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테러로 비극을 맞았던 이스라엘 남부 가자 접경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과 트라우마가 짙게 깔렸던 이곳에 조금씩 온기가 살아나고 있다. 주민들이 코트에 나와 함께 응원을 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비극의 한복판을 홈으로 삼고 출범한 이스라엘 프로 농구단 ‘오테프 다롬 BC(Otef Darom B.C.)’이 만들어내고 있는 따뜻한 기적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가자 인근의 체육관에서 만난 아모스 아리엘 오테프 다롬BC 대표는 "우리 구단의 이름은 '남부의 중심'이라는 뜻"이라며 "우울하고 비극만 있던 국경지대가 아닌 이스라엘 남부의 중심지로서 자부심을 갖자는 의미로 지었다"고 말했다.
아리엘 대표 역시 10·7 테러의 희생자 가족이다. 프로농구 선수 출신으로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테러로 친구들을 잃고 처제 일가족이 인질로 납치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처제 가족은 다행히 51일만에 석방되어 돌아왔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극심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털어놨다.
농구단 창단은 이스라엘 북부 농구단 관계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피난 생활 중이던 아리엘 대표에게 연락해 "황폐진 남부 지역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데는 스포츠만 한 것이 없다"며 농구단 창단을 제안했다. 무모해보이는 구상이었지만 이스라엘 군 고위 장성 출신 탈 루소 장군, 1부 리그 지도자 커리어를 밟고 있던 바락 펠레그 감독이 합류하면서 조금씩 현실이 됐다.
특히 펠레그 감독은 북부 갈릴리 출신이지만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온 가족이 삶의 터전을 옮기기까지 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주민들의 눈빛에는 희망도, 자신감도 없이 슬픔만 가득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로 지역을 떠나 인구 자체가 적었다"면서도 "그 힘든 시기에도 현지 주민들과 유가족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하며 마음을 열어주었다"고 돌아봤다.
시작은 초라하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2024년 7월 말 이스라엘 농구협회로부터 2부 리그 참가 특별 승인을 받아냈지만, 창단 당시 은행 잔고는 0원이었다. 선수도, 자금도, 번듯한 홈경기장도 없었다. 낡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개보수해 라커룸과 트레이너실을 만들었고, 순수 기부금으로 경기장 비품을 채웠다. 영입한 이스라엘 선수 10명은 대부분 현역 군인이거나 입대를 앞둔 17~20세의 어린 청소년들이었다. 다행히 미국의 유대인 자산가가 통 큰 후원에 나서며 구단은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갔다.

단 두달 만에 나선 첫 시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첫 대회를 시작으로 25연패를 기록했다. 아리엘 대표는 "전쟁의 포성 속에서 밤낮없이 훈련하며 거듭된 패배를 견디는 일은 선수와 스태프 모두에게 고문과 같은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래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26번째 출전에서 극적인 첫 승리를 거뒀다. 아리엘 대표는 "당시 선수는 물론 관중들과 스태프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의 순간을 나눴다"고 미소지었다.
두번째 시즌, 구단은 도약을 위해 농구협회가 제공한 ‘강등 면제’ 안전장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진짜 프로다운 승리를 선물해야한다는 생각에서다. 보호장치 없이 치열한 정글로 뛰어든 오테프 다롬은 더이상 25연패를 기록한 최약체팀이 아니었다. 리그 9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2위와 3위 강팀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4강까지 진출했다.

그들의 활약에 지역에도 열정과 희망이 살아났다. 500석 남짓한 작은 체육관은 매 경기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원정 경기에는 주민 250명이 대형버스를 대절해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펠레그 감독은 "코트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선수들과 주민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은 농구 그 이상의 구원이었다"며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오테프 다롬은 세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아모스 대표는 "우리 지역 주민들이 예전에는 슬픔과 트라우마로 눈물을 흘렸지만 이곳 체육관에서는 완벽한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며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연결이야말로 우리가 스포츠를 통해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던 가치"라고 강조했다.
가자=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