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년 가까이 사라졌던 걸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 미술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1626년에 그린 당대 스페인의 실세 올리바레스 백작-공작(1587~1645)의 초상화다. 작품을 찾아낸 사람은 뜻밖에도 미국 디트로이트미술관(DIA)의 살바도르 살로르트폰스 관장이었다.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최근 스페인의 미술지 ARS 매거진을 통해 이 작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스페인 출신의 미술사학자로, 스페인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한 뒤 지난 20년간 미국에서 큐레이터로 커리어를 쌓아 주요 미술관 관장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늘 그의 관심은 고향의 대표 화가인 벨라스케스를 떠나지 않았다. 박사논문 주제도 ‘벨라스케스의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살로르트폰스 관장이 이 초상화의 행방을 좇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박사 연구를 할 무렵 그는 각종 문헌 자료를 통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됐지만, 작품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20년간 이 작품을 추적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말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복원 공방에서 “벨라스케스와 관련 있어 보이는 작품 하나를 봐달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마침 DIA는 올리바레스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공방을 찾아 실물을 살핀 살로르트폰스 관장은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X선과 자외선·적외선 촬영에서 이 그림은 1620년대 벨라스케스의 진품으로 확인됐다. 안료가 벨라스케스의 다른 작품과 완벽하게 일치했고, 캔버스의 실 밀도는 프라도미술관이 소장한 벨라스케스의 작품 '펠리페 4세'(1626~1628년)와 같았다. 현존하는 벨라스케스의 작품 수는 120여점에 불과하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올리바레스(본명 가스파르 데 구스만)는 당대 스페인의 실세였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총애를 받은 재상이자, 벨라스케스에게는 은인이기도 하다. 1623년 무명이나 다름없던 젊은 벨라스케스를 궁정화가로 발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이 초상화는 그린 직후부터 파란만장한 길을 걸었다. 올리바레스는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을 교황청의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작품은 바르베리니의 소장품 목록에 올랐지만, 이후 수백 년간 잊혔다.
질스 녹스 미국 인디아나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는 이번 발견을 두고 “큰 의미가 있는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초기 올리바레스 초상화는 극히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DIA는 이 작품을 앞세워 내년 1월 특별전 '벨라스케스와 올리바레스'를 열 계획이다. 뉴욕 히스패닉소사이어티와 브라질 상파울루미술관이 소장한 올리바레스 관련 작품도 함께 걸린다.
DIA는 서양 근대미술의 걸작을 두루 소장한 미국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다. 쿠르베와 마네부터 반 고흐, 마티스, 피카소까지 굵직한 거장들을 여럿 소장하고 있다. 이 걸작들은 지금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8월 23일까지 열리는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이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한국에서 볼 기회도 곧 온다. 오는 9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여는 '스페인 미술 500년'전에 벨라스케스와 고야, 엘 그레코 등 스페인 거장들의 작품 100여 점(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소장)이 걸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