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공식 외교 관계를 맺은 지 꼭 140년이 되는 해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창의·기억·연대'라는 슬로건 아래 서울을 비롯한 전국 20여 개 도시에서 100여 개 행사를 준비했고, 지난 4월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11년 만에 국빈 방한해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켰다.
한불수교 140주년은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불수교 140주년 공식 프로젝트로 선정된 나의 책 <파리, 지속가능한 도시의 속삭임 - 오래된 미래를 꿈꾸다>가 출간되고, 이와 관련된 여러 행사에 초청받거나 참여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프랑스가 주빈국으로 서며 마련한 여러 행사들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확신이 들었다. 결국 우리 두 나라는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함께 '인간'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14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실감하고 있는 이유다.
20년 전 브장송에서, 다시 140주년까지
20년 전 프랑스 동부의 작은 도시 브장송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해는 한불수교 120주년이었고, 나는 그곳 한국 유학생 대표를 맡아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낯선 도시에서 서툰 프랑스어로 우리 문화를 소개하고, 현지인들과 함께 두 나라의 인연을 자축하던 그 밤을 나는 여전히 생생히 기억한다.ADVERTISEMENT
그때는 몰랐다. 내가 파리에서 13년을 살고 건축가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20년 뒤인 한불수교 140주년이라는 더 깊은 인연의 해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여러 행사에 함께하게 될 줄은. 그래서 이 칼럼은 조금 사적이다. 그리고 그만큼 진심이다.
140년, 감정의 곡선을 그려보면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나는 종종 1886년이라는 숫자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더 긴 이야기를 떠올린다. 140년을 들여다보면 감정의 곡선이 하나 그려진다. 두 나라의 인연 앞에는 짧은 서두가 하나 있다. 공식 수교보다 35년 앞선 1851년, 신안 비금도 앞바다에서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난파했을 때, 겁에 질린 프랑스 선원들을 섬 주민들이 해치지 않고 따뜻하게 품어 돌려보낸 일이다. 조선의 막걸리와 프랑스의 샴페인이 그때 처음 잔을 부딪혔다고 전해진다. 공식 외교와는 무관한, 우연이 만든 훈훈한 뒷이야기 정도로 기억해두고 싶다.
정작 공식적인 만남은 뜻밖에도 비극으로 시작됐다. 1866년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를 명분 삼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했고 외규장각의 서적과 은괴가 약탈당했다. 양화나루 옆 절두산에서는 수천 명의 목이 잘렸다. 총성과 피로 뒤덮인, 양국 관계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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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극을 넘어서는 데 20년이 걸렸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가장 첨예했던 종교의 자유 문제는 "학문과 예술을 가르치는 프랑스인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우회적 문구로 조심스레 봉합됐다. 1888년 고종은 프랑스 대통령이 보낸 세브르 도자기를 보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처음"이라며 감탄했고, 답례로 고려청자와 왕실 보물을 보냈다. 대등한 예우였다. 그렇게 비극의 앙금은 씻겼고, 이 자리가 바로 우리가 지금 기념하는 '140주년'의 진짜 출발점이 되었다.
되돌아본 140년, 이제는 공생을 이야기할 때
2026년, 그 서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이 국빈 방한해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켰다. 에너지, 반도체, 인공지능(AI), 우주, 방산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관계로의 전환이었다. 6월4일,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일에 맞춰 여의도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문을 열었다.그리고 지난달 17일,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 9만2000명이 운집한 방탄소년단(BTS) 공연장에서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아미밤을 들고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직접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파리에 온 걸 환영한다"고 적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K뷰티는 이미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화장품의 본고장' 프랑스를 앞질렀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화장품 수출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다만 나는 이것을 누가 누구를 앞질렀다는 승패의 서사로 읽고 싶지 않다. 140년 전 우리가 겪은 비극과 그것을 딛고 만든 화해가 있었기에 지금 이 장면이 가능했다는 것, 그 인과가 더 소중하다.
사대주의도, 애국주의도 아닌 자리에서
지난달 14일, 나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대혁명 기념일 행사에 다녀왔다. 그날 나는 프랑스 대혁명을 다시 생각했다. 자유·평등·박애라는 구호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그들 사회민주주의의 뼈대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정의(正義)에 대한 오랜 사유가 지금 AI 시대를 맞는 그들의 태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가 기술 앞에서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결국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K-기술, K-문화의 성취에 취해 있을 때 놓치기 쉬운 물음이기도 하다.한불수교 140주년을 맞아 우리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이제는 우리가 가르칠 차례라고 말하는 것은 애국주의다. 반대로 여전히 프랑스를 우러러보며 우리 것을 낮추는 것은 사대주의다. 둘 다 14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준 진짜 교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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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비극을 넘어 마주 앉았던 두 나라의 태도는 우월감도 열등감도 아니었다. 세브르 도자기와 고려청자를 맞바꾸었듯, 그저 대등하게 서로의 잔을 채워주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230여 년간 쌓아온 정의와 인간에 대한 성찰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오랜 압축성장 속에서 단련된 회복력과, 지금 세계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경제도, 문화도, 결국은 서로가 갖지 못한 것을 나누며 채워가는 일이다.
두 나라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하여
나는 건축을 업으로 삼으며 오랫동안 "즐거운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해왔다. 지속가능성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야 지속된다는 믿음이다. 한불수교 140주년이 남긴 가장 큰 질문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상 간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반도체와 방산 협력 같은 거대 담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흘러야 할 것은 결국 두 사회, 두 국민의 '행복'이라는 더 작고 구체적인 감각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프랑스관을 채웠던 책들, 그 곁에 놓였던 나의 책 역시 결국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인간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1886년 화해의 자리에서 오갔던 도자기 한 점이 그러했듯, 지금 파리의 콘서트장에서 마크롱 부부가 흔들던 아미밤이 그러했듯, 진짜 교류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작은 기쁨에서 시작된다. 건축과 도시, 예술과 교육, 미식과 일상의 방식들. 나는 이 책을 포함, 두 나라의 지속가능한 행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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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평화의 뒷이야기를 안고 비극을 거쳐 마침내 공식적 화해를 이루고, 이제는 서로 공생을 이야기하는 사이가 된 140년. 한불수교 140주년이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결국 하나다. 이 여정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그리고 그 여정이 어느 한쪽의 우월도 열등도 아닌, 마주 앉은 두 잔의 술처럼 대등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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