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한 조리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제과사가 극심한 고온 환경에 노출돼 열사병으로 쓰러진 뒤 응급실로 이송된 일화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충격을 안기고 있다. 프랑스 현지에서 제과사로 일하고 있는 유튜버 '렉산'은 최근 자신의 채널을 통해 이상 고온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던 긴박한 순간을 영상으로 전했다.
렉산은 "프랑스가 지금 더위로 끓고 있는데 제가 희생양이 될 줄은 몰랐다"며 "지하 2층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데 에어컨이 없다"고 열악한 근무 환경을 고백했다.
그는 "가뜩이나 더운데 오븐 3대, 화구 여러 대, 냉장고나 냉동실 열기, 튀김기, 수비드 기계 등으로 체감상 바깥 온도보다 6~7도에서 10도 정도 더 더운 것 같다"며 "지난 5월 33도까지 올랐을 때도 너무 더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확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온도계를 구입했다는 렉산은 현장의 실태를 수치로 증명했다. 그는 "6월 24일 출근 당시 오전 9시경 주방 온도가 40도였고, 정오가 지나니 44도를 넘더라"며 "이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온도가 계속 오르는데 아이스크림, 생크림이 다 녹아서 업무도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없어 조기 퇴근을 택했으나 몸에 누적된 열기는 식지 않았다. 그는 "집에 이동식 에어컨이 있는데 퇴근하고도 몸이 계속 더웠다"며 "보조배터리에서 열을 뿜듯이 몸에서 열기를 뿜더라. 감기 몸살처럼 열이 나는데 몸살처럼 몸이 아픈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후 주방 온도는 48도를 돌파했고 저녁 6시경에는 49도에 달했다. 렉산은 "사우나 안에서 일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고, 어이가 없어서 실성할 정도였다"며 "해가 늦게 져서 밤에도 덥다 보니 이후로 영상 촬영도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신체 기능도 마비돼 "무언가 물어보는데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생각도 안 나고 대답도 못 했다"며 "결국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급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다행히 냉방 구역으로 이동해 응급조치를 받고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진짜 위기는 지하철 안에서 찾아왔다. 우버 택시마저 잡히지 않아 탄 에어컨 없는 열차 속 온도는 40도를 웃돌았고, 결국 심각한 열경련이 발생했다.
렉산은 "주변에서 물을 주고 부채질을 해줬지만 땀, 눈물, 콧물, 침 등 얼굴에서 모든 액체가 나오고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며 "다들 죽으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 그랬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동승한 의료진의 도움으로 역무실을 거쳐 구급차에 올랐다.
응급실로 이송된 렉산은 치료를 받고 무사히 회복했다. 그는 "의사선생님이 의식을 잃어갈 때 주변에서 처치를 바로 해줘서 체온이 낮아졌다고, 큰일까지 안 났다고 운 좋은 케이스라고 하셨다"며 "심전도 검사 후 정상 처리가 나와 귀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진과 영상을 기록한 이유는 증거가 있어야 병원에 설명하기도 쉽고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는 산재와 병가 처리를 받고 잘 회복했다고 전했다.
렉산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현재 유럽 대륙을 엄습한 기후 변화의 파괴력은 임계점을 넘어선 분위기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이상 고온 현상으로 이미 두 차례의 유례없는 폭염을 겪은 유럽은 또다시 찾아온 고온 대기층으로 인해 막대한 차질을 겪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은 수도 파리를 비롯한 본토 영토의 4분의 1 이상 지역에 최고 단계의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기상 악화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은 관람객과 현장 근로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 오후 4시에 임시 폐쇄 조치됐다.
루브르 박물관은 오후 4시까지만 관람객을 수용하는 단축 운영 방침을 수립했고, 오르세 미술관 또한 무더위 여파로 인해 오후 5시에 조기 셔터를 내리기로 공고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드프랑스'는 경연 역사상 최초로 기온 조건을 감안해 급경사 구간이 포함된 코스 일부를 축소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당국은 산불 확산 우려가 심화됨에 따라 공휴일인 혁명기념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기획됐던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북미 대륙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미 국립기상청(NWS)은 로키산맥과 북부 주들의 기온이 이번 주말을 기해 43도까지 도달할 것으로 관측했다. 외신은 이번 기후 이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미국인 수가 약 44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같은 폭염은 인명 피해로 직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서유럽의 평균 기온은 20.74도를 기록하며 6월 관측 역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이로 인해 유럽 대륙에서는 지난 한 달간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2000명을 상회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역시 뉴저지주에서만 일주일 사이 최소 22명이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등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지구촌을 휩쓴 가마솥더위는 국내 기상도마저 바꾸어 놓았다. 행정안전부와 기상청은 경북 경산시와 포항시 일대에 12일 오전 10시를 기해 사상 최초로 '폭염중대경보'를 발령하며 대국민 건강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폭염중대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일 최고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을 기록하거나 일 최고기온이 39도 이상인 조건이 하루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될 때 내려지는 최고 수위의 재난 경보단계다. 기존의 폭염경보 체제만으로는 국민들에게 기상 재해의 위험성을 충분히 주지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도입한 제도로, 실제 현장에 적용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국은 중대경보가 발령되는 즉시 국민들이 '중단(Stop)·이동(Move)·확인(Check)'으로 요약되는 3대 재난 행동수칙을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실외 활동 및 야외 노동은 전면 중단하고, 무더위쉼터나 실내 공간으로 즉시 이동하여 체내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야 하며, 홀로 거주하는 고령층이나 만성질환자 등 취약 세대의 안전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의료계에서는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질 정도의 기후 조건에서는 기저질환이 없는 일반 성인이라 할지라도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경고한다. 특히 장마철을 기해 대기 중 습도가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폭염이 겹치면 체감하는 위험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대표적인 온열질환으로는 열사병과 열탈진 등이 꼽히며 두통, 어지러움, 급격한 근육경련, 의식 흐려짐 등이 동반된다.
보건 당국은 고온다습한 환경 조성에 따른 수인성 및 식품매개감염병의 확산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여름철 고온 환경은 살모넬라균 등 식중독을 유발하는 병원성 미생물의 증식 속도를 가속화하므로 철저한 위생 수칙 준수가 요구된다.
농축산업 분야 역시 비상등이 켜졌다. 기온과 습도가 동반 상승하면 탄저병이나 역병 등 곰팡이성 식물 병해의 침투가 왕성해지고 고온성 해충의 개체 밀도가 급증할 수 있으므로 농가에서는 경작지를 수시로 예찰하고 적기 방제를 완수해야 한다. 가축의 고온 스트레스 누적 역시 대량 폐사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에 환기 시설과 냉방 장치를 상시 가동하는 등 사양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