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컬렉터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는 누구일까요? 모두가 입 모아 한 명을 지목할 것입니다. 바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에릭 클랩튼입니다. 클랩튼은 감미로운 목소리와 신이 내린 기타 연주 실력만큼이나 시계를 보는 안목과 취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나 있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시계 중 많은 것이 전설처럼 회자되곤 합니다.

최근 필립스옥션 뉴욕 경매에 나온 그의 시계 두 점 중 한 점이 77억원에 낙찰됐습니다. 동일 모델로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데요. 경매 시장에서 에릭 클랩튼의 이름은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습니다. 과연 어떤 점이 그의 독보적인 가치를 만들었을까요?
에릭 클랩튼은 오늘날 수백억원의 빈티지 하이엔드 시계 수집 시장이 자리 잡기 전부터 시계를 즐겨 모았습니다. 일본산 쿼츠(배터리) 시계가 스위스 기계식 시계 시장을 위협하던 ‘쿼츠 위기’가 닥쳤을 때도 클랩튼은 확고한 취향으로 컬렉팅을 이어갔습니다. 또, 브랜드에 따로 주문을 넣어 제작한 특별 에디션은 컬렉션의 희소성과 가치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롤렉스와 파텍 필립은 에릭 클랩튼의 컬렉션에서 중요한 두 축을 담당합니다. 클랩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소장품 중 일부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요. 전 세계 단 두 점 중 하나인 파텍필립의 ‘레퍼런스 2499/100 플래티넘’과 서브다이얼까지 온통 은백색으로 이뤄져 ‘알비노’라는 애칭을 지닌 롤렉스의 ‘데이토나 레퍼런스 6263’가 대표적입니다.
파텍 필립의 레퍼런스 2499/100 플래티넘은 2012년 크리스티 제네바 경매에서 363만 5808달러(당시 환율로 약 40억 원)에 롤렉스의 데이토나 레퍼런스 6263는 2015년 필립스 제네바 경매에 출품, 142만 2666달러(당시 환율로 약 16억 원)에 낙찰되며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지난 6월 또 한 번 컬렉터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클랩튼의 시계 파텍 필립 ‘레퍼런스 5004G-020’와 ‘노틸러스 Ref. 5711/1A-010’ 두 점이 뉴욕 필립스옥션을 통해 경매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필립스옥션에 따르면 ‘레퍼런스 5004G-020’는 전세계 단 한 점뿐인 피스입니다. 이 시계는 최저 추정가의 7배가 넘는 금액에 새 주인을 찾았는데요. 무려 520만 2000달러, 한화로는 약 77억원에 낙찰되며 레퍼런스 5004 모델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 시계는 경매 시장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조합을 자랑합니다. 클랩튼이 직접 특별 제작을 요청해 화이트골드 케이스에 로즈핑크 다이얼로 완성됐습니다. 5004 모델의 정규 생산에는 옐로 골드,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 플래티넘, 스테인리스 스틸 총 다섯 가지 소재가 사용됐습니다. 그중 화이트 골드는 현재까지 단 27점만 확인되었을 정도로 가장 희귀한 소재인데요. 여기에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취향과 소장 이력이 더해지면서 소장자만큼이나 전설적인 피스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낙찰되었습니다(Sold)." 이 짧은 한마디와 함께 수십억 원이 오고 갑니다. 경매사의 망치가 내려치기까지, 한 점의 작품은 누구의 손을 거쳤고 어떤 시간을 품어왔을까요. 숫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가치와 그 뒤에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