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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팬더' 만든 이 여성…주얼리 시장에 표범을 풀다 [민은미의 명품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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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팬더' 만든 이 여성…주얼리 시장에 표범을 풀다 [민은미의 명품 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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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상(Toussaint)’은 영화 <오션스 8>에 등장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이름이다. 뉴욕 메트 갈라에 등장한 이 목걸이의 가치는 무려 1억5000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약 2000억 원)로 설정됐다. 최고의 도둑들이 목숨을 걸고 훔치려 할 만한 목표물이었다. 그런데 이 이름은 허구가 아니다. 쟌느 투상(Jeanne Toussaint, 1887~1976)은 까르띠에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메종의 정체성을 새롭게 쓴 실존 인물이다. 영화 속 목걸이에 '투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헌정이었다.

    쟌느 투상은 온순한 고양이 같던 주얼리 시장에 거친 표범을 풀어놓았다. 까르띠에의 상징이 된 ‘팬더(Panthere de Cartier)’가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녀가 세상에 퍼뜨린 ‘팬더’의 매혹, 야성적인 우아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서울 성수동에서 열렸던 까르띠에 <인투 더 와일드> 전시의 주인공인 그녀의 삶은 영화 속 목걸이만큼이나 대담하고 극적이며 그 어떤 보석보다 치열하게 빛났다.


    정식 교육 대신 직관으로 피어난 안목
    쟌느 투상은 벨기에의 한 직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전통 수제 레이스를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했다. 어릴 때부터 정교한 레이스 제작 과정을 지켜보며 공예와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10대 후반 예술과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로 향한 그녀는 사교계를 드나들며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장식미술 학교를 다니거나 세공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레이스 공방에서 길러진 미적 감각은 파리 사교계에서 더욱 세련된 안목으로 다듬어졌다. 그녀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당시 파리 스타일 대신 중성적이고 세련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고, 평생 친구가 된 코코 샤넬과도 절제되고 현대적인 미학을 공유했다. 그 독보적인 안목은 파리 사교계에서 입소문을 탔고, 마침내 루이 까르띠에의 눈에 들었다. 이는 훗날 그녀가 주얼리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팬더’, 쟌느 투상의 또 다른 이름
    20세기 초 파리 사교계에서 그녀는 '팬더(표범)'라 불렸다. 날카로운 직관과 타협 없는 안목, 그리고 전형적인 여성성에 갇히기를 거부한 당당한 태도가 고양잇과 맹수의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드레스보다 이국적인 깃털 장식과 모피를 즐겨 착용하던 그녀의 독보적인 스타일에 매료된 루이 까르띠에는 그녀를 '팬더'라고 불렀다.

    쟌느 투상은 누군가의 뮤즈로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1910년대 까르띠에의 핸드백과 액세서리 부문에서 뛰어난 감각을 인정받은 그녀는 1933년 까르띠에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올랐다. 그 자리에서 투상은 당시의 정형화된 주얼리 디자인을 넘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입체적인 팬더 모티프를 선보이며 이를 까르띠에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했다. 혁신의 서막이었다.

    세기의 패션 아이콘, 윈저 공작부인의 팬더 브로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쟌느 투상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녀는 보석을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장신구로 보지 않았다. 투상은 당대 주얼리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일변도의 디자인에 반기를 들며, 과감하게 옐로 골드와 유색 보석을 무대에 올렸다. 무엇보다 그녀가 일으킨 가장 거대한 혁신은 팬더를 '살아 숨 쉬는 입체(3D)'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이었다.

    투상의 지휘 아래 까르띠에 장인들은 표범의 근육과 털의 질감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조각해 냈고, 1948년 무려 116.74캐럿 에메랄드 원석 위에 당당하게 올라탄 입체 표범 브로치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파격적인 주얼리의 첫 주인은 세기의 패션 아이콘으로 통하던 윈저 공작부인이었다. 공작부인이 어깨 위에 이 입체적인 팬더를 얹고 나타난 순간, 온순하게 박제되어 있던 주얼리 시장은 쟌느 투상이 풀어놓은 야성적인 자태에 압도당했다.


    전쟁의 시대, 보석으로 자유를 외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파리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그녀는 까르띠에 쇼윈도에 ‘새장에 갇힌 새(Oiseau en cage)’를 전시했다.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유색 보석으로 장식된 새가 금빛 새장 속에 갇혀 있는 형상의 브로치였다.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보석과 새장을 통해 나치의 억압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시대의 공기를 날카롭게 포착해 낸 저항의 메시지였다. 이 과감한 행보로 투상은 나치 게슈타포(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심문받는 위험도 겪었다. 하지만 게쉬타포도 그녀의 뚝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1944년 파리 해방 이후, 투상은 기다렸다는 듯 새 작품을 전시했다. 새장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위에서 새가 자유롭게 노래하는 모양의 브로치, ‘자유를 되찾은 새(Oiseau libere)’를 발표했다. 그녀와 까르띠에가 파리 시민들에게 선사한 눈물겨운 위로와 카타르시스였다. 보석을 장신구의 영역에서 시대의 아픔을 위로하고 자유를 외치는 경지로 끌어올린, 쟌느 투상의 대담함이 돋보이는 일화다.


    <오션스 8>의 투상 목걸이, 현실과 스크린을 관통
    영화 <오션스 8>에서 가장 숨을 죽이게 만드는 순간은 목걸이 ‘투상’을 조용히 해체하는 장면이다. 보안이 삼엄한 메트 갈라 한복판에서 1억 5천만 달러짜리 보석을 통째로 들고 도망치는 대신, 급식용 서빙 트레이를 통해 주방 한편으로 가져온다. 순식간에 분해한 뒤 귀걸이와 브로치, 팔찌 등으로 재세팅해 여러 명이 나누어 착용하고 당당히 걸어 나오는 전략.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치밀했다. 영화 속 허구의 범죄 행위 자체가 미화될 수는 없지만 철저한 계획으로 견고한 시스템을 뒤흔든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모른다.


    이 극적인 연출은 20세기 초 보수적이던 하이 주얼리의 기존 문법을 날카로운 직관으로 새롭게 써 내려간 쟌느 투상의 실제 삶과 묘하게 닮아 있다. 최근 <인투 더 와일드> 전시를 보며 쟌느 투상은 주얼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혁신가로 다시 다가왔다. 그러니 영화 속 목표물에 그녀의 이름이 붙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투상은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주얼리 역사에 강렬한 족적을 남긴 그녀의 이름을 영화 속 목걸이에 붙인 것은, 쟌느 투상을 향한 의미 있는 오마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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