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산업 지형도가 전면 재편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 반도체 생산기지를 호남과 충청 등 남부권으로 확장하기로 했다. 그동안 두 기업은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 인력 확보 등의 문제로 비수도권 지역 투자를 꺼렸지만 정부의 ‘지방 균형 성장’ 정책 기조에 호응해 전·후공정을 아우르는 최대 5개 공장을 호남과 충청권에 짓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다음달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을 앞두고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 같은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설비 건설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라며 “두 개 기업과 부처, 정부 간에 입지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 논의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두 기업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역대급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설비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태양광과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은 전력 소모가 극심한 첨단 반도체 공장 가동의 최적지로 꼽힌다.
수백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별 투자 윤곽도 구체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광주 지역에 전·후공정 공장을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충북 청주에도 신규 낸드플래시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2022년 청주사업장(M15X) 증설 발표 이후 4년 만에 이뤄지는 전공정 팹 건립이다. 가동 목표 시점은 2029년 초다.
삼성전자도 광주에 첨단 패키징 공장과 전공정 팹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 같은 투자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25일 청와대를 방문해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다.

호남·충청에 초대형 팹…삼전닉스 반도체 벨트, 남부권으로 확장
非수도권에 5개 안팎 공장 추진…29일 靑서 발표
그동안 호남 지역은 사실상 ‘기업의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지리적으로 수도권과 인접한 충청권과 달리 호남은 인구 유출과 기반 산업 부재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낙후 지역으로 여겨졌다. 연계 산업 생태계마저 전무해 대기업이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외딴섬 신세였다.非수도권에 5개 안팎 공장 추진…29일 靑서 발표
하지만 전력 확보가 첨단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특히 24시간 생산라인을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산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사업 성패를 가르는 절대적 요소다. 수도권은 인프라의 한 축인 전력·용수 공급망이 한계에 다다르며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호남은 부지가 넓고 바다를 끼고 있는 데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정부의 국가 균형 발전 의지와 지방자치단체의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맞물려 호남의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용범 “제2 클러스터 필요”
한국 반도체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으로 향하는 것은 기업들이 이 지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결정적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이들의 대규모 팹 건설을 시작으로 연관 협력 업체도 투자를 늘려 대규모 인프라가 조성되면 국가 차원의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물꼬가 트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29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민관 합동회의를 앞두고 충청·호남 지역에 전·후공정을 포함한 최대 5개 공장을 건설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두 기업과) 입지 관련 논의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확정되면 기업·부처가 모여 국민께 설명해 드리는 자리가 조만간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용인에 짓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배제하고 지방으로 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고 했다.
두 기업의 투자 규모는 역대급이다. SK하이닉스는 광주 지역에 전·후공정 공장을 신설하고 충북 청주에도 신규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는다. 부지는 2022년 6월 시황 악화로 착공이 보류된 M17 부지(약 47만㎡) 중 일부다. SK하이닉스는 이 부지에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패키징 공장인 ‘P&T7’을 건립 중이다. 두 공장 건설이 마무리되면 청주는 첨단 복합 거점으로 거듭난다. 삼성전자도 광주에 패키징을 포함한 전·후공정 팹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두 기업이 호남 지역에 투입하는 자금 규모만 수백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김 실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2044년, 2048년까지 예고된 수도권 클러스터를 2034년, 2035년으로 앞당겨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수도권에는 더 땅이 없고, 전력·용수 공급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7~8년 뒤를 대비해 ‘제2 클러스터’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 시행착오 불가피
이번 대규모 투자를 두고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당초 반도체업계에서는 패키징 등 후공정에 비해 투자 규모가 막대하고 협력사 생태계와 고급 인력이 필수적인 메모리 팹 등 전공정 공장의 지방 투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호남 지역은 연계 산업 기반과 전문 인력이 사실상 전무해 초기 생태계 조성 과정에서 극심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가장 큰 걸림돌은 인재 확보다. 반도체 설계 및 공정 관리를 고도화할 전문 인력과 석·박사급 연구원의 지방 근무 기피 현상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반에 인력난이 심한 상황에서 수도권 중심의 인재 생태계를 호남으로 유인하지 못할 경우 공장을 지어놓고도 가동에 차질을 빚거나 핵심 인력이 이탈하는 리스크를 안게 된다.
매력적인 요인으로 꼽히는 풍부한 재생에너지 역시 양날의 검으로 꼽힌다. 기후 여건에 따라 공급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만으로 24시간 일정한 전력이 필수인 반도체 생산라인에 초고압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증설 경쟁과 맞물린 공급 과잉 우려도 투자 리스크를 키우는 대목이다. 역대급 호황에 힘입어 양사가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나 수십조원이 투입되는 호남과 청주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에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이 하강 국면 진입하면 자칫 대규모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호남 프로젝트가 초기 인프라 공백과 전력 불안정, 향후 공급 과잉 우려를 딛고 안착해야만 대기업들의 진정한 지방 이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해령/한재영/김채연/김형규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