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의선숲길을 자주 걷습니다. 공원이 처음 문을 연 무렵부터 그랬습니다. 그때 심은 나무들은 어른 키높이쯤 되는 묘목이었습니다. 지금은 고개를 들어야 끝이 보입니다. 봄이면 이 나무들이 목련, 벚꽃, 산수유 꽃을 피웁니다.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뜨거운 볕을 가려줍니다. 아침저녁으로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달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러닝 성지’로 불립니다.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관광객이 줄지어 걷는 모습도 낯설지 않습니다. 길 양옆으로 카페와 식당,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서면서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됐습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곳을 ‘연트럴파크’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지난해에만 674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10여 년 전 이 일대는 마포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에 속했습니다. 경의선 철길이 지상으로 지나가던 시절 공덕과 대흥, 서강대 앞, 연남동은 대표적인 ‘비선호 주거지’였습니다. 철길이 동네를 동서로 갈랐습니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소음과 분진이 날렸습니다. 철길에 붙은 집일수록 값이 쌌고 동네는 낡아갔습니다. 용산 효창공원 쪽 사정도 비슷했습니다.
공원이 들어서자 땅값부터 움직였습니다. 연남동 단독주택과 상가 매매가는 공원 개방 직후인 2016년 3.3㎡당 2837만원에서 2018년 4455만원으로 2년 새 57%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망원동 상승률(36%)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공원에 붙은 연남동 일대는 64% 뛰었습니다. 아파트값도 이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대흥동과 염리동 일대 철길변 낡은 주택가는 재개발을 거쳐 마포의 새 인기 주거지가 됐습니다. 올 2월에는 공덕동에서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30억6000만원에 팔렸습니다. 마포에서 이 면적이 30억원을 넘은 첫 거래였습니다. 기차 소음에 시달리던 동네가 마포에서 가장 선호되는 동네로 바뀌는 데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버려진 철길을 공원으로 되살린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무상 사용 놓고 법적 다툼
그런데 이 공원, 공짜가 아닙니다. 공원이 들어선 땅은 국가 소유입니다. 국가철도공단이 관리합니다. 서울시는 남의 땅에 공원을 지은 셈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2016년 경의선이 지하 10~20m로 들어가면서 지상에 가좌역~효창공원앞역 6.3km, 10만2716㎡의 긴 땅이 남았습니다. 서울시와 공단은 이보다 앞선 2010년 12월 협약을 맺었습니다. 서울시는 공단이 추진하는 홍대입구역, 공덕역 등 역세권 개발의 인허가에 협조하고 공단은 공원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부지 사용에 협조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울시는 이를 땅을 무상으로 쓰게 해주겠다는 약속으로 이해했습니다.
넉 달 뒤 일이 꼬였습니다. 2011년 4월 국유재산법 시행령이 바뀌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국가 땅을 무상으로 쓸 수 있는 조건이 ‘땅을 사들이는 것을 전제로 1년 이내’로 좁아졌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공단은 2011년 5년, 2016년 다시 1년, 모두 6년간 무상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2017년 7월 이 기간이 끝나자 공단은 사용료를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협약을 근거로 거부했습니다. 공단은 서울시가 국가 땅을 허락 없이 쓰고 있다며 네 차례에 걸쳐 421억원의 변상금을 물렸고 서울시는 취소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2024년 1월 1심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협상 과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서울시는 협의 초기부터 무상 사용을 공원 조성의 조건으로 내걸었고, 공단도 협약 덕분에 역세권 개발 인허가 협조라는 실익을 챙겼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공원시설을 설치하면 시설이 영구적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부지를 장기간 무상으로 쓸 수 있도록 사용료를 면제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습니다. 협약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약정’으로 본 것입니다.
지난해 2월 2심은 거꾸로 공단 손을 들어줬습니다. 협약 어디에도 무상 사용을 확정한 문구가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협약은 서로 돕겠다는 선언일 뿐이고 무상 사용 여부는 법령에 따라 정할 문제라고 봤습니다. 같은 문서를 놓고 정반대 해석이 나온 것입니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있습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심리는 최근 재판연구관 검토가 시작되면서 다시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다만 선고가 언제 나올지는 모릅니다.
그사이 돈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 변상금 원금 421억원에 연체료가 붙어 현재 약 836억원에 이릅니다. 얄궂게도 변상금은 땅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매겨집니다. 공원이 성공해 일대 땅값이 오를수록 서울시가 물어야 할 돈도 커지는 것입니다. 실제 연간 변상금은 2020년 77억원에서 2022년 98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공원을 잘 만든 대가로 청구 금액이 커지는 셈입니다. 서울시가 최종 패소하면 밀린 돈만 내고 끝나지 않습니다. 공원이 있는 한 해마다 100억원 안팎의 사용료를 계속 내야 합니다. 그 돈은 결국 서울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옵니다. 시민이 시민의 공원을 걷는 값을 해마다 치르는 겁니다.
○소송 되풀이 가능성
문제는 이런 공원이 앞으로 계속 늘어난다는 겁니다. 서울에서는 옛 경인고속도로 진입 구간이던 국회대로를 지하화하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양천구 신월나들목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7.6km 구간 도로를 땅 밑으로 내리고 지상에 선형 공원을 만듭니다. 2029년 완공되면 서울광장의 8배에 이르는 공원이 생깁니다. 경기 화성에서는 동탄신도시를 가르던 경부고속도로 1.2km 구간이 재작년 국내 고속도로 최초로 지하화됐습니다. 그 위에 축구장 12개 크기(8만7005㎡)의 공원이 올해 완성됩니다. 사업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밝힌 이 공원의 모델이 바로 경의선숲길입니다.
더 큰 계획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2024년 시내를 지나는 지상 철도 67.6㎞ 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비전을 내놨습니다. 경부선과 경원선 일대 39개 역이 대상입니다. 선로가 있던 122만㎡ 땅은 공원과 녹지로 만든다는 구상입니다. 2024년 철도 지하화를 뒷받침하는 특별법도 만들어졌고, 인천과 경기도 등 다른 지자체들도 앞다퉈 지하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철길과 큰 도로가 동네를 가르고 소음과 분진을 유발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주민들의 바람은 같습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도시에서 철도와 도로를 땅 밑으로 보내고 지상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해당 지역의 땅 주인을 따져보면 셈법이 복잡합니다. 서울시 도로인 국회대로는 시가 제 땅을 덮는 것이라 다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철도 부지는 국가 소유로 국가철도공단이 관리하고,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 소관입니다. 이들을 총괄하는 곳은 국토교통부입니다. 지하화로 생긴 국가 땅 위에 지자체가 공원을 만들 때 사용료를 어떻게 할지 정리하지 않으면 경의선숲길에서 벌어진 소송이 전국 곳곳에서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과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가 시민의 공원을 놓고 법정 다툼을 반복해서는 곤란합니다.
이 매듭은 결국 정부·여당이 풀어야 합니다.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지자체가 국가 땅에 공원 같은 공공시설을 만들 때의 기준을 국유재산법 시행령에 담으면 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소속이고 정부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리당략을 따질 일이 아닙니다. 공원을 걷는 시민은 발밑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언제 나올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판결이 어느 쪽으로 나든 시민이 원하는 공원을 만드는 길을 제도로 터주는 일은 남습니다. 경의선숲길이 그 시금석입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