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1시께 서울 영등포구의 한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은 거대한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빨간 조끼를 입은 신호수는 레미콘 차량 유도를 마친 뒤 곧장 냉풍기 앞으로 피신했다. 알약 형태 식염 포도당과 아이스팩도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이날 영등포구에는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인근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만난 김모씨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너무 더워서 일을 일찍 마치고 퇴근하려 한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일터 곳곳에서 ‘더위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예상돼 온열질환 의심 환자 폭증에 따른 대응에 비상이 걸렸다.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5월부터 6월까지 119 구급대는 온열질환 의심으로 315건 출동했다. 이와 관련해 이송된 인원은 250명에 달했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의심 사례도 나왔다. 지난 11일 오후 5시32분께 충북 영동군 심천면의 한 주택 마당 텃밭에서 80대 A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다. 소방당국이 출동했을 때 A씨는 심정지 상태였다. 당시 영동에는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었으며, 한낮 최고 기온은 35.2도였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9명으로 집계됐다. 경기 고양시에서는 80대 남성이 산책을 하다가 어지러움을 느껴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온열질환 의심 환자는 매년 증가세다. 연도별로 보면 5~9월 온열질환 관련 119 출동은 2021년 906건에서 작년 3709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송 인원도 819명에서 3034명으로 늘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본격적인 폭염으로 산업재해가 늘고 공사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 현장은 폭염의 직격탄을 맞는 대표적인 곳이다. 전날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서는 건설 현장 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60대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충남 천안의 한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전기설비 작업을 하는 이모씨(33)는 “더위 때문에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일정이 밀리면 스트레스가 더 커져 현장 작업자들은 최대한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병해충과 무름병 우려가 커지면서 농작물 관리에 비상이 걸렸고, 축산 농가도 축사 온도를 낮추기 위해 선풍기와 안개 분무기를 24시간 가동하는 등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강원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장은 “기온 30도가 넘어가면 병충해와 무름병이 발생한다”며 “배추가 폭염에 망가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축도 신음하고 있다. 올여름 김해를 비롯한 경남지역 8개 시·군에서만 돼지 117마리가 폐사하는 등 폭염으로 인한 가축 피해가 늘고 있다. 강원 인제군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권충교 씨는 “38도가 넘어가면 소의 소화능력이 떨어져 축산 피해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폭염에 노인 등 취약계층 건강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멀리 있는 무더위 쉼터보다 가까이 있는 미등록 경로당을 주로 찾는다. 하지만 미등록 경로당은 냉난방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 환경이 열악하다. 영등포구청 인근에서 만난 90대 김모씨는 “경로당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나왔다”며 “노인들이 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곳곳에 쉼터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