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무기계약직=사회적 신분"이라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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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 무기계약직=사회적 신분"이라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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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은 최근 노동 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 중 하나다. 과거에는 정규직과 기간제·파견 근로자 사이의 차별이 주된 쟁점이었다면, 지금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차별, 그리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확대 적용 여부가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자리한다. 기간제·파견 근로자와 달리 무기계약직에는 차별을 직접 금지하는 개별 법률이 없어, 결국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대법원은 2023년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판결)은 무기계약직(공무직)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도, 보도자료를 통해 이는 공무원을 비교대상으로 한 사안에 한정된 판단일 뿐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성을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사기업·민간 영역의 무기계약직 문제는 사실상 다음 판결로 미뤄진 셈이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판결을 내놓았다(서울고등법원 2025. 12. 12. 선고 2024나2013287 판결, 이하 ‘대상판결’). 그리고 대상판결이 선고된 후로 유사한 취지의 소송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이렇다. 원고들은 방송사인 피고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인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들이다. 피고의 그래픽 디자이너에는 ① 호봉직(정규직), ② 연봉직(무기계약직), ③ 프리랜서, ④ 계약직(기간제), ⑤ 파견직이 있었는데, 호봉직과 연봉직은 모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임금체계가 달랐고, 연봉직의 임금 수준은 호봉직의 70~80%에 그쳤다. 원고들은 계약직으로 입사해 2년을 근무한 뒤 연봉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로, 연봉직으로 근무하는 동안 호봉직 디자이너와 동종·유사한 업무를 했음에도 더 낮은 임금을 받았다면서 그 차액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주목할 점은 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같으면서도 그 논리는 달랐다는 것이다. 1심(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2. 8. 선고 2020가합42074 판결)은 연봉직이라는 지위가 ‘계속적·고정적 지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무기계약직은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보아, 근로기준법 제6조에 근거한 주위적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연봉직과 호봉직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는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등 대우를 했다고 보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헌법 제11조 평등원칙을 근거로 한 예비적 주장을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인용했다.

    반면 대상판결은 다른 길을 택했다.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제도·문화·관행 등으로 인해 근로의 내용이나 가치와 무관하게 근로조건 결정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정형화·고착화시키는 사회적 힘을 가진 계속적 지위를 의미하며, 그 지위가 반드시 영구적이거나 장기간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한 기간 계속될 수 있는 속성이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에 위치한 이른바 ‘중규직’도 사회적 신분으로서의 고용형태에 포함된다고 하면서, 연봉직이라는 지위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판단했다. 연봉직이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시 부여되는 지위라는 점, 임금이 호봉직의 70~80%에 불과하고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점, 연봉직에서 호봉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사실상 없는 점 등이 그 근거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대상판결은 두 직군이 동종·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비교 가능한 집단이고 차등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보아, 피고가 근로기준법 제6조를 위반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임금 차액 상당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사기업 영역에서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성을 정면으로 인정한 사실상 첫 항소심 판결로서 의의가 작지 않다. 그러나 무기계약직과 같은 고용형태를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한 점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고용형태는 본질적으로 ‘계약(contract)’에 의해 결정되고, 근로자는 그 지위를 선택할 자유와 그로부터 이탈할 자유를 가진다. 반면 ‘신분(status)’은 ‘계속성·고정성’과 ‘선택 불가능성’, ‘인격적 표지성’을 본질로 하는 개념이다. 당사자의 의사로 맺고 풀 수 있는 계약상 지위를 개인이 벗어날 수 없는 신분과 같은 차원에서 규율하는 것은 두 개념의 성질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6조가 사회적 신분과 나란히 열거한 성별·국적·신앙이 모두 계약과 무관한,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표지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고용형태를 사회적 신분으로 포섭하는 것은 법률의 문언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입법 체계의 균형에 비추어 보아도 문제가 있다. 