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은 없다. 새벽배송이라는 서비스가 등장하기도 전인 2012년 마트 근로자의 건강권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생긴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점포 문을 열지 못하니 대형마트 새벽배송은 시도조차 못 해보고 원천 봉쇄됐다.14년 전의 규제가 족쇄가 돼 대형마트를 옭아매는 동안 쿠팡은 새벽배송을 무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자기 전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상품이 눈뜨기 전 문 앞에 도착하는 경험을 해본 이들은 예전처럼 대형마트를 찾지 않았다. 전통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새로운 포식자가 등장해 시장을 장악해 나갔지만 규제의 사슬은 여전히 대형마트의 발만 묶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가 없었다면 한국 유통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주거단지 곳곳에 포진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도심형 물류센터로 활용한 새로운 배송 모델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과의 서비스 경쟁으로 소비자 후생이 높아졌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유통산업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5년마다 중장기 산업 진흥 계획을 담은 유통산업발전기본계획을 제시해야 하지만, 2019년 발표한 5차 계획(2018~2023년) 이후 아직 6차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24년 이후로 한국 유통산업은 지도 없이 항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야 규제 완화를 위해 유통업계 이해관계자를 만나고 있지만 소상공인 반발을 우려해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넋을 놓고 지켜보는 동안 ‘빅3’ 대형마트 중 한 곳인 홈플러스는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 최소 운영자금 2000억원을 급하게 끌어와 다시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됐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매대는 텅 비었고, 임시 휴업에 들어간 점포는 언제 영업을 재개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규제는 만들기는 쉽지만 없애기는 어렵다. 규제의 본질적 성격이 그렇다. 온라인 중심으로 유통시장이 완전히 재편된 지금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한 달에 두 번 주말마다 점포 문을 닫게 하는 규제가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규제는 좀비처럼 꿋꿋이 살아남는다.
홈플러스 사태는 대형마트가 더 이상 유통업계 포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계기가 됐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해묵은 규제를 풀고 무너진 유통산업의 균형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