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의 역할은 ‘쿨한 부모’입니다. 자녀에게 학비를 대주듯 스타트업에 투자합니다. 최선을 다해 지원하되 자유와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고, 적절한 시점에 떠나는 게 우리의 일이죠.”
박기호 LB인베스트먼트 사장(사진)의 투자 철학이다. 그는 1987년 미국의 블랙 먼데이를 접하면서 ‘시장의 근본과 미래는 무엇인가’란 궁금증을 품게 됐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기술을 발굴하고 키우는 벤처투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88년 벤처투자업계에 입문한 그는 LB인베스트먼트에서 벤처투자본부장, VC 부문 대표,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을 거쳐 2019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1996년 LG창업투자로 출발한 LB인베스트먼트는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범 LG가의 3세 경영인인 구본천 수석부회장과 박 사장 등이 경영을 이끌고 있다. 회사는 그동안 587개 사에 2조원을 투자했다. 그중 15개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하이브, 무신사, 크래프톤, 카카오게임즈, 에이블리, 노타, 리브스메드 등이다.
박 사장에게 명심해야 할 투자 원칙을 묻자 “위험 없는 고수익이란 증여뿐이란 점을 기억하라”며 “증여마저도 세금을 내야 하듯 대가 없는 수익이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벤처 투자는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원칙을 짚은 말이다. 그는 “뛰어난 타자의 타율도 3할대에 그친다”며 “벤처 투자 역시 6할 이상의 위험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았다.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택하고, 충분히 성장할 수 있도록 규모 있는 자금을 장기간 여러 차례 투자하는 식이다. 좋은 기업을 찾기 위해 박 사장은 직접 현장을 뛰고 있다. 창업가들을 만나고 AI 에이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변화를 빠르게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박 사장은 주도 업종을 포착하는 능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벤처투자자로 사는 동안 인터넷, 모바일, 플랫폼에 이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변화와 마주쳤다”며 “그중 가장 강력한 흐름인 AI와 관련된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카본식스, AI 검색 기업 라이너, AI 데이터센터 관련 기술기업 포인투테크놀로지 등에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다.
박 사장은 스타트업 평가 점수표를 100점 만점으로 하면 창업자의 자질에 40점을 배정한다고 했다. 그는 “창업자는 자기 자신과 기업의 가치를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의 경쟁력, 업종의 성장 가능성,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지도 눈여겨본다고 했다.
박 사장은 “창립 30주년을 계기로 더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VC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용자산(AUM)을 현재 1조5000억원에서 10년 안에 5조원으로 늘려 ‘체급’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10년간 유니콘 40개,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스타트업)은 10개를 키워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