크에 따르면 옵티머스를 위해 약 1만 개에 달하는 신규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공급망을 처음부터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최근 피지컬 AI 격전 속에서 한국이 주목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반도체와 모터, 배터리, 감속기·액추에이터, 센서, 디스플레이 등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 핵심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와 반도체, 가전, 조선 등 로봇을 실제로 투입해 데이터를 축적할 대규모 제조 현장도 보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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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에 일찌감치 투자했던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를 넘어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이 목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현대차그룹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경계를 넘어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AI 팩토리 등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망을 내재화한 현대차그룹은 테슬라보다 더 구체적인 상용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현대모비스)와 로봇 대량생산 역량(현대차·기아), 물류(현대글로비스) 등 공급망 대부분을 내재화하면서 양산에 속도를 냈다.
현대차그룹은 로보틱스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2028년 미국 공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첫 임무는 생산 순서에 맞춰 부품을 분류하고 공급하는 작업이다. 안전성과 작업 품질을 확인한 뒤 2030년부터 부품 조립으로 역할을 넓힐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아틀라스 생산을 전담할 미국 신설법인 ‘로보틱스 아메리카’의 공장 부지 선정을 위해 현지 실사를 진행하며 양산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아틀라스를 공급할 외부 고객사도 확보한 상황이다.
최대 50kg의 짐을 들고 손을 뻗으면 2.3m 높이까지 도달하는 아틀라스는 대부분의 관절이 완전히 회전할 수 있고 사람과 유사한 크기의 손에 촉각 센서를 탑재했다. 또 360도 카메라를 통해 모든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 내구성이 뛰어나 섭씨 영하 20도에서 영상 40도 환경에서도 완전한 성능을 발휘하고 방수 기능을 갖춰 세척이 가능하다.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충전소로 이동해 배터리를 갈아낄 수 있어 산업 현장에 도입하기 적합한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 기업, 너도나도 피지컬 AI 하는 이유
직접 로봇회사를 보유하지 않은 자동차 업체들도 휴머노이드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BMW는 미국 피겨AI의 휴머노이드를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에 투입해 차체 부품을 옮기는 작업을 시험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앱트로닉의 ‘아폴로’를 생산시설에 배치해 조립용 부품 상자를 작업자에게 전달하고 부품을 검사하는 방안을 검증하고 있다.ADVERTISEMENT
중국 전기차 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비야디(BYD)는 8월 첫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를 공개한다. 산업현장보다는 판매 현장에 우선 배치할 계획인 만큼 초기에는 서비스형 모델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업체 샤오펑은 광저우 공장에서 휴머노이드 ‘아이언(IRON)’ 소량 테스트 생산을 시작했으며 니오는 2024년 허페이 공장에서 유비테크의 ‘워커S’를 시험했다.
휴머노이드 경쟁의 한복판에 자동차 기업이 몰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2차전지 등 자동차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전기차 업체는 배터리와 모터, 전력전자, 열관리, 센서와 반도체를 다루고 있고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서 카메라로 주변을 인식하고 움직임을 계획하는 AI와 센싱 기술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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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공장은 휴머노이드의 경제성을 가장 먼저 증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품 운반과 검사, 조립 등 작업 종류가 많으면서도 공정 순서는 비교적 명확하다. 반복적이고 무거운 작업이 많아 사람을 대체했을 때 얻는 비용 절감 효과도 계산하기 쉽다. 로봇이 실패하더라도 원인을 추적할 센서와 생산 데이터가 이미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기업이 고객사를 확보하지 않더라도 자체 생산라인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삼성·LG도 ‘로보틱스’에 미래 걸었다
피지컬 AI를 둘러싼 국가별 패권전쟁도 뜨겁다. 한국은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LG 등 국가대표 기업들이 피지컬 AI를 미래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태문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속의 로봇 전담 조직을 출범시켰다. 서울R&D캠퍼스와 경북 구미사업장의 데이터팩토리를 연계해 폭넓은 제조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범용 휴미노이드를 상용화하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공개했다. 2024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하고 미래로봇추진단을 구성한데 이어 RX사업추진실에서는 그간 축적한 역량과 기술 경쟁력을 사업화 단계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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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로봇 밸류체인을 촘촘하게 보유하고 있다. 로봇의 두뇌는 LG AI연구원이, 심장에 해당하는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맡는다. 사물을 감지하는 신경계 역할은 비전센싱·라이다를 담당하는 LG이노텍의 몫이고 관절을 움직이는 액추에이터는 LG전자가, 로봇이 학습하는 훈련 모델은 LG CNS가, 사람과 로봇을 잇는 인터페이스는 LG디스플레이가 구축한다.
미국, 중국산 로봇 ‘출입금지’

중국은 피지컬 AI 상용화에 가장 먼저 성공한 국가다. 지난 4월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 마라톤에서는 완주를 넘어 인간의 기록을 깼다. 로봇들은 바퀴 없이 두 발로 뛰고 두 팔을 흔들며 중심을 잡았다.
화웨이 ‘천재소년’ 출신 펑즈후이가 공동 창업한 애지봇은 이미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애지봇은 2025년 휴머노이드 5168대를 출하해 세계 시장 점유율 39%로 1위를 차지했다. 유니트리 등까지 합치면 중국 기업의 세계 휴머노이드 출하 비중은 87%에 달한다. 세계에 팔린 휴머노이드 10대 중 9대 가까이가 중국산인 셈이다.
진짜 강점은 중국이 보유한 제조 생태계와 AI 성능이다. 미국 싱크탱크 SCSP는 첨단기술 혁신에서는 미국이 근소하게 앞서지만 산업 생산능력과 시장 생태계, 인력과 국가 지원을 종합하면 중국이 첨단 제조 로봇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핵심 자원인 학습 데이터까지 정부가 만들어 공급한다. 사람이 책을 펼치거나 물건을 옮기는 동작을 기록해 로봇 학습 데이터로 바꾸는 ‘데이터 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시설이 전국에 20여 곳 있고 공장당 약 2000명이 동작 데이터를 만드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의 공세에 미국은 시장을 닫아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지난 7월 28일 중국산 신규 휴머노이드와 사족보행 로봇의 수입을 막는 조치를 발표했다. 카메라와 센서가 수집한 공장·가정 데이터를 중국으로 전송하거나 원격 조종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다. 한국이 반사이익을 노릴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