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리서치와 법인영업 경쟁력을 가늠하는 한경비즈니스 ‘2026 상반기 베스트 증권사’ 조사 결과는 KB증권의 철옹성 체제 지속과 전통의 강자 NH투자증권의 2위 탈환, 그리고 한화투자증권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이번 조사는 한경비즈니스가 주관하고 마케팅 전문 조사기관인 글로벌리서치가 참여해 국내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연기금, 자산운용사, 은행, 보험, 공제회 등의 펀드매니저 158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펀드매니저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리서치센터와 법인영업 부문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합산해 2026년 상반기 최고의 하우스를 가려냈다.
월 1000편 쏟아낸 KB증권, AI도 인정한 ‘인용 수 1위’
KB증권은 리서치(12.66점)와 법인영업(13.91점)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총점 26.58점으로 종합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2024년 상반기부터 이어진 독주체제다. 2, 3위 그룹을 4점 차 이상으로 따돌린 배경에는 리서치 경쟁력과 법인영업의 시너지가 있다.비결은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관점에 맞춘 ‘리포트의 질과 양’이다. KB증권은 올해 상반기 월 최대 1000건, 매월 평균 700건에 달하는 보고서를 쏟아냈다. 특히 기업분석부와 매크로·글로벌 부문이 경계를 허물고 발간하는 ‘콜라보 리포트’는 펀드매니저들이 꼽는 가장 큰 강점이다.

이러한 리서치 파워는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대체 데이터 플랫폼 한경에이셀의 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epic AI)’가 올해 상반기 투자자 질의에 대한 답변 생성 과정에서 인용된 보고서 횟수를 집계한 결과 KB증권은 총 7230회로 20개 증권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최신 이슈 포착 능력과 방대한 발간 총량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애널리스트 마케팅에는 한계가 있어 글로 확실한 뷰를 전달하고 수시로 리포트를 업데이트하라고 강조한다”며 “시장 투자가들에게 ‘KB 리포트의 팬’이라는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지수 상승기에 맞춰 시장의 매크로 뷰를 적중시킨 톱다운(Top-down) 부문이 대거 두각을 나타냈다. 투자전략과 자산배분 2관왕에 오른 이은택(1위), 데일리 시황 하인환(1위), 채권 임재균(2위), 신용분석 박문현(2위), 글로벌 투자전략 김일혁(2위), ESG 김준섭(2위) 등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이은택 애널리스트는 상반기 미국-이란 전쟁 국면에서 지표를 활용해 고점 대비 18~23% 수준의 하락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제시했고 실제 코스피가 약 20% 하락하자 과감한 매수 의견을 내놓으며 변동성을 돌파했다.
아울러 사수가 주니어를 밀착 지도하는 ‘일대일 코칭’ 시스템도 결실을 맺었다. 우수한 아이디어를 선배와 공동 명의 리포트로 발간하며 동기를 부여한 결과 아직 정식 애널리스트가 아닌 이정욱 연구원(RA)이 채권 매니저들이 뽑은 ‘가장 주목할 주니어 애널리스트’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리서치센터와 함께 발맞춘 KB증권 법인영업은 2023년 하반기부터 이번 조사까지 6회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현재까지 적수가 없다는 평가다. 하반기 ‘KB 코리아 콘퍼런스’와 분기별 ‘KB 스타 포럼’ 등 전문적인 행사를 통해 고객 접점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온 전략이 빛을 발했다. 강진두 사장의 총괄 지휘 아래 김신 Wholesale부문장, 김병구 기관영업그룹장과 박정우 액티브영업본부장이 팀을 이끌고 있다. 박정우 본부장은 “하반기에도 글로벌 투자 콘퍼런스로 레벨업된 ‘KB 코리아 콘퍼런스’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구 조화로 ‘종합 2위’ 탈환한 NH투자증권
이번 조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승부처는 2위 자리를 둔 전통 강자들의 맞대결이었으며 최종 승자는 NH투자증권이었다. 지난 조사에서 신한투자증권에 밀려 아쉬운 3위를 기록했던 NH투자증권은 반기 만에 다시금 순위를 끌어올리며 2위 왕좌를 되찾았다. NH투자증권은 리서치 부문에서 10.89점, 법인영업 부문에서 10.80점을 고르게 획득하며 총점 21.69점으로 탄탄한 기초체력을 과시했다.실제 NH투자증권은 이번 조사에서 1위(4명)와 2위(6명)를 포함해 5위권 내에만 총 21명의 애널리스트를 진입시키며 두꺼운 맨파워를 증명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사내 육성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새로운 얼굴’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신규 1위에 오른 정지윤·홍성욱·윤유동 애널리스트를 필두로 신규 2·3위에 진입한 이은상·이승영 애널리스트와 맹활약을 이어간 한승연 애널리스트 등이 하우스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주영훈·정연승·이민재·안기태·하재석·주민우·이화정 애널리스트와 스몰캡팀 등 뼈대가 굵은 시니어층이 견고하게 중심을 잡아주며 완벽한 신구 조화를 이뤄냈다.
조수홍 리서치본부장 지휘 아래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산업과 매크로, 자산 담당자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내 리서치 경쟁력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다. 글로벌 주요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하우스 역량을 총동원해 발간하는 통합 보고서 ‘NH긴급진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아가 증권사 중 유일하게 ‘인덱스개발팀’을 운영하며 리서치 역량을 실제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데도 성공했다. 최근 코스콤과 공동 개발해 발표한 국내 최초의 독자적 산업분류체계 ‘NHICS’는 이러한 노력의 결정체다.

