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10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약 19년간 Fed를 이끌며 세계 금융 질서를 설계한 그는 위기마다 시장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현대 중앙은행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다만 장기간의 저금리와 규제 완화 기조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비판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따라다녔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22일(현지시간) 자택에서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부인인 안드레아 미첼을 비롯해 재계 인사들의 추모 메시지가 잇따랐다. Fed도 성명을 내고 “그의 사상과 기여는 미국 경제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며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NYU)에서 경제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정통 경제학자다. 이후 경제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월가에서 데이터 분석 능력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쌓았다. 정치권과의 인연은 리처드 닉슨과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경제 자문을 맡으며 시작됐고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의장으로 발탁되면서 세계 금융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의 첫 시험대는 취임 후 두 달 만에 발생한 1987년 ‘블랙 먼데이’였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하루 만에 22.6% 폭락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지만, Fed는 신속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빠르게 시장 안정을 되찾았다. 이 과정에서 연준은 물가 안정 중심의 중앙은행에서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까지 책임지는 기관으로 역할이 확장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정보기술(IT) 혁명에 힘입어 장기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당시 다수 경제학자들이 경기 과열을 경고하며 금리 인상을 요구했지만, 그린스펀은 기술 발전이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있다는 판단에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는 1991년 이후 2001년까지 10년간 확장을 이어갔다. 이는 당시 기준 역사상 최장기 경기 확장이었다.
시장을 조율하는 특유의 소통 방식도 그가 남긴 흔적이다. 공식 석상에서 일부러 모호한 표현을 구사해 정책적 여지를 남기는 이른바 ‘Fed 화법’의 시초가 바로 그다. 1996년 자산 시장의 거품을 경고하며 던진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월가의 전설적인 명언으로 남아 있다.
동시에 그는 중앙은행의 정책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도 앞장섰다. 1994년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금리 결정 내용을 시장에 즉시 공개하는 체계를 도입해 운영의 투명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말은 모호하게 실익을 챙기되 시스템은 투명하게 정립한 그의 방식은 오늘날 Fed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의 정책 철학은 2000년대 이후 비판에 직면했다.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유지된 저금리 기조는 주택시장 과열로 이어졌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확대와 금융 파생상품 증가를 충분히 제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의 자유시장 중심 철학은 금융 시스템 불안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그린스펀 본인도 청문회 등에서 “금융 시스템과 경제 전체의 기반을 이루는 미국 은행들이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 것은 실수였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통화 정책적 과오와 판단 착오를 일부 인정했다.
미국 경제의 황금기를 이끈 ‘마에스트로’라는 찬사와 금융위기의 씨앗을 뿌렸다는 책임론이 여전히 공존하지만, 그가 현대 중앙은행 역사에 남긴 영향력만큼은 분명하다. 결국 그가 남긴 유산의 명암은 현대 경제가 계속해서 풀어가야 할 숙제로 남았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