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서 사고내고 그냥 갔는데…'이것' 때문에 무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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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m를 밀었는데 그냥 갈 리가 있나요?”


    교통사고 뺑소니(사고 후 미조치) 피의자로 지목된 A씨는 경찰에 이렇게 반문했다. A씨가 다른 사람의 차량을 들이받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 A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A씨는 2024년 8월 퇴근 시간대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앞차를 들이받았다. 피해자인 B씨는 사고 이후에도 A씨 차량이 본인의 자동차를 50m 가까이 밀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A씨가 4차로에서 3차로로 차선을 바꾼 뒤 유유히 떠났다고 말했다.


    A씨에겐 사고를 낸 뒤 인적사항 제공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A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날의 사고’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A씨는 “제가 차를 밀었다고요?”라고 되물었다.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방법원 형사2단독 지창구 부장판사는 지난달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뇌전증을 앓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뇌전증이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인 이상을 일으켜 의식 소실이나 발작 등 뇌 기능의 일시적 마비를 일으키는 증상이다.

    재판부는 “A씨는 운전 중 뇌전증으로 인해 의식이 소실된 상태에서 사고를 냈고, 그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사고 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진행차로를 3차로로 변경했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사고 직후 정차하지 않고 B씨 자동차를 밀었다는 사실이 그가 당시 의식 소실 상태에 있었을 가능성을 방증한다는 취지다.

    추돌사고 이후 A씨가 3차로로 변경해 떠나기까지 1분10초 가량의 간격이 있었다. 재판부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 교통사고 발생 즉시 도주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밝혔다. A씨가 ‘도주하는 사람의 행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한 사고 이후 B씨 차량은 뒤 범퍼가 긁히고 찌끄러진 정도의 손해를 입었다. 재판부는 "A씨가 앞차의 상태를 보고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했으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는 “B씨 차량이 서있기에 길이 막힌다고 생각해 3차로로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죄는 사람의 사상이나 물건의 손괴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하는 ‘고의범’이다. A씨가 사고발생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는 만큼, 그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한편 도로교통법에 따라 치매나 조현병, 뇌전증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해당 분야 전문의가 인정하는 사람은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다. A씨는 “2년 이상 경련이 없어 운전이 가능하고 판단된다”는 의료진 진단서를 발급받고, 2024년 3월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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