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21일 14:0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고채 담합에 따른 금융사의 과징금이 최대 8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증권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음 달 국고채 경쟁입찰 과정에서 입찰금리·가격정보를 사전에 공유한 혐의를 받는 증권사 10곳과 은행 5곳에 대한 제재 심의를 준비 중이다.
금융사, 조단위 과징금 맞을듯
2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다음 달 19, 20일 전원회의를 열고 금융사 제재 심의를 할 계획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금융사에 부과될 과징금이 조 단위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사가 국고채 거래에서 얻은 실제 수익이 아니라 국고채 인수액을 관련 매출액으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의 국고채 입찰 관련 매출액은 총 76조2346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공정위 심사보고서상 부과기준율로 알려진 6.5~10.5%를 단순 적용하면 과징금 산정액은 4조9552억~8조46억원에 달한다.이는 기존 최대 과징금이 부과된 전분당 담합 사건(7370억원)보다 6.7~10.9배 큰 규모다. 다만 실제 과징금은 금융회사별 관련 매출액과 위반 정도, 가중·감경 사유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정위는 국고채전문딜러(PD)가 국고채 입찰을 앞두고 금리와 가격, 입찰 물량 등 정보를 공유하고 특정 수준에 금리가 형성되도록 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PD는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국고채 인수·입찰 실적을 채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낙찰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실적을 인정받기 위해 최종 낙찰금리 인근에 금리를 써내는 이른바 ‘골대 세우기’ 방법을 활용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금융사 딜러들이 정보를 공유해 손실을 회피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2023년부터 관련 조사를 벌여 지난해 3월 증권사 10곳과 은행 5곳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제재 대상 증권사는 교보·대신·메리츠·미래에셋·삼성·신한투자·NH투자·KB·키움·한국투자증권 등 10곳, 은행권에서는 국민·IBK기업·NH농협·산업·하나은행 등 5곳이 포함됐다.
금융사, “인수액을 매출로 보는 건 과도”
금융사는 특정 낙찰금리를 정해 부당이익을 얻기 위한 전형적인 입찰 담합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맞서고 있다. 원하지 않는 국고채 물량을 떠안는 손실을 피하기 위한 정보 교환에 가까웠다는 입장이다. 통상적인 담합이 추가 이익을 얻기 위해 이뤄지는 것과 달리 이번 정보 교환은 손실 회피가 주된 목적인 만큼 경쟁제한성이 크지 않았다는 주장이다.15개 금융사가 하나의 공동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쟁점이다. 금융사들은 친분이 있는 딜러 몇 명이 소규모 그룹별로 시장 전망을 주고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딜러 사이의 정보 교환이 순차적으로 전달됐다는 이유만으로 15개사의 단일 합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사들은 과징금 산정 기준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고채 PD 업무는 정부의 국채 발행을 지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고, 실제 수익이 크지 않은 만큼 국고채 인수액 전체를 매출로 보고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증권사별 과징금을 100억원 이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소명에 나섰다.
재정경제부도 국고채 시장 안정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일정을 고려해 금융사 측 입장을 일부 반영해 달라는 취지의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당초 이달로 예상됐던 공정위 전원회의가 다음달 19~20일로 미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정위는 국고채 입찰 과정에서의 정보 공유가 경쟁을 제한한 담합에 해당하는지, 과징금 산정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등을 원칙대로 심의한다는 방침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최종 과징금 규모에 따라 증권사 실적과 국고채 PD 운용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