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주가 글로벌 기업의 호실적 발표에도 맥을 못 추는 흐름을 이어간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이달 말 예정된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실적 발표가 반등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코스피지수는 23.13% 급락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6.95%, 33.43% 떨어졌다. 그간 코스피지수를 견인한 반도체주가 약세를 보이면서 국내 증시가 조정받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증권가에서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 실적 발표가 반도체주 반등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프론티어 인공지능(AI) 모델 기업들과 하이퍼스케일러가 AI 투자를 수익화해 내후년 이후에도 꾸준히 설비투자(CAPEX)를 이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며 "오픈 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프론티어 AI 모델 기업들이 비상장이라는 점에서 AI 수요 확대와 수익화, 미래 CAPEX 확대 지속에 대한 단서는 하이퍼스케일러의 실적 발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오는 22일, MS와 메타가 오는 29일, 아마존이 오는 30일 실적을 발표한다.
우선적으로 주목할 부분은 기존 사업의 실적이다. 하이퍼스케일러의 AI 관련 대규모 CAPEX는 기존 사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이번 실적 시즌에서 본업의 이익과 현금흐름이 중요하다"며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둔화하거나 마진이 하락할 경우 CAPEX 축소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매출액 증가율 확대도 주목할 요소로 꼽힌다. 현재 시장은 성장률 변화인 모멘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올해 1분기 AI 클라우드 부문의 매출액 증가율 확대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매출액 증가율이 전 분기 대비 낮아질 경우 시장에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AI 클라우드 부문의 매출액 증가율 둔화는 중국산 AI 모델의 성장과 멀티모델 활용 확대, 이에 따른 토큰당 비용 하락과 같은 AI 범용화 우려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AI 클라우드 부문 매출액 증가율 모멘텀이 확대될 경우 '제번스의 역설'에 대한 낙관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CAPEX 가이던스 확대 여부도 주목된다. 특히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의 CAPEX 가이던스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연구원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는 AI 경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영업현금흐름 대비 CAPEX 규모는 오라클, 아마존, 메타에 비해 보수적"이라며 "AI 경쟁에서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소극적으로 비치는 상황에서 AI 투자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두 기업이 CAPEX 전망을 상향 조정하거나 AI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 지속 기대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대한 지역사회 반발과 규제, 반도체 가격 등을 이유로 후발주자로 포지셔닝을 강화할 경우 AI 범용화로 인한 투자 사이클 정점 우려가 가속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의 우려와 별개로 하이퍼스케일러의 CAPEX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 반등 트리거는 7월 말부터 시작되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의 실적 발표라고 판단한다"며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의 CAPEX 합산 증가율은 올해 1분기 80%에서 2분기 83%, 3분기 92%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4분기 전망치는 79%로 다소 낮아지긴 하지만 절대적인 증가율이 여전히 높다"며 "투자 수요 증가를 감안하면 반도체의 높은 영업이익률 유지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하이퍼스케일러의 어닝 서프라이즈 여부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향방이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연구원은 "지난해 이후 알파벳은 분기 기준으로 주당순이익(EPS)이 예상치를 밑돈 적이 없다"며 "매출액 기준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이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개월 평균 주가 수익률은 각각 11%, 17%로 어닝쇼크 이후의 2%, -3%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메타와 아마존은 EPS 예상치 초과 또는 미달 여부가, 마이크로소프트는 CAPEX 예상치 초과 또는 미달 여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수익률에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이수 한경닷컴 기자 2s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