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무당들, 그리고 출렁이는 코스피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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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월요일마다 기다리는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네이버웹툰 ‘샤MONEY즘’입니다. 샤머니즘에 머니(MONEY)를 끼워 넣은 제목부터 흥미롭습니다. 설정은 더 기발합니다. “진짜 일류 무당은 여의도에서 논다.” 대한민국 금융의 심장 여의도의 투자사들이 신통력 있는 무당들을 고용해 주가를 움직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 매체 편집장이 웹툰 이야기로 칼럼을 여는 것이 다소 겸연쩍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어쩌면 웬만한 투자 보고서보다 주가의 본질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가난한 소년 천지승은 압도적인 신기를 타고났습니다. 그 능력을 알아본 투자사 ‘골든 크로스 인베스트먼트’가 그를 스카우트합니다. 그의 전공은 ‘살굿’. 기업에 살(煞)을 날려 악재를 일으키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굿입니다. 그가 굿을 하면 잘나가던 종합상사의 해외 거래선이 끊기고, 기대를 모으던 해운사의 신규 항로에 내전이 터집니다. 그래서 그는 ‘여의도의 저승사자’로 불립니다.


    작품은 무속과 주식시장을 제법 정교하게 연결합니다. 주가를 떨어뜨리는 살굿은 공매도, 즉 숏 포지션입니다. 주가를 올리는 축원굿은 매수, 즉 롱 포지션입니다. 여의도 최강 세력은 축원굿 무당들로 구성된 ‘오성금융’입니다. 삼성보다 별이 두 개나 더 많습니다.

    축원굿만 있던 여의도에 20여 년 전 살굿이 등장하면서 판이 흔들립니다. 롱 일변도의 한국 증시에 롱숏 전략을 쓰는 헤지펀드가 들어온 겁니다. 하지만 살굿이 선을 넘어 사람까지 죽어나가자 정부는 최고 무당들을 모아 감독기구를 만듭니다. 금융감독원 산하 ‘금살원’입니다.

    돌이켜보면 인간은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일들을 점에 맡겨왔습니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공격할지를 델포이 신탁에 물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 거대한 제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답을 듣고 출정했다가 무너진 제국이 자신의 나라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주식시장 역시 오래전부터 미래를 미리 사고 싶어 했습니다. 그 욕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신탁이 있었습니다. 투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세기 초 월가의 전설적 트레이더 W. D. 갠은 점성술을 매매에 활용했고, 당대 최고의 점성술사 에반젤린 애덤스의 고객 명단에는 월가의 거물들이 올라 있었습니다.


    여기서 작품이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에 닿습니다. 투자란 무엇인가. 투자는 인간의 욕망과 실제로 구현된 혁신 사이의 간극을 가격으로 좁혀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주가는 미래에 대한 인간 욕망의 총합이고, 실적은 현실에 나타난 혁신의 결과입니다. 둘은 늘 어긋납니다. 욕망이 혁신보다 앞서 달리면 거품이 되고, 혁신이 욕망보다 앞서가면 저평가가 됩니다. 투자자는 그 간극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무속은 그 간극이 주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발명한 가장 오래된 장치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공포 앞에서 인간은 작두 위의 무당에게, 델포이의 여사제에게, 오늘날에는 차트의 골든크로스와 애널리스트의 목표주가에 기대어 왔습니다. 형식만 달라졌을 뿐 미래를 내다보고 싶다는 욕망의 구조는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제 눈에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여의도 무당 세계의 권력 구도입니다. 작품 속에서 축원굿 무당들은 주류이고 다수이며 최강 세력입니다. 반면 살굿 무당들은 소수이고, 이미지가 나쁘며, 늘 경계의 대상입니다. 이 대목에서 웹툰이 아니라 현실의 여의도를 봤습니다. 상승을 축원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환영받지만 하락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쉽게 미움받습니다.

    오해는 마시길 바랍니다. 시장의 상승을 바라는 마음이야 모두 같습니다. 저 역시 코스피가 오르기를 누구보다 바랍니다. 그러나 시장에 축원만 남고 경고가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살굿, 즉 공매도와 비관론은 시장의 상승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이 상승할 수 있는 토대를 점검하는 장치입니다. 거품을 경고하고, 부실을 들춰내며, 과열된 욕망과 실제 혁신 사이의 거리를 좁힙니다. 엔론의 분식회계를 세상에 드러내고,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거품을 경고한 이들 가운데에도 공매도 투자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축원만 하는 굿판은 가장 흥겨운 굿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위험한 굿판이기도 합니다. 저주를 금지한다고 악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재를 미리 말해줄 사람이 사라질 뿐입니다.

    작품 속 축원굿 무당은 주인공에게 묻습니다. 주가가 오르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니냐고, 너희 같은 살굿 무당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인공이 멈칫하자 동료가 대신 반박합니다. 기업 같지도 않은 기업에 축원굿을 올려 주가를 잔뜩 끌어올린 뒤 도망치는 너희도 우리와 똑같은 것 아니냐고.

    핵심은 주가를 올리는 것이 선이고, 떨어뜨리는 것이 악이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격이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 근거 없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축원굿과 근거 없이 공포를 퍼뜨리는 살굿은 사실 같은 편입니다. 둘 다 가격을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좋은 시장은 낙관론만 넘치는 시장도, 비관론만 지배하는 시장도 아닙니다. 상승을 믿는 사람과 하락을 경고하는 사람이 서로의 논리를 검증하며 가격을 현실에 가까이 붙들어두는 시장입니다. 축원굿과 살굿이 함께 있어야 굿판이 균형을 찾듯 매수와 공매도, 낙관과 비관이 공존해야 시장도 제 기능을 합니다.

    요즘 코스피가 크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장세입니다. 주식투자를 하고 계신다면 마음도 함께 출렁일 겁니다. 그러나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아직 시장이 욕망과 혁신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균형점이 어디인지는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습니다. 무당도, 애널리스트도, 투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축원에 취하지 않고, 저주에 겁먹지 않으며, 가격과 현실의 거리를 계속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조금 더 평온한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답답하시다면 속는 셈 치고 웹툰 ‘샤MONEY즘’을 한번 클릭해보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여의도의 굿판이 왜 이토록 시끄러운지는 조금 더 잘 보이게 될 테니까요.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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