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달이다.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섭씨 40도를 넘는 불볕더위와 가뭄이 이어졌다. 수만 명의 온열질환 환자가 나왔고,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온난화를 넘어 지구가 끓어오르는(global boiling) 시대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무렵이다.기후 변화의 증거가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자, 주요국 정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장벽을 빠르게 높였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2024년 상장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는 기후 공시 규칙을 채택했다.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도입한 유럽연합(EU) 역시 주요 상장사에 기후 위기 관련 정보 공시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 되살아나는 ESG 규제
ESG 바람에 제동을 건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해 2기 행정부 출범 후 그가 내린 첫 번째 행정명령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파리기후협약 탈퇴다. ‘온실가스 위기’는 미국 제조업을 무력화하기 위한 사기극이란 게 트럼프 대통령 주장이었다. ‘환경 전위대’로 불리던 유럽도 경기 침체와 대외 통상 리스크, 규제 부담 등을 이유로 ESG 규제 도입 속도를 늦췄다.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으로 대상이 축소되고 일부 제도의 시행 시점이 조정됐지만, ESG 규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럽에선 지난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본격 시행됐다. EU로 수출되는 일부 품목은 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영국은 자체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 주요국도 자체 녹색 분류체계(Taxonomy)와 기후 공시 제도를 정비 중이다.
한국에서도 ESG 규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정부는 최근 ‘ESG 공시 제도화 최종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연결자산 총액이 10조원 이상인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2028년 사업보고서 제출 때부터 ESG 관련 공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후 2029년에는 5조원 이상 기업, 2030년부터는 2조원 이상 기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신뢰도를 높여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환경 과속'은 국익에 도움 안 돼
ESG 공시가 피할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지만, 정부가 앞장서 ‘과속’을 유도할 이유는 없다. 대상을 인증 여력이 부족한 중견기업으로까지 넓히면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담이 너무 커진다. 벌써 업계에선 새로 도입된 공시 제도가 회계법인과 인증기관의 배만 불릴 것이란 푸념이 나오고 있다. 기업도 규제 완화만 부르짖어선 곤란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ESG 열등생’으로 분류되면 자금 조달은 물론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착실히 ESG 시대에 맞는 조직과 인력, 인프라를 갖출 필요가 있다.올해 더위도 2023년 못지않다. 유럽 주요 도시는 물론 미국 뉴욕까지 기록적인 폭염을 겪으면서 기후 위기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ESG 관리 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