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억만장자 사업가가 "젊어지겠다"며 10대 아들의 혈장을 자신의 몸에 주입한 일화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유명 IT 사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자신의 혈장 일정량을 제거한 뒤 당시 17세였던 젊은 아들의 혈장을 대신 채웠다. 노화를 늦추기 위해 연간 수백만달러를 쓰는 그는 아들과 70대 아버지까지 참여한 ‘다세대 혈장 교환’을 진행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다만 이후엔 뚜렷한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젊은 혈장 주입을 중단하긴 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젊은 사람에게서 얻은 혈장을 노화 방지나 기억력 개선 목적으로 주입하는 치료는 승인된 적이 없으며 효과를 뒷받침할 근거도 없다고 경고했다.
존슨의 실험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더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거액을 쓰는 부유층의 욕망은 빠르게 거대한 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 과거 부자들의 건강관리가 고급 스파와 마사지, 개인 트레이너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혈액검사와 수면 분석, 고압산소요법, 냉온욕, 적색광 치료 등 의료와 웰니스의 경계에 놓인 서비스로 확장하고 있다. 무엇을 소유했느냐보다 얼마나 건강한 신체를 오래 유지하느냐가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것이다.

글로벌웰니스연구소(GWI)에 따르면 세계 웰니스 경제 규모는 2024년 6조8000억달러로 전년보다 7.9% 성장했다. 2013년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으로 커졌다. GWI는 이 시장이 2029년 9조8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부유층 고객을 타깃으로 삼는 명품 브랜드들은 이미 이같은 트렌드를 포착하고 다양한 사업과 제품군으로 관련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 최대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호텔과 뷰티 브랜드를 결합해 부유층의 건강관리 수요를 공략하는 ‘디올 스파’가 대표적인 사례다. LVMH가 운영하는 파리의 고급호텔 슈발 블랑 파리에 같은 그룹 소속인 디올의 스파가 들어서 있다. ‘디올 스파 슈발 블랑’이라는 서비스로 디올의 피부 관리와 수기 마사지에 사우나, 하맘, 스노 샤워, 실내 수영장 등을 결합한 개인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별도로 약 65명만 받는 회원제 웰니스 클럽을 운영하며, 실내 수영장과 사우나, 하맘, 스노 샤워, 전담 코치의 맞춤 훈련 등을 제공한다. 현재 파리 플라자 아테네, 두바이 더 라나, 남프랑스 에덴록, 포르토피노 스플렌디도, 도하공항 등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 해당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가방과 의류를 판매하던 명품그룹이 호텔과 화장품, 운동·회복 프로그램을 연결해 고객의 휴식과 건강관리 시간까지 사업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앞으로 명품업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웰니스 분야 진출에 나설 것으로 예측된다. 디올은 최근 웰니스 제품군도 출시했다. ‘오트 웰니스 디올’ 컬렉션으로, 주요 제품군으로는 요가 블록, 필라테스 링, 웨이트가 포함된 피트니스 세트를 비롯해 요가 매트와 필라테스 매트, 물병 등이 있다. 마음을 정돈하고 생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도 함께 구성된 것이 인상적이다. 의류나 가방의 부속품이 아니라 운동과 휴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의 독립적인 명품 제품군으로 내놓은 것이다. 웰니스를 의료나 운동의 영역을 넘어 취향과 미감을 보여주는 명품 소비로 편입한 셈이다.
루이비통도 공식 제품군인 ‘스포츠·게임·레저’ 카테고리에서 요가 매트를 판매하고 있다. 천연 코르크와 라텍스로 만든 매트에 모노그램 문양을 입히고 전용 운반용 스트랩을 더했다. 가격은 191만원에 달한다. 루이비통은 요가 매트뿐 아니라 서프보드 등 스포츠·레저용품도 고가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한정판 서프보드의 가격은 2055만원이다. 운동 종목 자체를 사업화한다기보다 부유층이 여가를 즐길 때 사용하는 장비를 브랜드의 장인정신과 희소성을 보여주는 수집품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프랑스 명품그룹 케링은 로레알과 40억유로 규모의 전략적 제휴를 맺고 향수 브랜드 크리드를 포함한 케링 보떼 사업과 보테가베네타·발렌시아가 등의 향수·화장품 라이선스를 넘겼다. 양사는 이와 별도로 지분을 절반씩 보유하는 합작사를 설립해 럭셔리와 웰니스, 장수 분야의 신규 사업 기회를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했다. 로레알의 연구·제품개발 역량과 케링이 축적한 럭셔리 고객 및 브랜드 경험을 결합한다는 구상이다.

명품기업이 웰니스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고객과의 관계를 일회성 구매에서 장기적인 관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방이나 시계는 구매가 끝나면 고객이 매장을 떠나지만 건강관리에는 반복적인 방문과 결제가 뒤따른다. 숙박과 식사, 피부 관리, 운동, 수면·회복 프로그램을 연결하면 고객의 하루 뿐 아니라 생활습관 전체를 브랜드 안에 묶어둘 수 있다.
부유층의 과시 방식이 달라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희소한 가방과 보석을 소유하는 것이 경제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꾸준한 운동으로 만든 신체와 충분한 수면, 체력과 자기관리 능력 자체가 새로운 지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명품업계는 이런 변화를 반영해 잘 관리된 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건과 공간, 경험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부유층 사이에서 ‘건강수명’이 중요한 소비 기준으로 떠오면서 잘 관리된 신체와 느린 노화에 돈을 쓰는 트렌드가 뚜렷하다”며 “명품기업들이 더 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 자체를 파는 콘셉트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