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기업의 자본 투자 패턴에서 '빌드'(미래형 설비·기술 투자)가 '바이(M&A)'를 초과할 것입니다."
민준선 삼일PwC 딜부문 대표는 최근 서울 한강로 아모레퍼시픽빌딩 본사에서 가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빌드의 시대'가 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대규모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나 관련 공장 증설 등 '빌드'관련 투자 경쟁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통상 기업의 비약적인 성장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뤄졌지만, 올해는 기업의 대규모 자본 투자가 AI 관련 데이터센터, 반도체, 로봇, 전력, 에너지 등에 집중되면서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게 민 대표의 전망이다. 그는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전략책임자(CSO) 등 C 레벨의 자본 배분에 대한 의사결정과 원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했다.
'빌드'에 버금가는 AI발(發) '빅딜' 많아진다...M&A양극화 전망도
M&A 역시 빌드와 맞먹는 '빅딜'이 늘어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삼일PwC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글로벌 M&A의 거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지만 거래 금액은 42% 늘어난 약 2조 달러(약 3000조원)를 기록했다. 그는 "올 상반기 최대 딜은 100조6340억원(약 670억달러) 규모인 미국 '넥스트에라에너지'의 도미니언에너지 인수"라며 "AI 산업 폭발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자 북미 최대 전력·에너지 인프라 기업이 경쟁사를 주식 교환 방식으로 인수했다"고 소개했다. 75조원 규모인 아마존의 오픈AI 투자를 비롯해 각각 45조원 규모인 엔비디아의 오픈AI 투자와 싱가포르투자청(GIC)의 엔트로픽 투자 등도 올 상반기 나온 메가딜이다. 그는 "기업들이 AI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AI 시대의 핵심 자산과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해 M&A에 나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산업 간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전망이다. PwC는 올해 글로벌 M&A 거래 규모가 4조 달러(약 6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는 2021년 이후 5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하반기 국내 M&A시장 전망에 대해 민 대표는 'AI 중심의 산업 재편', '선별적 투자', '양극화 심화'라는 키워드로 표현했다. 그는 "AI 투자 확대와 에너지 전환, 인프라 구축으로 자본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경기 둔화 우려와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수준, 사모펀드(PEF)의 투자금 회수지연 등으로 자본공급 여건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며 "성장성과 전략적 가치가 명확한 자산에 자금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I, 전력, 에너지, 반도체 등 성장 산업관련 M&A는 늘고 있지만 자동차부품이나 전자 부품 등 전통 산업 M&A는 줄어드는 'M&A 양극화'현상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상반기 국내 M&A 시장도 거래 건수는 정체된 반면, 거래 금액은 27% 증가했다. 그는 "대규모 전략적 거래가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대기업의 경우 상장사 카브아웃(사업부 매각) 딜은 소액주주들 보호 정책 등 기업의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에 있어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삼일PwC는 올 상반기 베인캐피탈의 에코마케팅 인수 및 상장폐지, 스틱인베스트먼트의 SK그룹 울산GPS·SK 멀티유틸리티 투자, JKL파트너스의 크린토피아 매각, 한앤컴퍼니의 솔믹스 매각 등을 자문했다. 하반기 예상 딜에 대해선 그는 "반도체, 전력 인프라, K콘텐츠, 부품소재 딜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AI밸류체인 분업 체계 완성...깜짝 놀랄 크로스보더 M&A 나오나
국내 대기업의 크로스보더(국경간거래) M&A도 활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AI 빅테크부터 로봇, 에너지기업까지 전체 AI 관련 산업 밸류체인 가운데 미국과 중국, 대만, 한국 등의 글로벌 분업과 시장 선점이 올해 어느 정도 윤곽을 보일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도 뛰어난 반도체와 제조 역량으로 해외에서 M&A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국가별 M&A 전략에 대해 그는 "미국은 여전히 기술·플랫폼·인프라 자산 확보의 핵심 시장이고, 일본에선 엔저와 산업재편을 활용한 전략적 제휴 및 인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창업주의 은퇴시기와 맞물려 글로벌 PEF의 기술력 있는 기업 인수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또 인도와 동남아는 내수 성장, 디지털 전환, 제조기지 다변화 측면에서 중장기 진출 가치가 여전히 높다. 그는 "유럽은 에너지 전환, 친환경 소재, 산업 자동화 분야에서 우량 기술 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라며 "산업 측면에서는 반도체 소재·장비, 로보틱스, 디지털 헬스케어, 방산·우주항공, 에너지 인프라, 전력기자재 등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중견기업의 AI 대전환, M&A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시장 참가자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성장사다리'가 많이 약화됐다"며 "이들이 AI산업 대전환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최종 납품처인 삼성과 현대차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부도 세제·노동 규제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하반기 국내 M&A 예상 업종은 반도체·전력 인프라·K콘텐츠·부품소재 등이다.

매니지드 서비스 강화..."고객의 부분이 될 것"
그는 "삼일PwC가 단순히 딜만 자문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빌드'와 '밸류'도 자문해 고객의 일부분이 되는 '매니지드(경영위탁)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했다. 매니지드서비스는 단순 아웃소싱이나 인력 지원이 아니라, 기업의 주요 경영 기능을 장기적으로 대행·관리하면서 AI, 데이터, 자동화, 산업 전문성, 리스크 관리 역량을 결합해 운영 효율성과 혁신을 돕는다.그는 "기업의 밸류 체인 안에 들어가서 전략 기획 및 실행 등 의사결정 단계에도 직접 참여할 것"이라며 "고객 속으로 들어가 고객의 부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존 '딜 어드바이저리'라는 조직명도 '스트레이트지, 딜 앤드 밸류크레이션'(전략·딜·가치창출)으로 바꿀 예정이다.
삼일PwC는 전략과 컨설팅을 딜조직에 내재화하기 위해 30명의 전문가를 별도로 뽑았다. 2024년 6월 딜부문 대표로 그가 취임하자마자 내건 '밸류 어드바이저리(기업 가치 자문)'라는 목표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요즘 기업 고객들이 받게 되는 우리 보고서가 경쟁사와는 상당히 다른 것도 이 때문"이라며 "고객사로부터 '삼일이 이런 것도 자문해주네'라는 반응이 나오게 차별화된 융복합 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PwC의 강점은 기업에 대한 오랜 자문 경험과 소속 회계사들의 낮은 이직률 즉 탄탄한 조직 안전성이다. 그는 "웬만한 파트너는 고객 기업과 최소 10년 이상 거래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작년 딜 부문 매출도 업계 최초로 20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에도 10%이상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1인당 생산성도 경쟁사 대비 30% 이상 높다"며 "삼일PwC의 딜 부문 매출 40% 이상이 성공 보수인 점도 고객과의 장기적 파트너십 덕분"이라고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