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두른 중년의 흑인 여성이 영국 억양을 쓰는 백인 남자에게 묻는다. “울진 않았어요. 하지만 미친 듯이 들떴죠.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서 할렘까지 걸어 올라갔어요.” “한 3년만 지나 봐요. 그날에 대한 영화가 나올 테니까.”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바에서 엿들은 이야기다. 뉴욕 농구팀 닉스가 챔피언이 된 지 한 달 전이지만 여운은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닉스가 53년 만에 우승을 앞둔 밤, 졸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친구의 탄식이었다. 2쿼터 초반 16점차로 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긴다면? “뉴욕 시 전체는 고담 시티로 변할 거야.” 어제 인터넷에서 봤던 댓글이 떠올랐고,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집에서 한 블록 거리의 펍으로 갔다.

롱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라 맨해튼을 떠난 적 없는 친구 I에게도 이 도시의 떠들썩함은 생소했다. 나는 농구 팬도 아니었지만 이 기록적인 축제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내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청년 시절 2002년 월드컵을 만끽할 수 있었던 X세대에 대한 질투를 타파할 기회. 족히 백 명은 넘는 손님들의 주문을 홀로 담당하고 있는 바텐더를 포함, 어깨가 맞닿은 관중 누구도 얼굴을 찌푸린 이가 없었던 것을 보면 모두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우승 직후, 귀가 멀 듯한 열기 속에 한 남자가 말했다. “난 이 밤을 평생 기억하고 자랑하게 될 거야.”
이스트 49가에 있던 펍에서 나와 거리로 쏟아지는 무리에 섞여들었다. 나와 친구는 어디로 갈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면 되었다. 인파는 5번 애비뉴를 향해 물고기 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중심에 결집한 이 무리는 들쑥날쑥한 행렬을 지어 다운타운을 향해 내려갈 것이었다.
걷는 내내 모두가 구호를 외쳐댔다. “5차전에서 승리한 닉스!” 경기 전까지 간절한 암시로 쓰였던 이 말은 이제 현재형 시제가 되었다. 그간의 기도, 주문, 긴장을 떨쳐버린 해방감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다. 브라이언트 파크에 근접해 가면서 나는 생전 처음 접하는 규모의 인파와 마주했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친구들끼리 모인 파티 분위기를 도시 전체에서 풍길 수 있음이 놀라왔기 때문이다.

중절모를 쓴 중년 남자가 담배 가게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그 리듬에 맞춰 사람들은 춤춘다. 바에서 나오는 야시시한 노래마저 닉스 승전가가 된다. 모르는 사람끼리 포옹한다. 갑자기 걸어오는 말에 살갑게 대꾸하는 장면 뒤에는 이런 대화가 따라온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겨드랑이가 깊게 파인 농구 민소매를 입은 남자가 유리창에 기댄 노숙인에게 고함친다. “일어나요. 일어나! 기적이 일어났다고!”
호쾌한 경적소리도 들려온다. 관광버스에 승객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발견한 친구가 말한다. “운전사가 흥분해서 차 끌고 나온 거야. 사람들이랑 같이 축하하려고.” 저 멀리 희미하게 앨리샤 키스와 제이지의 노래가 퍼지는 순간 사람들은 밀물에 잠기듯 감상에 젖어 카메라 플래시를 켠다. 타임스퀘어에 가면 삼십 분 동안 열 번은 족히 들을 수 있는 이 곡은 이런 순간에 한 물 간 유행가가 아닌, 공동의 흥분을 표출하기 완벽한 수단이다.
그러나 1절이 지나기도 전에 음악은 뚝 끊기고, 다시 행진이 재개된다. 준비되지 않은 허술함이 흥분을 증명해준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쉬움에 궁시렁대고 말았다. “50년동안 무선 스피커 충전 못한 거 실화냐고…” 1973년 뉴욕의 버스 요금은 35센트(지금은 2.90달러),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었다. 맨해튼 원룸 월세가 200달러 선이던 시절(현재 평균 5300달러)이니, 53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무게가 짐작이 간다.