지난 하반기 무서운 약진을 보이며 2위에 등극했던 신한투자증권은 이번 평가에서 총점 19.81점을 기록하며 3위에 자리했다. 리서치 부문에서는 10.47점을 기록하며 NH투자증권과 호각세를 이뤘으나 법인영업 부문에서 9.34점에 그치며 아쉬운 순위 바꿈을 허용했다.
다만 리서치센터의 맨파워만큼은 여전히 매서웠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번 조사에서 1위 5명, 2위 10명 등 총 15명의 애널리스트를 최상위권(1~2위)에 안착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이는 종합 1위인 KB증권(1위 4명, 2위 6명)과 2위 NH투자증권(1위 4명, 2위 6명)의 최상위권 배출 규모를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기존 시니어들의 경쟁력이 견고한 가운데 주니어들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정유·화학 2위에 오른 이진명, 통신 3위의 김아람, 운송 5위의 최민기 애널리스트가 상위권에서 맹활약했고 유틸리티 부문에서는 한승훈 애널리스트가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법인영업 부문의 소폭 하락으로 종합 순위는 한 계단 내려앉았지만 개별 섹터에서의 압도적인 맨파워를 바탕으로 차기 시즌 강력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독점’ 굳힌 한투 vs ‘베스트 1위 싹쓸이’ 하나
‘톱5’ 라인업에서도 뚜렷한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투자증권은 리서치 7.57점, 법인영업 8.72점을 받으며 총점 16.29점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 4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 대형사로서의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투자증권의 힘은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력’에서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JP모간, 골드만삭스, 스티펠, 중국 국태해통증권 등 글로벌 대형 금융기업들과 손잡고 해외 투자 정보를 국내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영토 확장 전략은 해외 투자처를 찾는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를 정확히 관통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독점 글로벌 리서치’의 월간 조회수는 작년 3월 20만 건에서 1년 만인 지난 3월 90만 건으로 4.5배가량 폭증했다. 월 평균 67만 건이다. 리서치 역량이 리테일 부문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면서 개인 고객의 금융상품 잔고 역시 5월 말 기준으로 연초 대비 30조원 이상 불어난 100조원을 기록했다. 해외 리서치 자산과 독점 금융 상품을 연계한 전략이 사업적 성과로도 고스란히 이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전사적인 AI 도입에 발맞춰 리서치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코스닥 기업 커버리지를 대폭 확대하는 등 혁신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이번 시즌 가장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인 하우스로 꼽힌다. 리서치 부문에서 9.01점을 받아 총점 15.79점을 기록, 종합 순위를 5위로 한 단계 전진시켰다. 전통적으로 강했던 간판 애널리스트들의 맨파워와 탄탄한 리서치 기초 체력이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에서도 하나증권은 전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총 9명의 ‘베스트 애널리스트(1위)’를 배출하며 압도적인 맨파워를 과시했다. 김현수·김홍식·이기훈·최정욱·윤재성·박성봉·박승진·전규연·김경환 등 각 섹터를 책임지는 간판 스타들이 대거 1위 왕좌를 휩쓸었다.
이뿐만 아니라 3위 7명, 4위 9명 등 상위권 구간에만 무려 26명의 애널리스트가 포진하며 고른 활약을 펼쳤다. 특히 이 회사 리서치 보고서는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문장력을 갖춘 ‘읽히는 리포트’가 특징이다. 시장의 맥락을 짚어주는 친절한 서술 방식 덕에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들도 쉽게 접근하고 막힘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하나증권만의 독보적인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지난 조사에서 5위에 올랐던 메리츠증권은 이번에 총점 12.80점을 기록하며 한 계단 하락한 6위로 밀려났다. 리서치 분야에서는 8.37점으로 여전히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았으나 법인영업에서 4.43점에 그치며 상위권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단, 상반기 증시를 통틀어 가장 뜨거웠던 ‘반도체’ 부문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며 대형사로서의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시장의 자금이 반도체로 몰려든 만큼 이번 조사에서 매니저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반도체 왕좌로 쏠렸고, 이 최전방 격전지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곳이 바로 메리츠증권이다. 실제 메리츠증권은 간판 애널리스트들을 앞세워 반도체는 물론 전기전자, 유틸리티, 글로벌 기업분석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반도체 유관 기술주 섹터의 왕좌를 싹쓸이했다.
삼성증권은 총점 11.51점으로 7위를, 미래에셋증권은 총점 7.64점으로 8위를 기록하며 지난 조사와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다.

10위권 격전지에서는 소수점 단위의 초박빙 접전이 펼쳐지며 판도가 요동쳤다. 지난 조사에서 세 계단 하락하며 아쉬움을 남겼던 한화투자증권은 이번에 총점 7.10점을 기록, 순위를 두 계단이나 끌어올리며 기분 좋게 9위로 톱10 재진입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최근 ‘디지털자산’이라는 확실한 틈새시장을 공략해 차별화된 하우스 색채를 구축하고 있다. 장병호 대표이사의 지휘 아래 ‘디지털자산 전문 증권사 전환’과 ‘글로벌 실물자산토큰화(RWA) 허브 도약’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공식 선포하고 가상자산 분야의 핵심 인재를 적극 영입해왔다. 그 중심에 있는 조직이 지난해 신설된 리서치센터 내 디지털자산리서치팀이다. 전 코빗 리서치센터장 출신의 가상자산 전문가 최윤영 팀장을 영입해 진용을 꾸렸다. 미국·유럽의 규제 변화부터 토큰증권(STO) 법안 통과에 이르기까지 제도권 금융의 디지털자산 수용 가능성을 심도 있게 다룬 심층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SK증권과 유안타증권은 간발의 차이로 희비가 갈렸다. SK증권은 총점 7.06점으로 10위를 기록했고 유안타증권은 총점 7.05점으로 11위를 기록했다. 두 하우스는 총점 단 0.01점 차이로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인 끝에 각각 지난 시즌 대비 한 계단씩 하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