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상반기 생명보험회사가 지급한 해약환급금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주식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납입 보험료보다 적은 돈을 돌려받더라도 보험을 깨 증시로 자금을 옮긴 투자자가 급증한 영향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국내 3대 생보사의 올해 상반기 해약환급금은 12조865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9조1225억원)보다 41% 늘어난 수치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10년 전인 2016년 상반기(6조6517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해약환급금은 가입자가 보험 기간 중 계약을 해지할 때 보험사에서 돌려받는 금액이다. 보험사 사업비 등을 공제하기 때문에 장기간 유지한 저축성 보험 외에는 대부분 해약환급금이 납입 보험료보다 적다. 보험 중도해지로 손해를 보더라도 강세장이 이어지면 나중에 더 많은 수익을 얻을 것으로 보고 증시로 옮겨 간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보험 해지는 코스피지수가 급등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2분기 4조2413억원이던 3대 생보사의 해약환급금은 3분기 4조7077억원으로 증가한 뒤 올해 들어 분기 기준 6조원대로 급증했다.
고수익 기대에 증시로 자금이동…마통·카드론 막히자 보험 눈돌려
보장성보험 해약 2년새 11% 증가…노년 의료·돌봄에 '악영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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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보험 해약이 급증한 것은 뜨거운 국내 증시와 대출 규제 때문이다. 만기 전에 보험을 깨면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지만 증시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자발적으로 보험을 해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갈수록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보험을 깨서라도 자금을 조달하려는 투자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증시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기대한 투자 수익은 얻지 못하고 ‘노후 안전판’인 보험만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증시 뜨거워지자 보험 해약 급증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국내 3대 생명보험사가 올해 들어 분기별로 지급한 해약환급금은 평균 6조4327억원이었다. 지난해 평균(4조7137억원) 대비 36.5% 증가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해약환급금은 지난해(18조8549억원)의 1.5배 수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약환급금은 보험사의 각종 비용(사업비)을 빼고 지급하기 때문에 계약자의 납입 보험료(원금)보다 대부분 적다. 보험 가입자가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보험을 깨는 건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전엔 재정상태가 나빠져 보험을 해약하는 가입자가 많았다. 경기 침체나 보험료 상승 등으로 보험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형태로 보험을 중도해지할 경우 보험사가 지급하는 돈을 ‘효력상실 환급금’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효력상실 환급금보다 보험 가입자의 자발적 해지로 지급하는 해약환급금이 급증했다. 최후의 보루인 보장성 보험보다 저축성 보험을 깨는 가입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고 증시로 자금을 옮기는 ‘머니 무브’였다는 방증이다.
보험 해약환급금은 증시 대기 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증시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해 10월 80조원을 넘어선 뒤 올해 1월엔 10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달 초엔 139조6948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전방위적인 대출 옥죄기도 보험 해약을 부추겼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신용대출, 카드론, 보험계약대출 한도를 줄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을 깨는 이유를 물어보면 상당수가 더 이상 대출받을 수 없어 해약환급금으로 투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보험 해약 늘면 사회적 비용 증가”
‘투자형 해약’이 늘면 보험의 사회안전망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생보사의 저축성 보험 해약환급금(일반계정 기준)은 4조306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4.4% 급증했다. 대부분 장기 여유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가입한 연금 상품이어서 수익률에 따라 노후 생활에 영향을 받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보장성 보험이다. 지난 1분기 생보사의 보장성 보험의 해약환급금(일반 계정 기준)은 3조265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0% 늘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0.7% 증가했다. 보장성 보험을 해지하면 사고·사망 등에 대비할 수단이 사라지기 때문에 각종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되면 부양가족의 경제적 부담이 늘고, 공공의료 의존도가 높아져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부원장은 “저축성은 물론 보장성 보험까지 해약이 증가한다는 건 노후자금 관리 체계가 부실해지는 것을 넘어 개인 의료, 돌봄 공백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다른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만큼 과도한 보험 해약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