기간제·파견 근로자의 차별에 대해서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차별시정신청과 같은 정교한 구제절차를 두면서도 형사처벌은 두지 않았다. 반면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에는 같은 법 제114조가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신분의 외연을 넓게 인정할수록 형사처벌의 범위도 함께 넓어지는 결과가 되는데, 이는 노동형법의 비범죄화 요청과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헌법상 평등원칙을 사법(私法)관계에 직접 적용해 곧바로 불법행위 책임을 도출한 1심의 접근 역시 문제가 있다. 헌법상 기본권은 본래 국가권력에 의한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이지, 사인(私人) 사이의 법률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규범이 아니다. 사인 간에는 민법상 일반조항을 매개로 헌법적 가치가 간접적으로 적용될 뿐이라는 것이 확립된 법리다(간접효력설). 그럼에도 법률상 근거 없이 헌법상 평등원칙만을 들어 사법관계의 위법성을 곧바로 인정하는 것은, 사법부가 입법자를 대신해 새로운 차별금지규범을 창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급여 설계와 같은 영역의 사적 자치를 과도하게 위축시키고, 합리적 이유의 유무라는 잣대 아래 사실상 모든 처우의 차이를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끌어들여 권력분립의 원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어떤 사유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고 처벌할 것인지는 입법자가 개별 법률로 정할 문제이며, 그 경계를 넘어서는 차별의 시정은 법 해석이 아니라 입법의 몫이라고 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의 세부적인 논리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대상판결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간의 급여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사회적 신분’을 넓게 해석해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입법자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차등을 해소해야 대상으로 지적하지 않았음에도 사법부가 ‘격차는 좁혀져야 한다’는 당위론에 따라 법해석을 하는 것도 과연 적절한 방향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차별심사의 첫 관문’을 통과시켜 주더라도 합리적 이유의 심사단계에서 사용자의 재량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합리적 이유’가 차별이 사실상 추정된 최후의 단계에서 사용자가 ‘정당화 항변’으로서 주장·증명해야 하는 요소로 운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첫 관문을 통과시켰을 뿐’이라는 것은 적극적인 해석의 효과를 너무 축소시킨 설명이 아닌가 한다.


    한편, 판단의 당부를 떠나, 기업으로서는 당장의 현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명시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하급심의 결론은 사안에 따라 엇갈릴 수 있고, 대상판결처럼 사회적 신분성을 인정하는 흐름이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별 리스크 자체를 인식하고 개선책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대상판결은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의 소속 부서를 구분하는 인사조치가 분쟁 발생 후에 이루어진 것을 지적하면서 소송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일 뿐 업무상 필요에서 이루어진 조치가 아니라고 평가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기업들의 대응은 실제 소송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가장 근본적인 대비는 ‘비교대상’이 존재하지 않도록 직군 간 ‘담당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호봉직·연봉직처럼 형식적 직군만 나누어 놓고 실제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난이도·권한과 책임·작업 환경에 차이가 없다면, 차별 시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대상판결은 호봉직과 연봉직이 (i) 기본적인 작업의 내용, 작업방식, 작업환경이 동일하고, (ii) 부여된 권한과 책임이 동일하며, (iii) 업무의 난이도나 업무수행에 요구되는 능력, 노력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점을 들어 두 그룹의 업무에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 이를 감안하여 업무 구분은 실질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차등 처우의 ‘합리적 이유’를 사전에 논거와 자료로 갖추어 두는 것도 중요하다. 법원은 합리적 이유의 유무를 급부의 실제 목적, 고용형태의 속성과 관련성, 업무의 내용·범위·권한·책임, 노동의 강도와 양·질, 임금 등 근로조건의 결정요소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대법원 2016. 12. 1. 선고 2014두43288 판결 등). 하급심은 이를 더 구체화해 근속기간, 단기고용의 특성, 채용의 조건·기준·방법·절차, 업무의 범위·권한·책임, 노동시장에서의 수급상황과 시장가치, 사용목적(수습·시용·인턴 등), 직무·능력·자격·경력·학력·근속연수·책임·실적·숙련도 등 요소를 두루 고려한다(서울고등법원 2010. 11. 11. 선고 2010누15577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1. 8. 18. 선고 2010구합41802 판결, 서울행정법원 2012. 1. 12. 선고 2011구합8734 판결 등). 기본적으로는 직무기술서 및 역할·책임(R&R)의 정비, 직무평가의 정비 등이 뒷받침되어야 이러한 차이를 법정에서 설득력 있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채용 경로나 입사 자격의 차이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어떤 시험(전형)’을 통해 입사했는지를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호봉직과 연봉직의 채용 절차·자격 차이를 차별 판단의 ‘부차적 요소’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원고들이 공개채용이 아닌 경력직 전환으로 연봉직이 된 점에 비추어 경력직 채용 절차의 차이를 중심으로 살핀 끝에 양 직군 간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즉, 채용 경로나 입사 자격 보다는 ‘실제 업무’에서의 차이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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