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주기관의 책임으로 공사 착공이 수년간 지연됐더라도, 계약서상 '공사정지 지연배상금' 규정을 적용해 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착공지연'과 '착공 후 공사정지'는 계약상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으로, 배상 규정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건설사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경기 화성 봉담 국도 43호선 확장·포장 및 지하차도 공사에서 비롯됐다. 건설사들은 2009년 12월 LH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착공신고서까지 제출했지만, LH의 사업부지 확보 등 절차가 지연되면서 실제 공사는 약 5년 8개월 뒤인 2015년 8월에야 시작됐다. 공사는 2021년 6월 완료됐고 LH는 계약상 공사대금을 모두 지급했다.
이후 건설사들은 공사계약 일반조건상 '공사정지 기간이 60일을 초과하면 지연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착공지연 기간에 대한 배상금을 추가로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계약서의 '공사정지'가 '착공지연'까지 포함하는지 여부였다.
1심은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실질적인 착공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발주처 사정으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면 공사가 멈춘 것과 경제적 효과가 같다고 보고 지연배상금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계약 문언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공사정지란 이미 착공돼 진행 중인 공사를 중단시키는 경우를 의미하며, 애초에 공사를 시작하지 못한 착공지연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공사정지 지연배상금 조항은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공사가 정지된 경우 계약상대방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일종의 약정손해배상 규정"이라며 "도급인에게 지연배상금 지급의무를 부과하는 만큼 적용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조항은 발주기관의 책임 있는 사유와 현장감독자의 공사정지 지시를 전제로 하는 만큼 '착공 후 공사가 정지된 경우'에만 적용되고, '착공 자체가 지연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