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파주·용인…'전망 없는 땅'이 명소 되는 법 [진세인의 공간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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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파주·용인…'전망 없는 땅'이 명소 되는 법 [진세인의 공간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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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목을 끄는 카페들은 좋은 풍경 속에 있을 것이라 우리는 믿어 왔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 숲으로 열린 테라스, 강을 내려다보는 옥상. 부동산의 언어로 옮기면 조망이 곧 가치이고, 땅을 고르는 순간 성패의 절반이 결정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런데 근래 내가 다녀온 카페들을 되짚어보면 낯선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같이 볼 것이 없는 땅 위, 또는 땅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팔 만한 풍경이 없는 땅에서, 이들은 어떻게 사람을 머물게 했을까.

    제주에 위치한 유지커피웍스의 대지는 길고 좁은 장방형이다. 한쪽에는 비닐하우스가 늘어선 농지가, 반대쪽에는 개발구역의 펜스가 서 있다. 제주인데 바다도, 울창한 숲도 보이지 않는다. 섬을 찾은 이들이 으레 기대하는 수평선도, 오름의 능선도 이 땅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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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는 검은 슬레이트 지붕을 무릎 높이까지 끌어내렸다. 벽에 낸 창과 문, 곧 개구부를 바닥 가까이까지 낮춰 시야의 띠를 좁게 잡은 것이다. 서서 걸을 때는 답답하던 공간이, 자리에 앉는 순간 달라진다. 낮게 잘린 시야로 젖은 땅과 낮은 이끼, 돌담의 밑동이 들어온다. 비닐하우스와 펜스는 낮은 처마선에 가려 사라진다. 보여줄 것만 남을 때까지, 풍경을 덜어낸 것이다.


    유지가 풍경을 덜어냈다면, 파주의 카페 루버월은 빛을 거른다. 삼면이 막힌 서향 대지, 하루 중 빛이 드는 시간이 짧고 그마저 낮게 눕는 오후의 해다. 대개라면 채광을 포기하고 조명으로 실내를 밝혔을 조건이다. 건축가는 반대로 갔다. 건물 전체를 유리로 감싸고 그 위에 루버, 즉 가늘고 긴 차양 판을 촘촘히 둘렀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그림자를 계산해 각도를 정한 판들이다. 그 사이로 걸러진 빛이 들어오면, 바닥과 벽에는 하루 종일 다시 그려지는 선형의 그림자가 흐른다. 아침과 저녁의 표정이 다르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의 분위기가 다르다. 조망이 사라진 자리를 빛의 물성, 그 만질 수 없지만 분명히 감각되는 질감이 대신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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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브레스 커피웍스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풍경을 지어낸다. 관광지 언덕 위, 넓은 지하 주차장에서 매장으로 곧장 오르는 승강기를 두는 대신 건축가는 방문객을 지하 정원으로 돌아가게 했다. 거칠게 쪼아낸 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물소리가 스며들고, 아직 다음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벽에 난 문을 여는 순간, 비로소 하늘과 나무를 비추는 거대한 수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물과 반영은 이 언덕에 원래 없던 풍경이다. 도착을 늦춘 것은 그 만든 풍경을 더 극적으로 건네려는 계획이다.


    덜어내고, 거르고, 지어낸다. 우리의 옛 건축과 조경은 담 너머 먼 산을 빌려와 풍경을 완성했다. 차경(借景),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빌릴 것이 남지 않은 오늘의 땅에서 건축은 반대로 간다. 풍경을 빌리는 대신 제 손으로 짓는다.


    짓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시선을 선별하는 낮은 개구부, 도착을 지연시키는 깊은 문턱, 그리고 빛과 물처럼 시간에 따라 표정이 바뀌는 재료. 무릎까지 내려온 처마도, 창 없는 진입부도, 돌아가는 동선도 언뜻 답답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런데 이 불편은 결함이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먼 곳에서 발밑으로 시선을 되돌리기 위해 정교하게 의도된 장치다. 결핍을 가리는 대신 결핍을 재료로 쓴 것이다.

    시선을 돌려세우는 이 수고가 하필 카페에서 되풀이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커피는 이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 그러니 카페가 파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머무름이고, 커피값은 사실상 공간의 입장료다. 머무름을 팔려면 머물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가 바깥 풍경이 아닐 때 건축은 안에서 풍경을 지어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좋아할 조망 좋은 땅에는 이미 임자가 있다. 뒤늦게 뛰어든 이들이 저마다의 조건 속에서 시선을 안으로 접어 넣은 것은, 땅이 강요한 형식이자 동시에 그 안에서 해법을 찾아낸 건축가들의 의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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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카페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과감한 건축 실험이 벌어지는 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주어진 조건이 어쩔 수 없이 낳은 생존술일 뿐일까.


    용인 호암미술관의 새로운 카페 호암카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설계공모에서 제시된 카페의 자리는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공원의 상부, 드넓은 조망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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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설계를 맡은 김남건축은 그 자리를 내려놓고 옹벽 뒤 땅속으로 들어가는 안을 택했다. 직접 걸어보면 그 선택이 몸으로 읽힌다. 아름다운 자연을 뒤로한 채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 바깥의 빛과 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걸음은 자연히 느려진다. 가장 깊은 곳에 이르러서야, 땅을 파내어 만든 선큰 정원이 위에서 떨어지는 빛과 함께 나타난다.


    그날 나는 커피를 받아 들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돌아보니 낯선 이들도 약속한 듯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좋은 전망을 등지고 걸어 들어온 끝에 만난 이 작은 빛의 마당은, 통창 너머로 한눈에 주어졌을 풍경보다 오래 남았다. 전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망이 있는데도 안을 향한 것이다. 결핍이 강요한 형식처럼 보였던 것이 실은 하나의 건축적 태도였음을, 그날 그 자리에서 몸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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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이라는 말에는 두 겹의 뜻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 그리고 앞날의 가능성. 이 카페들은 첫 번째 전망에 기대지 않고 두 번째 전망을 지었다. 볼 것이 없을 것만 같았던 땅에서 스스로 볼 곳이 되는 길, 건축이 제 손으로 경관이 되는 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도시의 땅 대부분이 전망 없는 땅이다. 남향의 특권과 강변의 조망은 언제나 소수의 몫이었고, 대다수의 삶은 막힌 벽과 마주한 창을 견디며 이어진다. 그렇다면 도시의 회복은 좋은 땅을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땅에 남겨진 맥락을 읽어내는 시선이 필요하다.

    조건을 탓하는 자리에서 건축은 멈추고, 조건을 읽는 자리에서 형식이 태어난다. 볼 것이 없어서, 때로는 볼 것을 등지고서 완성된 이 카페들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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