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수의 몸이 검은 모래 위를 미끄러지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슬라임과 감자전분 같은 물질은 단순한 시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을 바꾸는 재료가 된다.
안무가 다미앵 잘레와 조각가 코헤이 나와의 협업작 세 편(플래닛(방랑자), 미스트, 프리즘)이 24일부터 28일까지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두 예술가는 조각과 무용, 설치와 신체를 결합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잘레와 나와는 무용, 시각예술, 음악 등 장르를 넘나드는 협업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온 예술가들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13년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코헤이 나와의 ‘거품’에서 출발했다. 잘레는 작품 속에서 재해의 기억과 변화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발견했고, 이는 자연과 인간, 물질과 신체에 대한 나와의 관심과 맞닿으며 협업으로 이어졌다.
잘레와 나와가 처음 협업한 작품은 ‘베셀’이다. 기체·액체·고체 등 다양한 물성을 활용해 무대를 구현했고, 원초적인 신체 움직임을 통해 삶과 죽음, 자연과 소멸의 경계를 포착했다. 잘레는 “단순히 무용을 미술 작품 안에 넣거나, 미술 작품을 무대 장치처럼 활용하는 방식의 협업이 아니었다”며 “무용수의 신체와 다양한 물질, 장치, 공간을 결합해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플래닛(방랑자)’은 2021년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인간의 중간 세계인 ‘갈대의 땅’을 배경으로 가혹한 환경에서 저항하고 방황하는 생명의 모습을 그렸다. ‘플래닛’이라는 단어에는 복합적인 뜻이 있다는 게 잘레의 설명. 그는 “‘플래닛’이라는 단어에는 ‘행성’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어원적으로 ‘방랑자’라는 뜻도 담겨 있다”며 “인간은 자신이 사는 세계의 이면, 혹은 그 너머에 닿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방랑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에 ‘플래닛(방랑자)’은 하나의 은유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는지를 무대 위에서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에선 모래, 감자전분, 슬라임, 안개 등 물질들이 무용수들의 신체와 어우러져 강렬한 시각 이미지를 구현한다. 검은 모래는 광활한 우주인지 황폐한 대지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공간을 만들고, 8명의 무용수는 이 물질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한다.

나와는 “환경 문제가 심각해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고, 동시에 (작품 제작 당시)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쳤다”며 “사람들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 방황하고 있고, 이를 이겨내고 있다는 점을 그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미스트’는 두 예술가가 세계적인 현대무용단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1)와 협업해 선보이는 영상이다. 네덜란드의 짙은 안개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안개를 통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자연의 순환을 그려낸다. 나와는 안개를 활용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했고, 잘레는 이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18명의 무용수를 통해 표현했다. 나와는 “안개를 이해하고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조정할지 성분을 미세 조정하며 계속 실험했다”며 “코로나19 시기에는 극장 공연을 할 수 없어 영상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프리즘’은 이번에 스페셜 시사회 형식으로 소개된다. 프리즘 시트를 부착한 두 개의 상자 속 무용수들의 신체와 관람자의 시선과 각도에 따라 변형되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잘레는 “신체를 인지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고, 의문을 던진다”며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단지 해석일 뿐이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플래닛(방랑자)’은 24일부터 26일까지, ‘미스트’와 ‘프리즘’은 28일 GS아트센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