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통주 기준)를 제치고 국내 증시 대장주 자리에 오른 지 하루 만에 코스피지수가 10% 가까이 폭락했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한 달 전 '강세장 종료 시그널'을 경고한 증권사의 보고서가 재차 주목받고 있다.
2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9.99% 하락한 8203.84에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전장 대비 0.34% 내린 9083.54로 출발한 뒤 잠시 반등하는가 싶더니 이내 하락 전환하며 급격한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오전 11시40분에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오후 들어서는 낙폭이 더 확대돼 오후 2시33분에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해 20분간 매매 거래가 중단됐다.
급락의 진앙지는 반도체 양대 대형주였다. 삼성전자는 12.31% 내린 31만원에, SK하이닉스는 12.47% 하락한 255만5000원에 거래를 끝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금요일과 유사하게 반도체 쏠림현상의 단기 부작용이 또 나타났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1위 쟁탈 과정에서 전날 쏠림이 유독 심했던 만큼 이날은 외국인을 중심으로 차익실현 압력이 더 거셌다"고 분석했다.
폭락장이 발생하면서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시총 1위에 오른다면 국내 증시 강세장이 끝날 신호로 봐야 한다던 하나증권의 리포트가 주목받고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8일자 보고서에서 "기업 이익 증가에 기반한 현재 강세장의 종료 시그널은 SK하이닉스 시총이 삼성전자를 넘어서는 시점"이라며 코스피 과열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으로 두 종목의 시총 역전을 제시했다.
실적 규모의 역전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 과열만으로 시총 1위가 바뀌는 현상은 버블의 정점이자 붕괴의 전조 증상이라는 분석이다. 두 기업 간 실적 펀더멘털 변화 없이 주가 급등만으로 시총 순위가 뒤바뀐다면 지수 상승 랠리의 종료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보고서의 중심 내용이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을 363조3103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63조4384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여전히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 규모가 큰 가운데 시총 역전이 발생한다면 펀더멘털이 아닌 모멘텀에 의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보고서에서 이 연구원은 기업 이익과 버블 붕괴의 시사점은 2000년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2000년 3월 27~28일 S&P500지수 내 시스코시스템즈가 마이크로소프트와 GE를 제치고 시총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며 "2000년 시스코시스템즈의 순이익은 27억달러로 당시 GE의 순이익 대비 20%, 마이크로소프트 대비 28%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하나증권의 경고처럼 특정 종목에 시총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 자체를 리스크로 보는 시각과,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구조 재편과 기업가치 재평가 등 변화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혼재하는 분위기다.
박준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더 이상 극심한 이익변동성을 보이는 회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라며 "글로벌 테크 섹터 내에서 근거 없는 저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분석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