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점심에 먹은 음식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어 SNS에 올린 사람이라면, 영국의 사진작가 마틴 파(1952~2025)처럼 사진을 찍은 셈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정면으로 들이댄 앵글. 파는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30년 전부터 그런 사진을 촬영했다. 다른 작가는 아무도 그렇게 찍지 않을 때였다.
당시 '예술이 되는 사진'에는 원칙이 있었다. 흑백일 것, 진지할 것, 중요한 사건일 것. 파는 세 가지를 다 어기고도 위대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은 평범한 슈퍼마켓과 해변에서 찍은 사진도 전쟁터에서 찍은 사진만큼이나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6일 서울 창동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마틴 파: 위 아 마틴 파'는 총 595점에 달하는 작품을 통해 파가 어떤 작가였는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예술 사진이 된 일상
전시장에 나온 파의 출세작 '마지막 휴양지(The Last Resort)' 앞에 서면 일단 웃음이 난다. 흐린 하늘, 쓰레기가 뒹구는 모래사장, 그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태연히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1983~85년 공업도시 리버풀 인근의 쇠락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서민들을 담은 연작이다. 사진 속 사람들은 애써 볼품없는 현실을 외면하며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86년 이 연작이 공개되자 영국 사진계는 둘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파의 적나라한 사진이 노동계급을 조롱한다며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엉망진창인 영국의 현실을 해부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파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자신이 찍은 것은 그 흉한 해변에서도 기어이 삶을 즐기려는 보통 사람들이라고. 사진에 나온 사람들이 우스워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는 엔터테인먼트로 위장한 진지한 사진을 만든다"고 답했다. 재미있는 사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 속에 담긴 진지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그의 사진들에는 현대 소비 사회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림자가 사라진 화면에서 벌건 살갗과 음식은 광고 사진처럼 번들거리고, 평범한 해변은 무대 세트처럼 보인다. 색도 자연이 아니라 상품의 색이다. 이를 위해 파는 해가 쨍한 대낮에도 플래시를 터뜨렸다. 광고 사진을 찍을 때 쓰는 기법이다.

이런 그가 1994년 세계 최고 권위의 보도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매그넘)에 가입을 신청하자 사진계는 술렁였다. 전쟁과 혁명의 현장을 기록해 온 선배 회원들의 눈에 파는 '중요한 것을 전혀 찍지 않는 사진가'였다. 격렬한 논쟁 끝에 매그넘은 결국 파를 받아들였고, 그는 훗날 이 조직의 회장(2013~2017)까지 지냈다.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도 '사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이다.
파는 생전 "지루한 소재도 의외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며 "평범한 주유소에서 사진을 찍으면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시대의 소비주의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기록이 된다"고 말했다.
남북한 사진부터 '사진관 사진'까지
한국과 북한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도 주목할 만하다. 1997년 파는 패키지 관광을 통해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에서 파는 체제 선전 기념비와 완벽하게 정돈된 거리,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을 담았다. 한국에서는 에버랜드의 인파와 커플티를 입은 연인, 마트에 간 아이 등을 찍었다. 두 시리즈를 나란히 걸어 놓은 덕분에 관객은 남북 사회의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여러 시기의 다양한 작품을 대규모로 모아놓은 덕분에 관객들은 파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다. 1970년대 영국 북부의 교회 공동체를 찍은 초기 흑백 연작 '비국교도들'은 조용하고 진지하다. 하지만 '자화상' 방에 들어서면 웃음이 터진다. 파는 1991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 각지의 사진관에 들어가 그곳 방식 그대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1990년대 말 얼굴을 뽀얗게 보정해주던 한국 사진관의 '프로필 사진'도 걸려 있다.


파는 지난해 12월 6일 영국 브리스틀 자택에서 향년 73세로 눈을 감았다. 전시 제목 '위 아 마틴 파'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그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됐다는 뜻이다. 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는 전시 도록에 이렇게 썼다. "만약 마틴 파가 '이런 건 나도 찍겠다'는 관람객들의 중얼거림을 듣는다면 그는 기쁘게 웃었을 것이다. 2026년의 우리는 모두 마틴 파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