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포드가 중국 CATL의 배터리 기술을 활용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 생산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포드는 올해 말부터 LFP 배터리 양산에 돌입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예정이다. 완성차 회사의 ESS 사업 진출은 미국 내 유일한 생산 업체였던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배터리 회사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산 전 셀 생산 성공
포드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블루오벌 배터리 파크에서 LFP 배터리 생산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포드는 자체적으로 전극 슬러리 제조(양·음극재에 용매 등을 첨가하는 과정)와 양·음극재 금속 코팅 등 양산 전 공정을 실험실이 아닌 공장에서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덧붙였다. LFP 배터리 생산을 위해 연말까지 800명 이상을 추가 채용하고, 직원들이 배터리 제조 공정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해당 배터리는 올해 말부터 양산에 돌입한다. 내년 출시 예정인 중형 전기 픽업 등과 ESS 배터리 등에 사용할 예정이다. 업계는 특히 포드의 공격적인 ESS 사업 진출에 주목하고 있다. 포드는 블루오벌 배터리 파크뿐 아니라 SK온과 합작 관계 청산 과정에서 인수한 켄터키주 배터리 공장 등을 ESS 생산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다. 이미 ESS 사업에 20억 달러(3조원)를 투자했고, 내년 말 첫 고객 인도를 목표로 연간 최소 20GWh(기가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포드가 수개월 내로 하이퍼스케일러(대형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와 대규모 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등 시장 전망 역시 밝은 편이다.
전문가들은 포드가 LFP 배터리나 ESS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청업체로부터 조달받은 수만 개 부품을 조립하는 게 핵심인 자동차 산업과 달리 배터리 산업은 화학 공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폭스바겐그룹이 최대주주(약 20%)인 스웨덴 배터리 셀 제조사 노스볼트가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한 것도 수율을 잡지 못해서다. 국내 배터리 회사의 한 경영진은 “온도 등 아주 작은 노이즈에도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작업”이라며 “여러 변수에 대한 노하우를 생산 경험을 통해 쌓아야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말했다.
◇CATL 손잡은 포드
포드는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 1위 배터리 회사 중국 CATL과 손을 잡았다. 블루오벌 배터리 파크는 공장 소유권과 운영은 포드가 맡지만 제조 기술은 CATL로부터 제공받는다. CATL에 라이선스 이용료를 지급하는 대신 LFP 생산 기술이나 특허, 공정 노하우, 작업자 교육 등을 제공받을 전망이다. “미국 자본으로 만든 CATL 공장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중국 배터리 산업의 미국 진출을 막고 있는 미국 정부와 정치권으로부터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게 변수다. 공화당인 존 몰러나 하원 중국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올 1월 포드에 서한을 보내 CATL과 맺은 계약 내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포드가 포드에너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지만 CATL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거나 미국 공장의 운영 데이터가 CATL에 다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포드의 ESS 진출은 한국 배터리사에 큰 위협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 LFP 배터리를 대량 생산하고 있는 회사는 LG에너지솔루션 밖에 없다. 여기에 삼성SDI은 오는 4분기, SK온은 내년 양산을 목표로 준비 중에 있고, 상당수 수주도 받은 상황이다. 사실상 한국이 미국에서 과점 체제를 구축한 상황에서 미국 완성차 회사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ESS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기차(EV) 수요 부진에 배터리 부문이 막다른 길에 부닥치자 인공지능(AI) 수요에 대응하는 전력 인프라 개발을 통해 활로를 찾는다는 것이다.
ESS 사업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배터리 사업을 되살릴 사실상 유일한 카드로 꼽힌다. AI 투자 붐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폭증하면서 부족한 전력을 적시에 공급하는 거치형 배터리의 수요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2030년께 그리드용 배터리 수요량이 현재의 두 배 수준인 100GWh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GM은 LFP 기반이 아닌 고성능 나트륨이온 배터리 개발에 집중할 예정이다. GM의 커트 켈티 배터리 사업 총괄(부사장)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경쟁사가 중국 기술을 가져와 똑같은 LFP 배터리를 만들 때 우리는 이들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더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