차주에 열린 행진 퍼레이드에는 73년부터 닉스 우승을 염원해온 노인 팬들부터 갓난아기까지 총출동했다. 우리는 알게 된다. 신호등은 웃통을 벗은 장정 셋이 매달려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하다는 것을. 만지면 따끈할 것 같은 20불짜리 제작 티셔츠를 구경하는 동안, 나의 어깨 위에 등목을 탄 여자 아이의 레게 머리가 스쳐 까글댄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선수들이 브로드웨이를 가로지르는 긴 행진을 마치고 시청 앞 무대에 자리한 후였다. 곧 올해 1월 1일에 취임한 뉴욕 시장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연설이 들려왔다.
“진정 이 도시를 지탱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이웃을 돌보고 서로를 지켜내려는 평범한 뉴요커들의 연대와 헌신입니다. 우리는 가장 뉴욕다운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내 뒤를 지나가는 여자의 까랑까랑한 음성이 시장의 젊은 목소리 위에 포개진다. “Oh, That’s Our Mayor taliking. Gotta stop and listen.”(오, 우리 맘다니 시장님이네. 그럼 집중해서 들어야지. ) 맘다니 시장은 입석 티켓을 직접 구매해 시민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한 것으로도 화제가 됐다.

며칠 뒤 소호의 인기 극장 IFC 앞을 지나다가 나는 그날의 화기애애한 군중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직원들이 매일 글자를 하나씩 갈아 끼우는 극장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My mayor Muslim(우리 시장은 무슬림)
My bagel Jewish(우리 베이글은 유대인)
Our movies Indie(우리 영화는 인디)
Congrats KNICKS and NY City(닉스와 뉴욕 축하합니다)"
종교도, 음식도, 패션도, 스포츠도 한 문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인다. 맘다니 시장이 강조한 뉴욕의 문법은 거리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닉스의 우승 역시 뉴욕을 닮아 있다.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팀워크가 우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겸손한 리더 제일런 브런슨이 있다. 조시 하트가 결정적인 레이업을 놓친 순간, 질책 없이 그의 기운을 북돋았던 브런슨과 동료들의 모습은 팬을 넘어 인간으로서 위로받는 순간을 만들었다. 팀을 우선하는 그의 태도는 닉스 이적 후 연봉 1500억을 자진 삭감한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막대한 이익을 포기한 대신 구단은 걸출한 선수들을 영입해 최고의 팀을 꾸릴 수 있었다.
가능성을 의심받아 온 선수였기에, 그의 희생은 특별한 공감을 얻었다. 제일런은 다소 작은 키로 ‘최고는 될 수 없는 선수’라는 꼬리표를 감내해야 했으며, 댈러스 구단에서는 2인자의 굴욕을, 닉스 입단 때는 냉담한 조롱을 버텼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패널티를 팀워크로 메꿨다. 실수는 지적에 의해 실수가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반대의 경우 그것은 용기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를 최고의 선수로 만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만큼 동료를 믿는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돈을 포기하고 동료를 선택하는 낭만이 뉴욕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경악스럽지만, 양보와 배려가 결국 최고의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기 힘들다. 아마 그것은 나 자신을 그 험난한 길에 대입하기 겁나서일 것이다. 혼자 가는 길의 확실성과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선함이 전략이 될 수 있을까. 겸손과 양보, 배려, 희생, 단합, 격려 같은 말은 멸종한 가치 아닐까. 상대의 성장이 마치 나의 퇴보로 느껴지도록 학습된 우리 시대에 여전히 공동의 승리라는 것이 가능한 걸까?
이 질문에 답하듯, 도시 곳곳에서는 '우리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배우 티모시 샬라메(Timothee Chalamet)는 경기 종료 직후 외쳤다. “오스카상보다 이게 훨씬 좋다!” ‘위대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발언이 얼마 전 노골적인 야망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모습이다. 자신이 스타라는 사실도 잊은 듯 일반 팬들과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다시 그가 가장 사랑받던 순수한 얼굴을 보았다. 브롱스 출신 팻 조(Fat joe)는 말했다. "경기장 밖에서 하시디즘 유대인들이 흑인 아이들과 함께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은 9/11 테러 이후 뉴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통합의 모습이다."

나의 출신, 나의 직업, 나의 인종보다 상대와 나를 잇는 끈이 더 중요해지는 희귀한 체험 속에서 '나'는 훼손되거나 축소되지 않는다. 나를 받아들이는 '우리'가 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스트 빌리지 바에서 그 흑인 여자는 말했다. “응원할 때 내가 그 나라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지. 그게 진짜 인간다운 거야.” 그날 밤 사람들이 내게 눈을 맞추며 했던 말들이 들려온다. “우리가 해냈어요!", “축하해요!”, “가자!” 뉴요커도, 닉스 팬도 아닌 나였지만 그 기쁨은 나에게도 허락되어 있었다. 아무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았다. 기뻐하면 우리 편. 단지 그뿐이라는 듯, 모르는 남자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지나갔다. 얼얼한 손바닥에 어떤 도장 같은 게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