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은 이제 단순한 소비를 넘어 환경과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려한 트렌드와 런웨이의 이면에 막대한 자원 소비와 폐기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발생하는 섬유 폐기물은 약 9,200만 톤에 달한다. 이를 10만 톤급 항공모함의 무게로 환산하면 약 920척에 해당하는 규모다. 매년 항공모함 900여 척에 맞먹는 양의 의류와 섬유 제품이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UNEP는 전 세계 의류 생산이 2000년 이후 약 2배 증가했지만, 옷을 입는 기간은 약 36%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영국의 자원순환·재활용협회인 WRAP에 따르면, 영국에서만 2022년 한 해 약 약 71만 톤의 중고 섬유가 일반 쓰레기로 버려졌다.
이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환경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상장 의류업체가 최근 5년간 배출한 폐섬유류는 총 214만2,057톤에 달했다. 하지만 정작 분리 배출된 폐의류는 약 11만 톤(2023년 기준)으로 대부분이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과 한국이 함께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를 모색하는 <한·영 패션 퓨쳐스 - 지속가능한 패션의 미래(UK-Korea Fashion Futures)> 전시가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간수문전시장에서 열린다.
영국은 패션 산업에서 순환경제와 친환경 소재 개발 등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섬유협정(UK Textiles Pact)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섬유 산업의 탄소배출을 50%, 물 사용량을 30%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번 전시는 영국 정부의 GREAT 캠페인의 일환으로 마련됐으며, 순환경제와 업사이클을 기반으로 영국과 한국이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로 알려졌다.
전시는 지상층(Circle Back; 잇다. 입다.), 지하층(New Landscapes), 체험존(Experience) 총 세 개 공간으로 구성했다. 먼저 전시의 핵심 공간인 지상층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제공한 재고 의류를 영국 UAL(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출신 디자이너 20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업사이클링 작품으로 선보인다.
눈에 띄는 점은 전시 방식이다. 일반적인 패션 전시가 마네킹을 쓰는 것과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구입한 의자를 활용해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여기에 해당 의자는 전시 기간 중 열리는 강연 좌석으로 활용되며, 행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재판매할 계획이다. 이른바 전시 전 과정에 순환경제를 적용한 사례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하층 'New Landscapes'는 2021년부터 영국문화원과 UAL 패션·텍스타일·기술연구소(FTTI)가 이끌어 온 국제 협력 프로그램의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전시는 그간 전 세계 10여 개국 약 42개 기업이 참여해온 다양한 지속가능 혁신 사례를 선보이며, 이를 통해 패션·섬유 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 외에 체험존에서는 패션쇼, 강연, 설문, 세미나 등을 통해 관람객이 패션의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등에 대해 직접 체감할 계기를 마련할 계획이다. 먼저 7월 15일 저녁에는 글로벌 팝스타의 의상을 제작했던 디자이너 규리킴이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패션쇼를 열 예정이다.
또한, 16일에는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LCF)의 국제 파트너십 총괄 디렉터 샤비르 아슬람이 방한해 영국 런던 이스트 뱅크를 사례를 바탕으로 한·영 패션 산업의 지속가능한 연구 협력과 문화 교류 방안을 논의하는 토크 세션을 열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한국과 영국이 상호 지속가능한 패션 산업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패션은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용되고 순환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앞으로 패션이 소비 중심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혜인 기자 hyein5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