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4층에 마련된 검토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짙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무거운 침묵이 깨진 건 신진서 9단이 90번째 수를 두는 순간이었다. 현장을 가득 메운 한국기원과 대회 관계자, 취재진은 그의 결정적 실착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술렁였다.

이날 한국경제신문사 사옥은 ‘인간계 최강’으로 불리는 바둑 세계랭킹 1위 신진서와 인공지능(AI) '카타고(KataGo)'의 역사적인 맞대결, ‘쎈수학·한경 기신전(棋神戰)’ 3연전 1국으로 이른 아침부터 묘한 긴장감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대국이 열린 11층 스튜디오와 14층 검토실에는 1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곳곳에선 숨죽인 카메라 셔터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인간과 AI의 결전을 지켜보는 온라인의 열기도 오프라인 못지않게 펄펄 끓었다. 한국경제TV 유튜브 채널 실시간 동시 접속자는 한때 6500명에 다다르며 이번 대국에 쏠린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방증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패한 ‘알파고 쇼크’ 후 10년. 그새 AI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번 대국이 흑 두 점을 먼저 놓는 2점 접바둑으로 펼쳐짐에도 많은 이가 카타고의 승리를 예측한 이유다. 한국기원이 이날 대국에 앞서 프로 바둑 기사 22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62%(137명)가 ‘카타고가 승리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런데 AI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강했다. 카타고는 첫수부터 신진서를 당황하게 하더니, 103수 만에 역전했다. 이후 승부는 무의미했으나, 제한 시간 때문에 대국은 계속됐다. 현장에선 “잔인한 승부다”, “신진서 9단에게 가혹한 일”이라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무겁게 흘러나왔다.
이날 신진서는 4시간20분 혈투 끝에 245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이번 대국은 제한 시간의 3분의 2 이상이 지난 시점에 대마가 잡히거나 집 차이가 30집 이상 벌어져야 불계를 선언할 수 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