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폭염 속 에어컨 딜레마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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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폭염 속 에어컨 딜레마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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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지인과 영상통화를 하다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실내 온도계가 무려 섭씨 40도를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지인은 머리에 젖은 수건을 얹은 채 부채질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왜 에어컨을 켜지 않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깊은 한숨이었다. “에어컨을 설치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환경 파괴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렵고, 결정적으로 규제 때문에 시청의 설치 허가와 소음 문제로 같은 건물 주민들의 동의까지 받아야 해서 불가능에 가깝다”는 고백이었다. 한국의 에어컨 보급률이 90%에 육박하는 반면 유럽은 여전히 20% 선에 머물러 있는 현상 뒤에는,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에어컨 앞에서 멈춰서야만 하는 유럽 시민들의 복잡한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 대륙에서 냉방 장치 보급이 지연되는 배경에는 기술적 요인이나 비용을 넘어선 견고한 ‘환경 도덕주의’와 ‘제도적 장벽’이 얽혀 있다. 지난 수년간 일부 환경 활동가와 지식인층은 에어컨을 ‘에너지 낭비의 상징’이자 ‘반환경적 사치품’으로 규정해 왔다. 냉방 장치를 가동하는 행위 자체를 지구의 미래를 위협하는 도덕적 해이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프랑스의 한 유력 매체는 이러한 교조적 기후 도덕주의를 두고 “요즘 ‘착한 시민’이 되려면 폭염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 것 같아도 에어컨 버튼은 절대 누르면 안 된다. 대신 부채질을 하면서 ‘나는 지구를 구하고 있다’고 위안해야 한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 풍자가 그저 웃어넘길 수 없는 비극인 이유는, 실제로 폭염으로 사망한 취약계층의 상당수가 냉방 시설의 부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우리의 시선을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은 바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도시들의 강력한 제도적 규제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프랑스의 역사적 건물과 전통 건축물들은 도시 미관 및 문화유산 보호라는 명목 아래, 외벽에 노출되는 에어컨 실외기 설치가 지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금지되거나 제한된다. 문화유산이라는 거대한 가치와 법적 규제 앞에서 시민 개개인의 실질적인 주거 생존권과 기후 적응권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려나기 일쑤다. 도시 미관과 도덕적 가치라는 두 축이 맞물리면서, 시민들은 실내 기온 40도가 넘는 가마솥 같은 집안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열기에 방치되고 있다.

    여기에 ‘탄소 제로’를 향한 유럽 정책의 거대한 모순이 가세한다. 유럽 각국은 “미래는 전기로 달린다”는 거창한 슬로건 아래 전기차 보급에 수천억 유로를 투입해 왔다. 그러나 정작 기록적인 폭염이 닥치자 그 화려한 인프라의 민낯이 드러났다. 기존 전력망은 밀려드는 전기차 충전량을 감당하기에도 벅차, 전체 가구의 에어컨 가동률이 단 10%만 상승해도 도시 전체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위기에 직면한다는 경고가 터져 나왔다. 주차장에는 친환경 전기차가 멋지게 늘어서 있지만, 정작 시민들은 냉방 장치 하나 없이 열사병 위험에 노출된 이 기괴한 아이러니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심각하게 왜곡되었음을 방증한다.


    눈앞의 현실을 외면한 환경주의는 결국 대중의 이탈과 생존 본능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자택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전기차를 구매하며 성실하게 환경 의무를 다했던 한 독일 시민이, 극한의 더위 앞에서 결국 창고에 숨겨두었던 구형 에어컨을 꺼내 들며 던진 변명은 의미심장하다. “지구를 구하려다 내 가족이 쓰러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도덕적 당위성이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가족의 안녕을 앞설 수는 없다는 준엄한 경고다. 네덜란드의 한 칼럼니스트 역시 “모든 사람이 에어컨을 틀면 지구가 죽는다는 경고보다, 아무도 에어컨을 못 틀면 당장 눈앞의 노인들이 죽는다는 현실이 훨씬 더 무겁고 시급하다”며 기후 유토피아의 허상을 짚어냈다.

    이제 우리는 사회를 ‘에어컨을 켜는 나쁜 사람’과 ‘에어컨을 켜지 않는 착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도덕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유아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이다. 다행히 인류에게는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문화유산의 외관을 해치지 않는 중앙 집중식 지열 히트펌프 기술,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매립형 냉방 시스템, 스마트 그리드를 통한 정밀한 전력 수요 관리 등 이상과 현실을 타협시킬 과학적 솔루션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규제 만능주의와 도덕적 독선에 갇혀 대안 마련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진정 반환경적이고 반인륜적인 직무유기다.

    지구를 구하는 숭고한 여정은 그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이 안전하게 생존해 있을 때 비로소 정당성과 의미를 획득한다. 인간을 소외시킨 기후 유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유럽의 냉방 전쟁과 프랑스의 실외기 잔혹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도덕적 순수성과 박제된 규제에 매몰되어 현실 적응 능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기술과 정책을 융합한 가장 실천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기후 적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김준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 한국환경경영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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